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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신형철 작가님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었어요.
이 중 하나의 에피소드가 바로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예요.
다와다 요코
1960년 일본 도쿄 출생
와세다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공부, 19살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홀ㄹ ㅗ독일로 감.
이후 일본어와 독일어를 오가며 글을 씀.
신형철 평론가는 "언어의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써요.
다와다 요코 작가 때문에 자신이 모국어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죠.
거기에 영혼이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기에 여행을 다니면 '영혼을 잃어버린다'는 작가으 ㅣ말에 신형철 작가는 "작가란 본래 영혼이 없어야 하는 것"아니냐라는 말을 해요.
언어의 자유로운 구사가 아니라 언어로부터의 자유로움이라고요.
이러한 평론 글이 2011년에 작성되었는데. 2025년에 이 책이 다시 복간되어 출판이 되었어요.
이에 신형철 평론가님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셨네요.
"십수년 전에 이 책을 읽고 제가 느낀 것은 '낭패감'이었습니다. '언어의 이주민'만이 가 닿을 수 있는 간-문화적 통찰을, 이론과 개념이 아니라 관찰과 상상의 역량만으로 산출해서. 물처럼 흐르고 섞이는 무의의 구조와 결정처럼 투명한 문장으로 전달하는 책이었습니다.덕분에 저는 모국어와 유착된 채로 살아온 이가 가진 사유와 표현의 능숙함이란 편협함의 다른 상태일 수도 있음을 자각했고, 그 자각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오랫동안 저를 간섭해왔습니다. 이 책이 더 온전한 모습으로 복간돼서 저는 다와다를 처음 읽은 그날처럼 설렙니다. 이것은 어떤 아름다운 것에 다시 상처입기를 바라는 것과도 같은 이상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읽기 전부터 두려웠어요.
혹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진 모국어의 유착을 나도 깨닫고 '낭패감'을 느끼면 어떻하지?
나의 부족함에 몸서리쳐지면 어떻하지..
아.. 다행입니다.
저는 아직 그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저 '독일'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나라 속에서 생활하는 이방인의 모습만 느껴졌어요.
언어뿐만 아니라 사물들 하나 하나에 있어서도 익숙함에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다시 찾아보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와다 요코'라는 독특한 인물만이 느껴졌어요.
그와 나의 차이점, 그 간격이 '나의 부족함'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그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다양함으로만 읽혔어요.
저는 책을 읽는 어머니가 책 속으로 사라질까봐 겁이 난 적도 없었고, 만년필이 독일어로 '남성명사'라고 해서 이를 실제 남자라고 애써본 적도 없어요.
그래야 할 필요성 자체도 느끼지 않았어요.
아마도 이것은 그만큼 언어에 민감도를 가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그때 나도 목소리 양탄자를 만들려고 해보았다. 완전하게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를 내자 동시에 울리는 주변의 목소리들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들었다. 나는 말을 하면서 이 주변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주의 깊게 듣는 자리에 이야기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이야기가 생겨났다. 어쩌면 입이 아니고 귀가 이야기하는 기관이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왜 햄릿 아버지의 입이 아니라 귀에 독을 부었겠는가? 세계로부터 인간을 단절하기 위해서는 입이 아니라 귀부터 파괴해야 한다."(64쪽)
와.. 햄릿에서 아버지가 독살을 당한게 귀에 독을 부었던가?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이 문장을 보면서도 '청취'를 막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입에 부으면 토해버릴 수 있으니. .토할 수 없는 귀에 부은 거 아닌가.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죠.
이야기 중에서 전철에서 책 읽기 에피소드가 있어요.
저도 지하철에서 책을 자주 읽는 편이라 흥미로웠어요.
도쿄 사람들은 언제나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고 해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습관이있다. 그들은 책을 얼굴에 바싹 대고 읽는다. 그래서 책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쉽게 든다. 책은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 두번째 이름과 호칭을 주는 마스크라 할 수 있다."(103쪽)
전철에서 책을 읽을 때 젊은 여자들은 군인처럼 똑바로 서있다. 그에 반해 정장을 입은 남자 회사원들은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있다.
아마도 전철 안의 묘사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하고, 이때와 지금은 풍경이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찌되었든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 이야기가 책 안에서 등장하는 것도 너무 좋네요.
책 속의 책으로 다와다 요코가 일본어로 쓴 글을 페터 푀르트너가 독일어로 옮긴 글을 옮긴이인 최윤영이 한국어로 옮긴 <사전마을>이란 글이 일본어, 독일어, 한국어 이렇게 세개 다 지면에 표현되어 있는 구간이 있어요.
같은 내용이지만 언어가 다르니. .무언가 다른 느낌을 주죠.
참고로 일본어에는 단어와 단어사이의 띄어쓰기가 없어요.
그림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문장과 문장은 마침표로 끊고 있지만 단어와 단어는 띄어쓰기가 없어요.
어떻게 그럼 그 단어를 알 수 있는지 신기하네요.
이번 작품은 다와다 요코의 대표작인 [유럽이 시작하는 곳] [부적] 전문과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에 수록된 글들을 가려 뽑아 묶은 책으로 소설과 에세이가 뒤섞여 있어요.
그래서 읽다가 이게 지금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살짝 헷갈리는 경우도 있어요.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인간의 행위를 정말 잘게 쪼개어 어떻게 소리가 채집되고, 몸에서 이를 소화시키며 변화되어가는지, 이 언어의 해석에 있어서 문화적, 사회적 차이가 어떻게 나타나는 지에 대한 예민성을 보여준 작가 다와다 요코..
비록 이와 같은 예민함은 갖추지 못했지만 덕분에 뾰족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봤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해주어 기쁜 마음으로 읽었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