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내게도 조금은 너그러워지자. 이미 흘러간 것은 어쩔 수 없노라고. 대신 그날 새벽 부끄러움의 감각을 고스란히 기억해뒀다가, 살면서 수많은 데드라인 앞에 다시 서게 될 때마다 점점 더 어른을 연습해보자. 평정심을 잃지도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도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며, 같잖게 힘자랑을 하지도 않는 어른을. 이제 그때의 부끄러움으로부터 조금은 가벼워져 보자고 다짐해본다. - P22
수백 명의 인연들을 만나오며 누구에게나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됐기 때문이다. - P28
그라고 뭐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사방이 지뢰밭인 인생을 살면서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니 늘 긴장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 모든 일들은 다 처음 겪는 것이니 심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 P35
생각해보면 아마도 멈춰야 할 아주 명백하고도 결정적인 이유가 없는 한 나는 늘 학교에 가는 것이, 즉 ‘멈추지 않는 것이‘ 맞다는 나름의 삶의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설령 멋이 없다고 자주 느꼈을지라도. - P44
자기답게 기운을 쓰는 사람의 뭉근한 힘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 가만히 살펴보며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가 가진 만큼의 기운을 썼을 때, 그 기운은 가장 적절한 힘을 가지게 됐던 것 같다.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것보다 과도하게 쓴 기운은 결국 나를 소진시켰고, 내 기운이 아닌 것을 그런 척하며 가져다 썼을 땐 그저 부끄러운 속내가 드러날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누구의 기운을 제압하고 말고의 필요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 P51
결국 나는 이런 바람을 갖게 됐다. 고민 없이 돈 안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만큼만 호사스러운 삶이면 좋겠다. 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인생에서도 나이 들수록 사치스러워도 될 마늠 먹고사는 걱정은 좀 제쳐둘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지점에 더욱 가까워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 - P69
그저 오고 가는 사람들과 그 시절에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기에도 바빴다. 어쩌다 계속 연결이 되면 오래 남는 것이고 떠날 일이 생기면 또 그냥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고마운 인연을 놓치는 줄도, 무례한 인연에 마음이 다치는 줄도 몰랐다. - P75
‘뭘 그리 안달복달하며 사냐. 그냥 좀 무던하게 살자. 하루는 폴짝 뛰어올랐다가, 또 다음 날은 맥 빠져 지하를 뚫었다가 하지 말고. ‘ 거대한 자연 속 작고 작은 존재의 더 작고 작은 문제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생각에 닿으니 조금 전 달뜬 마음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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