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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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찾는 방법을 아나요?

우선 꿀이 담긴 컵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요.

벌이 컵으로 날아오길요.



벌이 컵 안으로 들어왔다가 날아가면 그 벌을 따라가요.

벌이 눈 앞에서 안보이게 되면 또 그 자리에서 기다려요.

다시 벌이 날아올 때까지요.



벌이 다시 날아오고 또 날아가면 다시 그 벌을 따라가요.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벌집을 만날 수가 있어요.



폴 윤 작가의 책 [벌집과 꿀]은 ‘벌집‘을 찾지 못해 어딘가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총 7편의 작품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이 작품들의 시간적 배경과 장소가 모두 달라요.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미국 캘리스부터 스페인 코스타브라바 해안, 일본과 뉴몰든을 거쳐 러시아 연해주의 우스리스크까지 정말 다양한 장소들에서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죠.





[벌집과 꿀]은 뉴욕 퀴스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폴윤이 팬데믹 기간 쓴 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이예요.



작품 속 주인공들이 보이는 감정은 ‘외로움‘이에요. 그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껴요. 그래서 그들은 의미를 찾고 싶어하고, 연결되고 싶어하죠.



그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변과 동화되지 못하는 이유들을 찾고, 다른 곳이라면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끊어진 연결고리는 쉽게 이어지지 않아요.



작품이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누구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기대했던 만남이 기대되로 이어진 이야기는 단 한편도 없어요.



그렇기에 오히려 이 작품은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있어요.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물속을 한없이 떠가는 것 같은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가 가끔씩은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고, 타인을 위해 이토록 성실하게 길을 만들어줌으로써 허무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그건 어떤 의지나 결단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짐승이 새끼를 돌보듯 그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우리의 본능이라는 것을,˝(29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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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선>에서 보는 어디에 정착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카로‘를 만나서 ‘무언가 굉장한 일이 일어날 기대감‘을 가지게 되요.



˝보는 카로에게 하고 싶은 질문들을 계속 떠 올렸다. 그리고 그가 거기 달빛 속에, 카로의 곁에 긴장을 풀고 가볍게 서 있는 동안, 공기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나고, 바람이 불었고, 그는 갑자기 자신이 아주 먼 길을 왔으며 무언가 굉장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는 걸, 오늘 밤이나 내일은 아닐지 몰라도 머지않아 일어나리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집중했다. 그들이 밤의 마지막 시간 내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그 느낌이 지속되기를 바라며.˝(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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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로프>의 ‘주연‘은 자신을 만나러 온 코마로프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결심을 하죠.

그리고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죠. 그 비명의 소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잠깐 불러 일으킬 뿐.. 사람들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요.



어찌보면 허무한 듯한 이야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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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에서>의 배경은 에도시대 1608년이고, 일본 임진왜란 이후 끌려간 ‘아이‘를 다시 돌려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무라이의 이야기예요.



고향을 잃고 강제로 떠나오게 된 아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나‘였는데 실상 갈 곳을 모르고 방황하는 것은 바로 ‘나‘였죠.



˝유미? 그 해골 입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있었어. 어린 벚나무였어. 신기하지 않니? 우린 이 생을 살다가 또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거야. 네 생각도 그렇지 않니? 너는 이 생을 살았지만, 내일이면 금방 또 다른 누군가가 돼서 또 다른 누군가와 살게 될 거 잖아. 그런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되는 거야. 그걸 받아들이고 더 강해져야 돼.˝(97쪽)



˝그 모든 것이 갑자기 하나의 돌이 되어 내 목구멍 깊숙이에서 덜그럭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어떻게 그 돌에 닿을 수 있을지, 그래서 그것을 부숴버릴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평생 머릿속에 들어갈 방들을, 그리고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방들을 지어왔는데, 마치 그 모든 방을 잘못된 방식으로 지어온 것만 같다.˝(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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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머>는 런던 남서부의 대규모 한인공동체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부의 이야기예요.



갑작스레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 ‘고립‘된 삶을 살게 된 해리와 그레이스,

이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소년‘ ..

그리고 그 소년을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찾아간 크로머가 배경이죠.



˝마치 그즈음의 날들과 그날들을 이루는 모든 시간이 그들을 둘러싸고 고리 모양으로 굳어져버린 것 같았다. 해리는 무언가가 그 경계 밑을 파고들어 모습을 드러내주기를 계속 기다렸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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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우수리스크 지역 남부에서 일어난 이야기 <벌집과 꿀>은 고려인 정착지의 치안관으로 오게 된 안드레이 불라빈의 이야기예요.



갑자기 일어난 ‘강간‘과 ‘살해‘ 사건들로 인해 혼자가 되어 버린 ‘아이‘를 관찰하는 안드레이.



˝아이는 나이에 비해 마르고 키가 작았고, 저는 그 순간 그 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게 무엇일지, 무엇이 그 애를 통과해 지나갔을지, 슬픔일지, 분노일지, 둘 다일지, 둘 중 어느 쪽도 아닐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아이는 고아였고, 이제 자신의 부모님이 지었던, 하지만 자신이 태어났던 그 장소에서는 한 세상만큼이나, 한 사람의 평생만큼이나 멀어져 버린 그 판자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189쪽)



˝아버지, 저는 지금 당신이 어디 계신지 상상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도요. 왜 누군가는 저주받은 장소를 떠나지 않으려 하는지도요.

아이는 이제 멀리 있습니다. 온통 햇빛으로 둘러싸인채, 아주 조금만 보일 뿐입니다. 숨겨진 자신의 왕국으로부터 돌아오던 벌은 이제 더는 돌아오지 않습니다.˝(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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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과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지만 아무리 봐도 연결작품은 아닌 <고려인>은 ‘사할린 섬‘의 교도관으로 떠난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상하게 끌리는 마음을 가지고 ‘사할린‘으로 가는 막심.



˝막심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바다의 이상한 힘을 느낀다. 그는 개에게 묻는다. ˝이 다음은 뭐지?˝˝(222쪽)



막심이 삼촌의 죽음 이후 아버지를 찾은 이유와 그 기대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저 찾아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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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달의 골짜기>는 한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매일 밤 여기서 달이 뜨고, 기울고, 부서졌단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냈지.˝(250쪽)



전쟁 이후 홀로 남겨진 동수는 달의 골짜기에 있는 농장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북으로 가고자 하는 남자‘와의 사건으로 인해 더더욱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듭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전쟁 고아인 ‘은혜‘와 ‘운식‘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게 되지만..

다시 헤어지게 되고..



그렇게 쓸쓸한 삶을 이어갑니다.



과연 인간의 삶은 어떠한 모습이어야하는지,

누구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죽기 전까지 숨을 이어가지만, 그 숨이라는 것의 의미가 있을까요.



˝은혜는 하나의 결정이 어떻게 삶에 존재하는 그 모든 다양한 겹들을 드러낼 수 있었는지 생각했다. 그런 겹겹의 삶은 은혜에게는 꽃의 내부와 마찬가지로 닿을 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286쪽)





˝달은 뜨고, 기울고 ....

그다음은 뭐였더라?

은혜는 곧 기억해낼 것이었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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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부영초일지 모릅니다.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대의 조류와 흐름에 맞추어 흔들리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땅을 파고, 시작할 수 있기에 인간의 생은 아름다울 수 있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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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에게는 많이 어려운 소설이었어요.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성 충만‘의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죠.



소설을 읽고 난 그 쓸쓸함, 허무함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

늘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위로가 되는 것은 ‘누구나 방황한다는 것‘ 그리고 이 방황이 당연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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