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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 선언 -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
최태현 지음 / 디플롯 / 2025년 1월
평점 :
오늘 이야기 할 책은 최태현 님의 <이타주의자 선언> 입니다.
출판사 지원으로 책을 받았어요..
*온전히 책만 지원받고 쓰는 서평입니다.
문유석 판사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이 생각나네요.
이타주의자 선언은 또 어떤 내용일까요?
저자인 '최태현'님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님으로 정책결정과 공공성, 행정윤리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계시닙니다.
이 책은 우리 안의 이타적 마음을 들여다보자는 책입니다.
개인의 삶이 어떻게 사람들과 연결되는지, 어디서 나아가고 어디서 멈추는지 질문하고 답을 구해나가는 경계에 선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복잡하고 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책입니다.
'나'에서 출발하여 '너'에 대하여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소고(이자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한 소고입니다.
책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이타심에 대하여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이 겹치는 영역을 알아채고 신경쓰는 마음'으로 정의합니다.
이타심의 경우 '자기 만족'이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 맞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이기심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24) 일반적인 의미의 이기심은 나의 행복 가운데 다른 사람의 행복과 겹치는 영역이 아닌, 나의 영역에만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사생활의 영역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과 관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과 대립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그 둘이 만나면 이기심은 부정적인 모습이 됩니다.
🔖(25) 이타심은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우선 둘이 공존할 수 있는 영역을 인식하는 감수성입니다. (...) 나의 마음만큼 상대방의 마음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이 이타심을 구성합니다. 둘째는 그 겹치는 영역을 넓혀가는 노력입니다.
🔖(27) 타인의 영역을 함부로 짐작하고 침입하는 행동으로 이타적인 마음은 인정받을지 몰라도 이타적인 결과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타심의 출발이 타인에 대한 인식과 이해라고 할 때, 그것은 궁금함의 모습을 띱니다. 호기심과는 다릅니다. 미국의 작가 에릭 와이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궁금심과 호기심을 구분합니다.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과 달리 본인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다. 우리는 냉철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냉철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하게 궁금해할 순 없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 오래도록 머문다."
이타심에 대한 정의와 함께 그동안의 생각을 깨 준 한마디는
이타심은 공부를 통해 길러진다! 는 것입니다.
🔖(28) 이타심은 타고난 마음으로만 영글지 않습니다. 이타심은 타인을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 이해 없는 본능적, 즉각적 이타심을 장애인들은 '시혜와 동정'이라고 부릅니다. (...)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그 타인에게 얼마나 모멸적으로 느껴질지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없는 이타심은 위험합니다. 의도가 어떻든 결과가 나오지 않않습니다. 이해 없는 이타심은 그 행동이 향하는 타인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바라보며 존경을 보낼 준비가 도어 있는 이들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야말로 자기만족일 수도 있구요. 이타적일 수 있는 그 여유를 즐기는 것입니다.
🔖(32) 누구도 세상 모든 이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땀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결국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 선택은 의지적 행위일 수도 있고, 삶의 섭리일 수도 있고, 우리의 의지 자체가 섭리일 따름일 수도 있고, 섭리가 우리의 의지로 변화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가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서 있는, 이제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 타이이 중요합니다. 내게 다가온 그가 중요합니다.
🔖(33) 좁고 촘촘하게 연결된 관계망의 일부를 끊고, 다른 일부와 이어져보는 무작위. '나'의 동심원에 균열을 내고 '너'로의 지름길을 만들어내는 일. 의지라고 불러도 되고, 그 타인을 좋아하게까지 된다면 그것은 운명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38) 상대와 나의 위상을 가늠하는 이런 감정들의 반대편에는 어찌 보면 더 무서운 감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상대의 존재에 신경을 쓰지 않는 무심함입니다. 그의 존재가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기심에는 타인과 나, 두 가지 선택지가 있기에 어쨌든 타인이 존재합니다. 무심함에는 처음부터 타인이 없습니다. (..) 이런 무심함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질 감정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의 마음입니다.
어떤 무심함은 단순히 무지로 인한 마음입니다. 존재를 알았다면 무심하지 않았을 테지만 존재를 몰랐기에 무심합니다.
🔖(53) 관계는 결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무언가를 남깁니다. 그리고 고장 나서 끼익 소리를 내는 기계들처럼 마음속에서 녹슬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계 맺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관계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지난 주 <외로움의 습격>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여전히 맺어야 하는가를 생각했는데 이번 책에서 그 답을 조금 찾았어요.
어찌보면 인간이라는 그 말에는 관계성이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이죠.
이타심은 그 인간의 관계를 원활하게해주는 윤활유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동일한 조건과 환경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상대방의 환경을 이해하고 함께 가기 위해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주는 것 ..
그것이 이타심이 아닐까요?
사람을 사물로 보지 않고, 나와 동일한 피가 흐르고 나처럼 호흡하고 있는 동일성을 자각할 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제가 미쳐 몰랐던 우리 사회 안에서 관계성을 이어가기 위해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모인 많은 이들의 '이타적인 마음'을 알게 된 책이예요.
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해라고 말하면서
애써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길..
나의 필요에 의해 애써 타인에 무관심하지 않길..
이 사회가 조금은 사람 살만한 곳이 될 수 있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