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에세이를 쓰겠습니다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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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형의 책을 좋아하세요?"

책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묻는 통상적인 질문이다.

대답은 그때 그때 달라진다.

어떤 날은 역사책, 어떤 날은 철학책이 되곤 한다.

"그럼 별로 안좋아하는 책은요?"

오늘까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결 같았다.

"에세이요!"

"왜 에세이를 싫어하세요?"

"작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 감정을 지나치게 나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요."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으로 초대한다는 초대장이 나는 별로 반갑지 않았다.

작가의 생각과 감정과 감각까지 공유한다는 것이 꼭 필요한가?

그래서 책[오늘은 에세이를 쓰겠습니다]를 보면서도

'과연 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에세이를 좋아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 반, 기대 반이 섞인 감정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처음 시작은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들이다.

공감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일뿐, 내가 에세이를 읽어야 할 이유는 아니야!

라는 반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음 문장을 만났다.

(40) "작가의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일수록 독자는 더욱 글에 빠져들게 됩니다.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대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우리를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될 때, 그때의 글은 깨끗하게 닦인 거울이 됩니다.

작가는 글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독자는 작가의 고백에 자신을 투영하여 마음껏 음미하고 향유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그동안 에세이를 '거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전기나 평전을 읽는 기분으로, 그의 생각과 감정을 평가했다.

과연 그 안에 나를 비춰볼려고 했던가?

내용 요약하고, 핵심 주제 찾고, 키워드 뽑아내는 식으로 참고서적 텍스트로만 책을 대했다.

책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문제였다.

이 부분을 깨닫고 나니 가랑비메이커 작가의 책 [오늘은 에세이를 쓰겠습니다]를 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글은 원래부터 쓰던 사람이나 쓰는거지 뭘' 이라며 아니꼬운 시선들이

'그렇다면 나도 이제는 내 안의 생각을 담아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특히 에세이라는 것이 일상적 쓰기와 다른 문학적 쓰기라는 것이 와닿았다.

블로그에 남기는 이 책 리뷰도 일상적 쓰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문학적 쓰기로 바꾸기 위해서는 분명한 문학적 목표를 가지고 구조화된 글쓰기가 필요하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폐쇄적으로 쓰게 되면 이는 일상적 글쓰기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독립적인 한편의 글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쓴다면 이는 문학적 글쓰기이다.

작고 일시적인 파급력을 보여주고 폐기되는 것이 일상적 쓰기라면,

문학적 쓰기는 크고 지속적인 파급력을 가졌기에 깊은 사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나의 책 리뷰는 일상적 쓰기에 불과했다.

책을 내가 이렇게 읽었고, 책이 좋았어요..로 끝나는 단순한 감상문에 불과했다.

거기에 조금 더 하면 마케팅 차원에서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정도랄까?

여기에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나의 생각과 경험을 포함시킨다면

이는 문학적 글쓰기, 에세이가 된다.

욕심이 난다.

천편 일률적인 도서 감상문이 아닌

나만의 색깔과 향기가 묻어나는 에세이로 표현하고 싶다.

에세이의 고전이라고 볼 수 있는 몽테뉴의 수상록(Essai)도 그가 독서하는 도중에 발견한 깨달음들을 담아내고 있다.

몽테뉴의 독서와 사색의 결과들을 담은 [수상록]처럼 나의 글들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온전한 사유를 담아내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감사하게도 [오늘은 에세이를 쓰겠습니다]에 잘 담겨 있다.

남은 것은 책의 내용처럼 '글감'을 찾아, '주제'를 건지고, '하나의 주제'로 '생생하게' 그려지는 개성적인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제는 책을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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