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픽션인 것은 "투루한스크 변경주"의 '유쥐나야 마을'에 세워진 홀로드나야 뿐... 이 홀로드나야에서 벌어진 이야기들 자체는 픽션이지만 .. 그 픽션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름이나 캐릭터,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의 이름은 모두 있는 그대로를 가져왔다.
(그 사실에 읽고 나서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 책 내용이 생체 실험이라고 해서 일본군 777부대를 생각했고, 그런 잔인한 이야기일 것이 미리부터 걱정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야기가 괜찮았다. 기껏해야 얼음물에 들어가는 거구나..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이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 그냥 흘려읽었던 문장도 다시 보니.. "끔찍했다"
영하 50도, 수은주마저 얼려버리는 그 냉혹한 추위,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얇은 속옷만 입고 생활했다"... 처음엔 이 추위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입수기도' 시간이 많이 힘들겠구나.. 마치 혹한기 내한적응훈련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1살에서 9살까지 밖에 안된 아이들에 내의만 입고 하루 종일 그 추위속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유일한 온기는 페치카가 있는 오두막뿐..
그런데 잔인한 것은 이 실험이 아니었다.
이 모든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리센코 후작.
밝은 표정에 맑은 눈빛, 키는 작았지만 자세가 꼿꼿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획득형질의 유전" 실험을 통해 "한랭 내성"을 갖춘 용맹한 러시아 국민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획득형질의 유전. 이것은 특정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부모 대(代)가 노력하여 체득한 특징은 점진적으로 자손 대(代)에 유전된다는 진화이론이었다. 프랑스 과학자 라마르크의 이론이다.
거기에 '우생학'을 만든 프랜시스 골턴도 등장한다.
아... 이 과학자들로 인해 인간 역사는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이들이 여기에도 등장한다는 것이 불길해졌다. 그리고 이 불길함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여러 사건들, 에피소드들이 진행되고 리센코 후작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맹신자의 위험성을 말이다.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긴 시간 믿게 되면,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신념이 된다. 리센코가 그러했다. 그는 초조해졌고 초조해질수록 포악해졌다. 불안은 광기로, 실망은 폭력으로 폭발했다."(p.175)
리센코의 광기.. 이 광기는 리센코에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거침없이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 내가 믿고 있는 신념 외에는 다른 것은 모두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 타인의 의견에는 아예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모든 것이 광기의 시작이라고 보여진다.
얼마전 읽었던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에서도 '맹신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 얼마나 방어적이고 배타적인지를 보았다.
신념이 맹신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은 악인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진짜 기억하자. 혹 나 또한 어떠한 신념이 맹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맹신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이 책에 나오는 "사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정체는 ...
(책을 통해 확인해보자..)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소련의 지도자 중 하나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가 그렇게 대학살자인지 몰랐다.
이번 책을 통해 '소련'에서 벌어진 그 잔인한 실상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가 주는 매력을 넘어서, 역사적 사실까지도 알게 해준 이번 책 [악의 유전학]
임야비 작가의 전작 <클락헨>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