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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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說)의 '소(小)'자는 작은 존재들을 품어 주는 , 소설의 태도에서 온다고 해설에서 말하고 있다.

책 [공존하는 소설]은 이 사회 속의 작은 존재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작은 존재인가?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 생각부터 들었다.

전문가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류에 따르면 "여성,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탈북민, 외국인, 결혼 이주민, 청년"이 해당된다.

난 이 중에서 '여성'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약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여성으로서 당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똥 밟았다' 생각하고 지나갔다. 대체로 그러한 상황에 잘 놓이지도 않았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많이 언급이 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 '상황' 속에 놓인 이들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정책'의 부재를 탓했고, '빈곤층'이 되기까지 그들이 보인 '게으름'을 탓했다. 처음부터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공존하는 소설]은 그동안 한쪽방향밖에 보지 못했던 나의 시선을 다른 면을 향하게 해주었다.

안보윤 작가의 [밤은 내가 가질게] 는 '아동학대'를 말하고 있다.

멍이 들거나 할퀸 상처가 있는 '주승이'를 보육하고 있는 나는 '상황' 변화를 통해 '주승이'가 학대 받고 있는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린다. 그러나 나는 '주승이'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가지지는 않는다. 나는 매뉴얼대로 할 뿐이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일까지만 하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끈적거리는 감정을 싫어한다.

"너는 그게 선의라고 생각하지? 돌아보고 미적거리고 자꾸 여지를 넘기는 거. (..) 이 세상은 공평해. 네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만만하고 짓밟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p.29)

이 구절을 보며 나는 나무반 선생이나 언니로 인해 '내'가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싫었다.

왜 자신들이 착한 척을 함으로써 '그 착함'을 보이지 않는 '나'를 악인으로 만드는 것인가..

선의를 무조건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 오히려 그냥 메뉴얼대로 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매일을 필사적으로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 '봉사 그 자체로 살아가는' '매번 속기만 하는' '바보같이 어리숙기만 한 ' 언니의 삶은 곤란한 삶이다. 그녀의 삶과 빗대어 나의 삶은 어딘가 메마르기만 한 것 같다.

"서비스를 요구하면 서비스만 해주면 돼. 하는만큼 받는 거야. 세상은 공평하거든"(p.36)

공평함을 외치는 나에게 '선의'만을 보이면서 '악의'로 돌려받는 언니의 삶은 공평하지 못한 삶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나는 '언니의 삶'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 사고뭉치 언니가 이번에는 개를 데리고 오겠단다.. 누가 돌보라고.. 극구 반대하는 나에게 언니가 말한다.

"아무 의심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거. 그래서 내가, 아직 상냥한 채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거. 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p.46)

이런 언니를 보며 '나'의 마음도 바뀌어 가는 걸 소설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솔직히 그렇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선의를 가진 '상냥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든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악의에 대항하는 것은 결국 동생인 '나'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무엇보다 난 왜 이 언니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동생의 편인가?

그만큼 내가 세상을 각박하게 바라보는 것인가?

세상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왜 난 이렇게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서유미 작가의 [에트르]는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지방대 출신의 두 자매의 이야기다.

지방출신.. 솔직히 서울에서 초,중,고,대학교를 다 나온 나로서는 그 거리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종종 지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는 순수한 '호기심'이 더 앞서곤 했다.

그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서도 .. 굳이 서울에 와서 취업을 하려고 하는가..그냥 지방에서 취업하면 되잖아.. 라는 가벼운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음에도 계속해서 줄여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

관사가 매번 나왔기에 한번도 집의 전세금이나 월세값을 걱정해본 적이 없었고,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한 짤리 염려가 없는 직장이었기에, 취업 걱정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을 너무나 편하게(?)만 살아온 나에게 '세상 일'이란 낯설고 두려운 일들이다.

서고운 작가의 [빙하는 우유맛] 에서도 취업의 불안정성, 그리고 육아 이야기가 나온다. 육아는 문제가 되는 '과잉 교육'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 한글, 수학'을 배워야만 하는 아이들.. 점점 세상이 양극단화가 되어가는 것일까? 주승이는 엄마, 할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는 한편, 민지는 네 살때부터 과외로 휘둘리는 삶이다. 이들이 결국 성장해.. 주승이는 '취업 불안'을 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될 것이며, 민지는 자신의 엄마인 '선화'처럼 되는 것일까?

최은영 작가의 [고백]은 성소수자의 고백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한다. 그 또는 그녀의 고백에 우린 '포용'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의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일방적 고백 또한 폭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왜 '주나'는 하필이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장교'가 되는 걸로 작품을 그려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일반인들의 눈에 '장교'의 이미지는 독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쉽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그런 사람일까?

김숨 작가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독거노인, 노인 빈곤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노인'의 고집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냥 개를 포용하면 되지.. 이미 자신도 바닥까지 온 상황에도 '개'를 밀어내려고 하는 저 고집은 무엇인가? 그 고집으로 인하여 이러한 빈곤 상태를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닌가?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고 술에만 의존했던 것도,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지금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폐지 수집'밖에 없는 것은 과연 사회의 문제인가? 아니면 그들이 다른 일을 알아보고자 하지 않음인가?

김지연 작가의 [공원에서]는 묻지마 폭행, 취중 폭행 이야기다. 요새 하도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인지라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폭행을 당하고, 그러나 폭행을 당한 이후에는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돌려지는 시선들..

"나한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좀 마 ! 그 사람은 정말 나를 개 패듯 팼다고!"(p.179)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라고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답답한 화자.. 이것이 자신이 '유부남'과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맞을 만한 짓을 했다"라고 인정해버리는 유부남 '기영'의 모습은... 찌질함 그 자체였다. (정말 이런 남자를 계속 만나야 하는 건가..)

이런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이 공원의 한 소녀와 강아지라는 것은 .. 조금 작위적이었다. 이미 신뢰가 상실된 공원이고, 사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 위로는 '아직 사회에 때묻지 않은 아이'인 것인가?

조남주 작가의 [백은학원 연합회 회장 경화]는 님비(Nimby) 현상과 그것이 내 문제가 된다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님비 현상(Not in my backyard)로 혐오시설 등을 자신의 활동 반경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이다. 공공 이익을 위해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내 이익을 손해볼 수는 없을 때 보이는 것이다. '경화'씨는 처음 "노인 치매 시설"이 자신의 학원 근처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어머니가 '인지 저하'를 보이고 '치매' 증상을 보이자 입장이 바뀌게 된다. 이는 어찌보면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신의 문제' '불통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바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관련하여 딱 하루 모두가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집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보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그러한 불편함을 겪고 나서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급하지 않다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소설 [백은학원 연합회 회장 경화]는 역지사지를 가장 잘 보여준 소설이다.

책의 마지막 소설 김미월 작가의 [중국어 수업]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은 불법 노동자이다. 이미 거기서부터 나는 이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악법이라고 '법'인데 .. 왜 이 법을 초월하려고 하는가? "돈"이 되니까 한국에 불법체류한다는 이들을 과연 이해해야 하는가?

이렇듯 책을 읽고 글을 써보니.. 내가 얼마나 강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연민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다른 상황이 아니던가? 과연 연민하는 마음으로 모두를 포용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내가 너무 가진자의 생각인 것일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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