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그비 교차로
찰스 디킨스 외 지음, 이현숙 옮김 / B612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편소설 모음집이어서 2시간만에 읽어버린 [머그비 교차로]

정말 '머그비 교차로'라는 가상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들이 어우러진다.


솔직히 여러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해서

너무 정신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면 어쩌나 했는데... 우려했던 어수선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머그비 교차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이 3편이 연속되게 이어지고, 다음은 그냥 열차 신호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 이후에, 열차 기관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다시 열차에 주목하게 했다가, 머그비 교차로 주변 '건물'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살짝 보여준 후, 열차를 통해 오고가는 우편화물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열차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다

'열차'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됨에 있어서 과도하게 연결되지도, 또 과도하게 붕~ 뜬 모습이 아니어서 이야기간 간섭이 전혀 없다.

첫번째 이야기 [바박스 브라더스]

이름도 웃기게 바박스다.. 뭔가 빠박이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바박스 브라더스' 가방을 가지고 나타난 '방랑신사'는 전혀 웃기지 않다.

그는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어 금방 재가 된 불처럼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50세 전후의 남자"로 "침울하게 고개를 숙인채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하며 " "내면에 억눌린 목소리를 지닌 남자"이다.

그 남자가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아무 소용없어!"(p.11) 라는 심정으로 '머그비 교차로'에서 내렸을 때, 이 남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무런 희망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우체국 전화번호부와 이 세상에서 바박스 브라더스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커다란 여행 가방 두 개에 새겨진 이름만 남긴 채 "오랫동안 저어왔던 노를 부러뜨리고 고의로 노예선을 침몰시킨 " 영 잭슨..

솔직히 영 잭슨이 '변화'된 것이 '피비와 램프'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둘을 만난 것은 일종의 촉진제가 되었을 뿐.. 실제 변화의 시작은 '영 잭슨' 본인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주도적으로 은퇴함으로써" 그리고 어딘가 방향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함으로써, 움직임으로써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런 그의 변화 덕분에 .. 나름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해 살고 있던 '피비'에게는 기쁨이 더해졌고,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힘들어하던 베아트리체도 어찌보면 이제서야 용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피비의 그 쾌활함. 얼마전 읽은 칼럼에서 '쾌활함'은 훈련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피비의 이 쾌활함은 어떻게 훈련된 것일까?

"저는 여기 누워 창문을 내다보며 그 길이 신사분을 행복한 종착역으로 이끌고, 또 언젠가는 다시 이곳으로 데려올 거라고 느낄거예요."(p.65 / 바박스 브라더스 앤 컴퍼니)

이런 피비의 쾌활한 모습에서 빨강머리 앤의 앤 셜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바박스 브라더스]와 [바박스 브라더스 앤 컴퍼니]는 연작 이야기이기 때문에 꼭 같이 읽어야 한다.

[본선-머그비 소년]에서는 찰스 디킨스 특유의 풍자와 조롱이 느껴졌다. 자신들의 리프레쉬룸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오히려 제대로 역할을 하는 곳과 사람들을 "악질 미치광이"라고 표현하는 자신들만의 생각에 갇힌 여자들. 이 여자들의 모습은 자기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는 누군가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이 여자들과 다르게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 스니프씨가 사라진 점이다.. 과연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설마... 여자들이 그를 처단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자신들만의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 틈에서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스니프씨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소년'은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이임에도 "어른들" 틈에 끼워 같이 선동하는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1번 지선_시그널맨]은 ... 도대체 이걸 어떻게 영화화하고, 뮤지컬화한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짧은 단편을.. 여기선 사람의 신념이 정말 무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연 '신호수'가 본 것은 "예지몽"이었는지, 아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거라고 자신이 믿다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딘가 "끌어당김의 법칙"을 생각하게도 만드는 이야기다.

[2번 지선_기관사]에서는 열심히 살아간 한 기관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솔직히 뭐라는 거냐?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에 자신의 아들을 태우고 달릴 때 더 조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서 결국 '가족'이 가장 중요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솔직히 무슨 주제를 던지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3번 지선_보상하우스]는 조금 섬뜩했다. 처음엔 '주인'이라는 사람이 '뱀파이어'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왜 거울을 보지 않는 것일까?거울에 자신이 비치지 않기 때문에.. "왜 거울을 보지 않는지?"라는 이유가 밝혀지고 나서는... 이후 주인이 죽었을지, 아니면 살았을지가 궁금해졌다.

사람이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있을까?

기억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 편인 나로써는 사실 그렇게까지 임팩트 있는 일을 겪어보지 않은 터라.. 공감이 되진 않았다.

그리고 의사 가든박사가 '주인'의 이약를 듣고 나서 공포감에 사로잡힌 이유가 궁금하다.

"이 남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능력을 상실했을까?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있었을까? 그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말했을까? 그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공포에 휩싸여 잠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p.195 / 3번 지선_보상 하우스)

은 가장 흥미로웠다. 추리소설의 느낌이랄까? 도대체 붉은 모로코산 가죽으로 싸인 '송달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그 중요한 '송달함'이 사라졌음에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는 점이 신기했다.. 별로 중요한 자료가 없었던 것일까? 약간 당시의 우편 제도가 어떠했는지 궁금해졌다. 새로 부임한 소장이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한 말 "아!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텐데!"라는 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상황이 달라진다고 보았을까?

[5번 지선_엔지니어]편에서는 어찌보면 가장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슬프기도 했던 이야기..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며 지아네타가 너무나 미웠다.

왜 사람은 사람에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끝까지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시대 배경을 느낄 수도 없었고, 그냥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날 수도 있을지 모를 이야기 같았다.

다만 대도시가 아닌 기차가 다니는 시골 마을에서 일어날것 같은 느낌이랄까?

기차의 오고가는 모습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한 장면도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방랑자'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클리셰인가 하는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문체를 즐길 수 있었던 책 [머그비 교차로]이다.


찰스 디킨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가볍게 읽어볼 만한 이야기

기차 덕후라면 당연히 읽어야 하는 기차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

추리소설 덕후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 과연 '그 녀석'의 정체는 무엇인지?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질문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