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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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부터 단편소설 모음집을 읽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 빨리 끝나버린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지만 단편소설이 주는 매력이 확실히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단편소설의 매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의 핵심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

둘째, 한 편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한 호흡에 작품을 소화할 수 있다)

셋째, (단편 소설 모음집은)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주제들이 이어진다.

넷째, (단편 소설 모음집에서) 나와 합이 잘맞는 작가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번에 창비 서포터즈로써 읽게 된 소설은 [끌어안는 소설]과 [함께 걷는 소설]입니다. 그 중 [끌어안는 소설]의 키워드는 '가족'입니다.

가족이라는 물리적,유기적 생명 공동체에 대해 엮은이들은 다음 구절에 주목합니다.

"이토록 모순된 유기적 생명 공동체가 세상에 또 있을까? by 톨스토이"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가족을 돌아보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아픔에 공감하며 새롭게 찾아올 만남 또한 온 가슴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따스함을 느끼기 바란다는 엮은이들의 마음을 담아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정지아 작가의 『말의 온도』 ★★★★★

이혼한 딸과 함께 살게 되며 '본채'를 비워주고 '사랑방'으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딸인 나는 엄마의 식성도 알게 되고, 엄마의 말속에 담긴 뜻도 이해해가며 그렇게 어릴적 자신이 가진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화자인 '나'에서 제 모습을 많이 비춰보게 되고, 엄마라는 존재의 그 깊은 의미에 대해서도 느끼게 하는 소설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살짝 엄마의 손을 잡아봅니다.

벚꽃이든 산수유든 아무 꽃이나 보러 가세.

꽃을 멀라고 나가서 볼 것이냐. 눈앞에 젤로 이쁜 곷이 있는디.

 

두번째 이야기는 손보미 작가의 『담요』 ★★★

[난 리즈도 떠날거야]라는 작품을 통해 돈과 명성을 얻게 된 "나"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던 스토리를 들려준 친구 '한'과 이 소설 때문에 절교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상사인 '장'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설에 담음으로써 '장'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년 후 '한'이 죽게 되고, 그리고 또 일년 후 허름한 술집 안에서 '장'과 마주 앉은 '나'는 '장'의 이야기를 '장'의 목소리로 듣게 됩니다. 그리고 '장'이 아들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겨내게 되었는 지를 듣는데.. 솔직히 그 부분이 전 잘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약간 갑자기? 이런 느낌)

"정말, 우리가 죽을 때가 되면 뭐든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농담이죠."

장은 불콰해진 얼굴로 익살스럽게 웃었다.

 


세번째 이야기는 황정은 작가의 『모자』 ★★★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됩니다. 잉? 갑자기...

어딘가 묘하게 생뚱맞은 이야기 .. 사람이 갑자기 '모자'가 된다니...

어딘가 SF적인 느낌인거 같으면서도 왜 하필 '모자'인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결론이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 생각하니 꼭 그렇지도 않아서, 마지막 순간에 맥이 빠져 버렸다. 너무 몰랐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자기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 누구에게도 저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는 식의, 건강에도 나쁜 생각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네번째 이야기는 김유담 작가의 『멀고도 가벼운』 ★★★★★

이번 단편집에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집성촌을 배경으로 하는 점도 우리 고향 '고창'이 생각나게 했고, 어머니의 부업이라는 것에서도 과거 어머니가 열심히 하시던 "소일거리"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제일 재미있는 것은 '보배 이모'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입니다. 인간에게는 어쩜 이리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동정심을 가졌다가도 얄밉다는 생각을 하고, 자신이 준 좋은 것들만 기억하고 자신이 던진 상처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모습들이 지금 우리네 삶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계산적인 게 왜 나쁜 거예요? 저는 계산적인 게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계산을 틀리게 하는 게 나쁜 거죠.

 

어린 시절 이모는 내게 뉴질랜드 이야기를 다채롭게 들려 주면서도 빈말로라도 나중에 크면 놀러오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모와 나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적당했다. 우리는 그저 먼 친척에 불과했고, 서로의 삶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친척관계가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섯번째 이야기는 윤성희 작가의 『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 ★★★★

깨져버린 가족을 떠나 새롭게 만든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안식을 찾게 되는 주인공. 이야기는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하는 8명의 형제들의 이야기는 잘 각색하면 미니시리즈 하나는 만들어질 듯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만나게 된 W와 Q 그리고 고등학생까지

혈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보물을 찾으러 갔다 온 사이, 주방장이 도망을 갔다.

(...)

그때 내 머릿속을 무엇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여섯번째 이야기는 김강 작가의 『우리 아빠』 ★★★★★

저출산 대책으로 인공수정을 통해 임의의 아이를 만드는 세상 그렇게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문제는 이 정자를 제공하는 '우리 아빠'들이 사회적으로는 '부적응자' 내지 '낙오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정자를 제공한 '돈'이 있어야만 생활을 연명할 수 있는 자들.. 그런 이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에게 부성애를 가진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지... 신선한 소재면서.. 정말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 란 생각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 아빠'가 되어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혈액을 팔아 생계를 이었다는 옛날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 아이'는 그들의 자식이다. 그들의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세상이 원하는 딱 그만큼이 되었다. (...) '우리 아이' 사업으로 혜택을 보았고, 일자리를 유지하게 되었음에도 개인으로 만나게 되는 '우리 아이'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일곱번째 이야기는 김애란 작가의 『플라이데이터리코더』 ★★★★

마지막 이야기는 "플라이데이터리코더"라는 이름의 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섬에 사는 '아이'는 "에미 애비 없는 자식"으로서 엄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던 중 우연히 발견한 '블랙박스'를 통해 '엄마'와 이야기한다는 내용인데.. 플라이데이터리코더라는 것이 날으는저장장치 "블랙박스"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할아버지와의 동거란 세 명의 생부를 데리고 사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아이는 목청 좋은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찔끔찔끔 오줌을 지렸다.

출처 입력

잘 있으래. 어디서든 잘 있어 달래. 그러면 자기가 무척 기쁠 거래.

 

일곱편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 끌어안는 관계들을 보여줍니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끌어안는 소설]를 통해 잠시 따듯한 사람의 온기를 느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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