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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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득찐득하고 미끈미끈하고 무언가 누르스름한 느낌이  제가 생각하는 버터의 느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유즈키 아사코의 [버터]의 표지는 제가 생각하는 그 버터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노란색이지만 무언가 묵직한 느낌의 노란색..

그리고 책 띠지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으나 표지의 여인이 들어올린 뚜껑 밑에 있는 것은 호랑이..

그 호랑이 이야기는 저도 알고 있는 [꼬마 삼보 이야기] 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인데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어렴풋한 기억에 흑인 소년이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나서 호랑이들이 소년을 잡아먹으려다가 서로 나무를 빙빙돌다가 결국 버터가 되어버려 그 버터를 가지고 집에 돌아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가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나온다고 해서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옵니다. 원제목은 [ The Story of Little Black Sambo] 로 영국작가 H. 베너먼이 1899년 발표한 그림동화입니다. 버터의 이야기는  이 [꼬마 삼보 이야기]가 책 속의 책 처럼 연결됩니다. 왜 호랑이들은 삼보를 놓고 자기들끼리 빙글빙글 돌았을까요? 그리고 이들이 나중에 왜 ‘버터’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왜 “리카”는 이 이야기를 계속 떠올리며 ‘가지이 마나코’를 생각할까요?


(44) “가지이 마나코가 사랑하는 버터, 남자들에게 빼앗은 돈으로 얻은 미식의 상징. 그것은 [꼬마 삼보 이야기]의 호랑이가 녹아서 하나가 된 듯한 잔혹하고 밝은 황금빛 맛을 내고 있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무언가 찐득찐득함이 자꾸만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리카의 행동이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무언가 ‘가지이 마나토’에게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가지이 마나코는 구치소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정말 ‘가지이 마나코’가 범인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모티브였던 ‘가지이 마나코’ 보다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점점 더 생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 등장할때부터 불안한 빛이 감돌던 레이코는 역시나 였습니다. 그런데 이 레이코의 선택과 행동이 진짜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은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선택을 할수가 있지? 사람이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른 것일까?


작품속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야기는 처음에는 ‘가지이 마나코’에 주목합니다.

(30) 예쁘고, 예쁘지 않고를 떠나서 그녀는 일단 날씬하지 않았다. 이 일로 여자들은 격하게 동요하고,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혐오감과 증오를 드러냈다. 그러잖아도 성숙함보다 처녀성이 존중받는 나라다.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철이 들 때부터 누구나 사회에 세뇌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뚱뚱한 채 살아가겠다는 선택은 여성에게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이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동시에 무언가를 갖추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가지이는 무엇보다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의 자격 요건은 무시하고, 스스로를 한 사람의 어엿한 여성으로 인정한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것, 존중받는 것, 선물이나 사랑을 받는 것, 그리고 노동이나 집단 행동 등 싫어하는 일과는 적극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상했습니다. 뭐지? ‘가지이’에 대한 우호적인 글인 것인가? 어찌되었든 연쇄살인범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고 했는데 그녀를 어떤 ‘우월적 가치관의 소유자’로 만들고 ‘여신’으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저자인 유즈키 아사코의 마음을 대변할 ‘리카 마치다’의 이 생각이 조금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러다가 점점 그녀 ‘가지이’를 옹호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성적 탄압 등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 소설인것일까요?


거기에 욕망에 대한 부분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약간의 동성애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82) 누군가의 욕망을 일으키는 것은 굉장히 즐겁다.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버터가 녹듯이 상대의 눈이 빛나며 드러나는 달콤한 굶주림이 눈에 보인다. 자신의 힘을 동원하여 누군가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나쁜 일, 비열한 일,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그런식으로 느꼈더라…..  무의식중에 상관하고 싶지 않은 상대의 욕망을 깨웠음을 알았을 때는 소름이 끼치고, 자기혐오에 빠진다. 하지만 자기가 점찍어서 작업한 상대가 욕망한 것이라면, 조금도 리카의 존재를 깎아내린 것이 아니다. 줄곧 눌러두었던 순수한 감정이 피부로 배어나는 걸 느꼈다. 이거. 멈출 수 있을까, 불안해진다.

리카의 불안감이 그대로 소설 속 이야기로 전개 되면서 읽는 저도 불안해집니다. ‘리카’가 곤경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빨리 ‘가지이 마나코’의 정체가 다 탄로나길 바라며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가지이 마나코’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그녀가 뭔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딘가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게 분명해졌습니다.


(114) “나는 남자를 기쁘게 해주는 게 즐거워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이 아니야. 남자를 돌봐주고, 지탱해주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것이 신이 여자에게 내린 사명이고, 그걸 완수하는 것으로 여자는 모두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말하자면 여신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지. 몰라요? 최근 까칠한 분위기의 여자들이 늘고 있는 건 남자의 사랑이 아쉬워서 그래요.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여자는 남자의 힘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해요. 조금도 부끄러운 게 아니야.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즐겁게 해주고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면 놀라울 만큼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간이 기다려요.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니까, 다들 괴로운 거지.”


어찌보면 그녀의 한쪽 방향으로 편향된 이 시선의 반대에는 또 하나의 왜곡된 가치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지이 마나코가 원한 것은 오직 숭배자뿐 입니다.


6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소설 이야기는 처음에는 ‘가지이 마나코’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점점 전개되면서 ‘리카 마치다’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바뀌고, 이야기 속 큰 반전이 있은 이후에 결론적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버터’의 세계와 식도락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 그리고 죄의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라는 일차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인간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라는 본질적 질문까지 나아가게 만드는 책..

책을 읽으면서 이걸 영화화하면 진짜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 요리 소설같기도 해서 어딘가 모르게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책이 생각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들을 그대로 영화화해서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언젠가 영화가 나오길 기대해보며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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