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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2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클래식 / 2020년 3월
평점 :
세상 이보다 더 막장일 수 없는 최고의 막장 드라마 [리어왕]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라는 것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 내용을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저 딸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받고자 했던 어리석은 아버지 왕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이 안에 담긴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지금 막장드라마들에서 그려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참고로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저는 햄릭, 리어왕만 읽었습니다)
[리어왕]의 시작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늙은 리어왕이 던진 한마디 때문입니다.
“말해 보아라, 나의 딸들아! 과인은 이제 이 나라의 통치 및 국토방위와 국정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하니, 너희들 중 누가 가장 나를 사랑한다 말하겠느냐?”
뭣이 중한데..
도대체 리어왕은 “가장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 왜 궁금했던 것일까요? 사랑에 대한 확인, 검증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아무리 아버지가 이러한 질문을 던져도 적당히 답변을 해도 좋았을 것을 여기서 굳이 막내딸 코달리어는 정직한 답변을 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폐하. (....) 불행히도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자식 된 도리에 따라 아버님을 사랑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식된 도리에 따라 아버님을 사랑한다는 이 말이 리어왕은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서운했던 것일까요?
이 서운함에 대한 리어왕의 표현 또한 격합니다.
“과인은 이 자리에서 저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모두 부인하겠다. 핏줄도 천륜도, 지금부터 너는 영원히 내게 낯선 사람이다. 차라리 야만인 스키타이인이나 부모를 먹는다는 식인종을 가깝게 여기고 동정하며 도와주는 정도로만 한때는 내 딸이었던 너를 대하겠다.”
딸인 코딜리어를 야만인이나 식인종에 대한 동정의 마음 정도로만 대하겠다고 합니다. 이미 이때부터 리어왕은 미쳤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는 코딜리어를 그녀에게 청혼한 프랑스 왕에게 보내버립니다.
그리고 리어왕이 믿었던 두 딸은..코딜리어가 사라지기도 전에 아버지를 망령든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여기에 두번째 작품의 배경이 되는 글로스터 백작의 성. 앞서 리어왕에게 세 명의 딸들이 등장했다면 이번에는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적자인 에드거와 서자인 에드먼드. 여기에 이 작품 전체를 잡고 흔들었던 ‘에드먼드의 뜻’이 이루져가는 과정들! “나는 가지를 뻗고 번성할 것이야.” 이러한 에드먼드의 번성함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사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일까요? 운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에드먼드가 마지막 장면에서 외쳤던 “운명의 수레바퀴가 한 바퀴 돌아, 내가 여기 섰구나.” 라고 했을 때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무엇인가요?
중간 장면에서 리어왕이 말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우는 것은 이 거대한 바보들의 무대에 나왔기 때문이다.” 거대한 바보들의 무대가 바로 운명일까요?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리어왕]에 나오는 문장들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문장이 많습니다. 아마도 후대의 작가들이 이 작품을 읽고 인용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자는 굴러떨어질 일만 남아 있지만 밑바닥에 선 자는 웃을 일이 남아 있지.”
“여기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지금이 최악이라 말할 수 있는 동안은 아직 진짜 최악은 아니야.”
“미치광이가 장님을 인도하는 것이 이 시대가 가진 병이 아니겠는가”
“죄를 짓기 전에 미리 벌을 받는 자를 동정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인 걸 모르시네.”
“누구에게나 슬픔이 그토록 어울리는 것이라면, 슬픔은 가장 사랑받는 보석이 될 겁니다.“
“내 지위는 오로지 내 행동으로 지킬 뿐,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 이 슬픈 시대의 무게를 감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바를 말해야 할 것입니다.”
왜 이 작품이 세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불리는 것일까요? 결국은 모두가 죽어버리게 되는 비참한 비극이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행복해지는 사람이 없어서일까요? (아무도 행복해지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은 ..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 어떠한 교훈을 주려고 하기 보다는 인간사의 여러가지 모습들에 대해 어찌보면 극단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이번 [리어왕]을 읽게 된 것은 고전독서토론 프로그램인 ‘필로어스’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던진 질문들말고도 다양한 여러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었는데요, 1회차 토론때는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 2회차 토론때는 “리어왕이 쓴 화관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떠한 답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책 속의 텍스트를 통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들이 필로어스의 최고 매력입니다. 약 2시간 가량의 토론을 통해 무엇보다 작품속의 문장 하나, 장면 하나 하나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냥 혼자 읽었을 때는 간과하고 넘어갔던 부분들도 놓치지 않고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