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 조선 백성들, 참다못해 일어서다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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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임술년 2월 18일 진주성을 시작으로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개를 잡아 피를 입에 바르고 맹세합시다. 우리가 벼슬아치와 악질 토호를 징치합시다"
이들 봉기군의 분노는 보이는 양반마자 짓밟고 옷을 찢으며, 구실아치들을 잡아 곤장을 치고, 불구덩이에 던지고 짓밟아 죽입니다. (아... 분노한 민중의 무서움이라니..)

** 구실아치란 조선시대에 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 입니다.

이들의 분노의 모습에 대해 조정에서 파견된 박규수는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립니다.

(49) 진주 병영에서 환곡을 들어먹고 나서 때를 틈타 한 고을의 두민을 불러 모아 술과 밥을 먹이며 유인하기도 하고 감옥에 가두어 협박하면서 6만 냥 가량의 돈을 집집에 배당하여 백징(白徵)하려 했다. 이에 민심이 끓어오르고 사람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임술록] 중 "박규수 장계"

** 백징(白徵) : 조세를 내지 않는 땅이나, 납세 의무가 없는 사람에게 이유 없는 세를 물리거나,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빚을 물리는 일.
이 1년간의 봉기는경상도 18고을, 전라도 54고을, 충청도 43고을에서 각각 일어납니다. 농업이 집중된 호남지역에서 봉기가 가장 많이 일어어납니다. 그러나 이때의 봉기는 앞으로 일어날 동학농민혁명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입니다. 봉기가 분산적이고 고립적이어서 이웃마을과 연계되지 못했고, 수령과 아전들은 남은 향촌 권력을 쥐고 아직 버틸 힘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봉기세력이 요구한 것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삼정에 따른 폐단을 시정하라
둘째, 부정을 저지른 수령과 구실아치를 처벌하라.
셋째, 관련 문서를 불태우고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무고한 죄인을 풀어주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미봉책으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합니다. 그러나 실제 삼정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그닥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봉기가 잠잠해지자 "삼정 개혁"또한 잠잠해지며 "너무 서둘러서 완벽하지 못할 염려가 있으니 옛 규례대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 "환자는 수백년 동안 지켜온 법제인데 하루아침에 폐지하는 것은 안타깝다"는 말로 개혁은 물거품이 됩니다. (어찌 변하는게 하나도 없는지..)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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