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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평점 :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정말 마비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거리는 멀어졌고,
평상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가자"라고 했던 그 말이 얼마나 후회되던지..
"나중에"는 없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될지를..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닐 경우에는 잘 모릅니다.
특히 다른 나라의 사정 따위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막연히 저 나라는 선진국이니 좋을 것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우리나라는 아직 저 나라 수준까지 가려면 멀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료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이번 책 [치료받을 권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사실 코로나 초기에 엄청 불평불만을 했습니다.
줄 서야 간신히 구매 가능한 "마스크"에 대해서
제대로 된 출입국 조치가 되지 않아 계속 확산되는 "확진자"에 대하여
금지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모이는 "종교 집단"에 대하여
그런데 대신에 한번도 의료 지원에 있어서는 불평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병원에 가면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의 치료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 의료 지원마저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료 시설이 낙후되어서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의료 산업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그저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이가 겪어야만 했던 한 사람의 병상일기입니다.
하필 그는 코로나의 시기에 '세균간염'과 '패혈증'으로 인해 응급실에 가야만 했고
그 최첨단의 의료 현장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묵살되어지는 치료받을 권리'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개인의 권리를 위해선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
권리란 우리가 응당 누려야 한다고 확신하는 무엇이지만,
존재하는 권력자들에게 촉구될 때만이 세상의 현실이 된다.
출처 입력
저자가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은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에 대응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저자는 자신들이 '치료받을 권리'조차 갖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의 모든 선진국가에서 그러하듯, 누구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적절한 의료보장을 누릴 수 있어야, 동료 시민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더 쉽게 가능해진다.
미국의 질병의 한 부분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언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미국 어디에도, 심지어 삶의 경우에도, 심지어 죽음의 경우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이슈화되었던 의료 민영화가 가져오는 폐해가 어떠한지를 저자는 신랄하게 이야기합니다.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을 받는 상황.
딱 코로나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저자의 이 신랄한 목소리는 더 날이 설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또 왜 미국에는 왜 그리 '약쟁이'들이 많은 가에 대해서도 본질적 문제점을 이야기합니다.
'약 공장'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근본적 치료가 아닌 '약'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약 공장 pill mill'은 고통을 겪든지 약을 먹든지 하라는
노골적 선택지를 제시하는 의료 시스템의 논리적 근단을 드러냈다.
'약공장'은 의사들이 대개 현찰을 받고 마약성 약물 처방만 해주는 영업 시설이다.
출처 입력
어떻게 보면 엄청 무서운 말입니다. 의사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마약성 약물 중독을 권하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말이죠.
저자는 트럼프를 맹비난합니다.
트럼프 같은 정치가들이 사람들이 고통으로 휘청대기를 바라고 그렇기에 의료보장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약간은 심각한 내용이 이어지는 책을 읽다가 문득 한 부분의 번역에 시선이 갔습니다.
아이를 가진 동안, 그리고 낳은 뒤로도 아내는 조그만 '모아 여권(mother-child passport)'을 들고 다녔다.
출처 입력
응? 모아 여권? 엄청 낯설은 말이었습니다. 대부분 모자나 모녀라고 표현하는데 모아?
기존 우리나라에서는 모자수첩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자는 아들 子의 의미보다는 자식 子의 의미로 해석할 듯 합니다.
사전에도 mother-and chile handbook 을 모자수첩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모아'라고 아예 우리나라 말에는 없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합니다.
아이라는 뜻에서 아자를 사용했을까요?
이번 책을 통해 한가지 확실하게 안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나쁜 소식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트럼프가 코로나에 대해서 낙관적 반응을 보였던 것은 그렇게 해야 국민들의 마음을 끌어 당길 수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고, 또 진짜 트럼프에게 아무도 나쁜 소식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질병을 다른 나라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본질적 사실을 얼마나 은폐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감염이 시작되었든, 취약하기로 따지거나 책임감으로 치면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집단을 희생양 삼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권위주의에 비끄러맨다.
출처 입력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맘에 들어온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계몽주의의 구호인 "알고자 하는 용기 sapere aude"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틀릴 수 있다라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
그 받아들인 지식도 틀릴 수 있다라는 것을 언제든 받아들일 용기...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러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써 있을 때면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더 알고자 하는 용기"를 내 봐야겠습니다.
그동안 나와는 관계 없다고만 생각했던 '의료 복지"에 대해서 조금 더 심도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 지원으로 읽은 도서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