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평점 :

알기 전까지는 행복했으나 알게 됨으로써 불행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광고 마케팅의 수단이었음을 알았을 때..
맛있게 먹고 있는 이 음료 속에 온갖 나쁜 성분은 다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사람이 나를 더이상은 사랑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승혜 북클럽의 주제 도서로 읽게 된 [나를 보내지마]에서도 알게 됨으로 슬퍼지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나를 보내지마>는 사전에 '복제인간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다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중간 장면마다 영화 [아일랜드]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특히 자신의 근원자를 찾기 위해 노퍼크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강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복제인간들이 자신의 원조를 찾기 위해 찾아갑니다.
<나를 보내지마>에서도 루스는 자신의 근원자를 찾기 위해 '사무실' 앞을 서성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반전이었습니다.
루스는 자신의 근원자가 '사무직원'임을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저런 곳' 이야말로 일하기에 '적당한' 장소 같아.
202페이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나를 보내지마>가 [아일랜드]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 플롯이라는 것은 '근원자'를 찾는 이유에서부터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그들은 왜 자신의 근원자를 찾고 싶어하는가?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태어난 아니 만들어진 클론들
존재 이유는 내가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 설정되는 것일까요?
처음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장기 기증'과 관련된 '인간 복제'의 문제를 말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기 기증'을 임하는 클론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특별히 장기 기증을 피하기 위해 도망을 치거나 회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장기 기증 이후에 '간병사'의 도움을 받아 회복을 하고 3~4차례의 장기 기증 이후에 죽음을 담담하게 맞습니다.
책에서는 이들의 죽음을 미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경시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장기 기증'이 어찌보면 자신의 삶의 목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한 것은 '인간다운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존재 이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장기 이식을 위한 클론들이 있는지 .. 이들을 위한 집단 거주시설 중 '헤일셤' 학교가 있습니다.
클론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 '헤일셤'
내가 코티지에 오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라는 건 잘 알아.
하지만 너희 헤일셤 출신들이야말로 정말 행운아들이야. 그러니까 ...
213페이지

이곳 '헤일셤'은 아이들을 인간적이고 교양있는 환경속에 자라게 합니다.
그러면 '클론들'이 일반인들처럼 지각 있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성장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불편을 느낍니다.
"왜 그들이 지각있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자라야 하는가?" 입니다.
그들에게 장기 기증을 위한 '클론'은 그저 "의학 재료"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의학재료들이 자신들보다 우수한 인간이 된다면? 사람들은 [모닝데일] 사건에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결국 '헤일셤'은 폐지되고 맙니다.
어차피 "의학재료"였다면 그 존재로만 있도록, 자신들과는 별개의 존재로 여기고자 합니다.
이러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들보다 낫다라고 생각하는 '에밀리 선생님'
자신들의 행동이 불편하고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며 결국은 행동하지 않는 '루시 선생님'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동조할 수 없었던 '마담'
아마 제가 그 학교에 교사로 취직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되었을가요?
이렇게 가여울 데가. 우리가 너희를 위해 뭘 해 줄 수 있겠니?
알량한 우리 계획과 전략을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느냐고?
348페이지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인물 마담 "마리클로드"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일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밀리 선생님"은 다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이 그래도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보호 아래 있는 동안에는 너희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게 우리는 신경을 썼다.
또한 너희가 우리를 떠난 후에도 최악의 것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배려했지.
우린 너희를 위해 적어도 그런 많은 일을 했단다.
358페이지
그리고 이상주의자였던 루시 선생님. 그녀는 아이들에게 냉혹한 현실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줍니다.
다른 누군가가 너희한테 얘기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해주마.
전에 말한 것처럼 문제는 너희가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거야.
(...)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 지 알아야 한다.
119페이지
너무나 단호하고 현실적인 이 말에 아이들은 오히려 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상주의자인 루시선생님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데요.. 저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루시 선생님'을 선택할 듯 합니다.
말 그대로 이상주의자인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해버리는 무력감도 느껴집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싶은 생각입니다.
현실 감각이 가장 뛰어나고 한편으로 '이상적'인 면도 추구했던 가장 타협적인 인물은 "에밀리 선생님"입니다.
심지어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그녀와 같은 단호함을 가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쩜 에밀리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한치의 후회도 없는 단호함을 보일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가즈오 이시구로는 작품의 제목을 "나를 보내지마(Never Let Me Go)"라고 짓습니다.
처음에는 "잊혀지기 않기 위함"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는 장기 기증을 위해 나를 보내지 말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제목의 의미를 작품의 세 주인공인 캐시, 토미, 루시의 입장에서 각각 해석해보니다.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여전히 간병사의 일을 하고 있는 캐시. 자신이 클론이라는 것은 알지만 아직 한번도 장기 기증을 하지 않은 캐시. 오히려 문학작품을 탐닉하고 세상과는 어느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캐시. 자신의 일을 담담히 해내는 캐시.
그녀에게 "나를 보내지마"는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이 간병인의 생활에서 '장기 기증자'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계속 '간병인'으로 남고 싶다는 '캐시'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요?
4번째 장기 기증을 앞두고 사랑했지만 먼 시간을 돌아서 만나야 했던 캐시를 '간병인'으로 두게 된 '토미'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쳐진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캐시가 좋았지만 루스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던 '토미'
그녀가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마지막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본 루스. 이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치 않았던 루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 희망이 있었기에 행복했을 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꿈와 이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루스. 그녀가 붙들고 싶었던 것은 이러한 이상, 꿈이었을까요?
토미와 캐시가 알아낸 모든 것을 모르고 죽은 루스... 그녀의 삶은 어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예 처음부터 몰랐다면 오히려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알게 됨으로써 더 불행해지는 것들.. 아마도 이 책 제목 <나를 보내지마>에서는 이 진실의 순간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하는 이미 진실을 알게 된 자들의 절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돈내산 + 솔직담백 + 독서토론 이 곁들여진 서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