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책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받은 거 같은데 왜 나는 안오는 거지...
착오가 생긴건가? 취소된 건가?
그러다가 우체국 사서함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랴부랴 책을 찾아와 봉투를 열었습니다.
샛노란 표지, 손바닥보다 약간 큰 사이즈의 아담한 책입니다.
깔끔한 표지가 맘에 듭니다.
*요샌 대부분이 책 디자인들이 비슷비슷한 듯하여 오히려 이런 깔끔한 디자인이 훨씬 나은 듯 합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이것저것 마무리를 해놓고 시계를 보니 9시..
어떤 내용인지 조금만 읽어볼까 하고 손에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훅~ 시계를 보니 11시를 지났습니다.
총 8편의 단편...
한 편, 한 편 읽어나갈때마다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무엇보다 작가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였는데, 분명 문제를 문제로 보는 작가였는데
전 "작가가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하면서 열광했습니다.
어느순간부터 여론들은 '조남주' 작가를 급진적 페미니스트에 '남녀 편가르기'의 선봉장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녀의 보행환경의 열악함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게으름'을 포장하는 것으로 비난받았고,
전업주부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언급 또한 다른 노동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받았으며,
이번 [우리가 쓴 것]에 실린 "현남오빠에게" 라는 책은 한남 표현을 한 것이 아니냐며 비난받았습니다.

누가 그녀를 비난했을까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였습니다.
언론의 비난에 함께 동조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오히려 사회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책은 참 좋아~ 근데 작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어찌보면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시대를 잘 태어난 작가'라는 누군가의 평이 제 안에 꽂혔던 듯 합니다.
글은 잘 못쓰지만 "소재"를 잘 골랐기에 "히트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먼저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그 말에 동조하며 작가를 폄하했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작가의 이야기가 언급될때마다 '아우~ 또 편가르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소설 [우리가 쓴 것]을 읽으며 깜짝 놀라고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였는데
이렇게 세상의 문제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작가였는데
이렇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작가였는데
내가 무얼 알고 있다고 함부로 작가의 글을 평했던가...
다른 여성 작가의 훌륭함을 말하기 위해 내가 비교 대상으로 끌려 나오거나 비평과 논쟁과 담론 안에서 내 소설이 납작한 퍼즐 조각으로 잘려 끼워 넣어진 일은 셀 수도 없다.
내가 살아온 길고 복잡한 시간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여러 역할과 글을 쓰는 사람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다양한 고민과 각각의 고민에서 시작된 모두 다른 글들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함부로 호명되고 있었다.
납작한 것은 뭘까. 납작하게 만든다는 것은 뭘까. 이후로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오기] 중에서
작가는 누군가를 평하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 경각심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와서 우리까리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교수님께는 아무 영향도 없어요.
아니, 전혀 알지도 못하시겠죠.
그래도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한 사람을 모함했잖아요
[현남오빠에게] 중에서
세상에서 무서운 사람이 '책 한권만 읽고 그걸 진리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을 주변에 강요하는 사람.
"나의 생각은 옳고, 너는 틀리다"이러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주변에 강요하는 사람.
혹시 내가 그러한 사람은 아니었는지...
인생에 대해, 어떤 관념들에 대해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기 위해서도 이번 책 [우리가 쓴 것]은 사회 전반의 여러 현상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매화나무 아래]에서는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이들의 심정을
[오기]에서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며, 악플러들에 대한 것을
[가출]에서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의 심경이
[미스 김은 알고 있다]는 갑질에 대한 '을'들의 반란을
[현남 오빠에게]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모든 이들을
[오로라의 밤]에서는 '육아'전쟁을 치루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양육자들을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는 '성폭력'과 관련한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에 대해
[첫사랑 2020]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독자라면 [우리가 쓴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감동을 받을 것이고
[82년생김지영]을 읽고 불편했다면[우리가 쓴 것]을 읽으면서 조금은 위로를 받을 거 같습니다.
읽으면서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가 사회의 여러 계층을 생각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야기 중에 "고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주어서 고맙다"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저야말로 고마웠습니다. 이러한 글을 쓰는 작가로 '조남주' 작가를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출판사 지원으로 읽은 도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