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버지께서 쓰윽~ 서재로 들어오셨습니다. 한참을 책장을 지켜보십니다. 뭔가 불편합니다.'왜요? 뭐 찾는 책 있으세요?""응? 아니.. 그 가수 있잖아.. 양희은... 그 책이 있다는데.. "어물쩡하고 넘어가시긴 하셨지만 분명히 표현하십니다.'나 양희은 책 보고 싶다'칠순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하신 아버지이신데.. 원하신다면 구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검색해보니.. 올 4월에 나온 따뜻따뜻한 신간입니다.냉큼 주문을 하고 (주문을 핑계로 보고 싶었던 책들도 함께 장바구니에 담았다) 기다렸습니다.책을 받아보니 벌써 6쇄~ 확실히 지지층이 두터운 가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이 [그러라 그래]아.. 뭔가 음성 지원이 들리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아버지께 드리기 전에 자리에 앉아서 쓰윽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 읽어버렸습니다. "에세이"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 이 책 재미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양희은'씨의 모습과 음성이 오버랩되면서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서 이보다 더 솔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함부로 누군가의 인생을 평할 수는 없지만 살아가면서 여러번 큰 사고를 경험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녀에게 인생은 정말 덤이 아니었을까요?그러다보니 인생에 대해 욕심부리고 집착하기보다는 말그대로 '그러라 그래~'라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그러면서도 많은 나날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갔음을 조용히 자조합니다. 어찌보면 가수로서 최고의 영광을 다 누려본 그녀였는데 여전히 노래를 부를 때 떨린다고 말하는 그녀그녀는 자신의 노래 인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이렇게 인생의 정점이 찍히는 걸까? 과연 정점이 있기는 한 걸까?나는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까?즐겁게 놀듯이 노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다.슬렁슬렁 놀듯 무대를 누비며, 숨 쉬듯 말하듯 하는 노래.언제쯤에야 그런 경지에 닿을 수 있을까?아마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내려올 수도 있겠지. 최고의 가수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도 이러한 고민이 있었구나..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 '정점'에 오르지 못하면 어떠하리~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맥락은 아닐 수 있지만 저 또한 지금의 일에 있어서 정점에 올라가기 위해 지금도 치열하게 일을 하고 버티고 있지만 그러다 또 못올라가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였던 '냉면' 이야기처럼 꾸밈없고 기본이 탄탄한 담백한 냉면같은 사람. 그 모습이 딱 양희은씨의 모습이라는 생각입니다. 양희은씨의 이 에세이가 전 딱 이 냉면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식이 없고 꾸밈이 없이 냉면이라는 그 본질에 충실한 사람.이 책은 정말 꾸밈이 없습니다.뭔가 화려한 에피소드들, 교훈적인 말들로 가득차기 보다는... 양희은님의 일기장 한편을, 일상의 한 단면을 그냥 툭하고 펼쳐보이는 느낌입니다. 그 담백함이 정말 몸서리치게 좋았습니다.수사적이고 화려한 미사어구로 넘쳐나는 글들을 보다가 오히려 이렇게 담백 그 자체인 글을 보니...속이 시원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복잡한 고구마 같은 책들 속에 빛나는 사이다 같은 책이라고 할까요? 늘 담백한 냉면 같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다.함께 살아갈 친구들도 냉면처럼 단순하게 꾸려가고 싶다.이 사람 저 사람 필요 없이 나를 알아주고, 마음 붙이고 살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한명이라도 좋다.고명 하나 없는 냉면처럼 나의 일상도 군더더기는 털어내고 담백하고 필수적인 요점에만 집중하고 싶다. 아버지께서 원하셔서 알게 되었지만... 잔잔한 울림을 준 책 [그러라 그래]내돈내산으로 아주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