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스운 일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자 근처 분식집을 찾았다. 김밥과 떡볶이를 잔뜩 시켜놓고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는데, 뒷자리에 고등학생쯤 되어보이는 남자친구들 셋이 앉았다. 저녁밥 대신 할 양으로 온듯해보였으나 별 관심없이 우리들 먹거리에 미쳐 있었다. 그렇게 한참 먹고 있는데 한 아이가 방구를 꼈는지 친구놈이 큰소리로 '아 이새끼 방구꼈어, 야 00고등학교 0학년 0반 000. 아~ 방구꼈어' 라고했었지?아마? 분명 우리보고 들으라구 한 소리었겠지 나도 예전에 그러면서 친구들이랑 장난쳤었지만. 근데 이상하게도 함께 웃을 맛이 안났다. 단지 식당에서 큰소리로 저들끼리 떠들고 모잘라 남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친구 비웃는 것이 그리 웃겨보이지도 좋아보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생각이 찰나에 스치고 났는데, 번뜩이는 무언가는 내가 참 꼴이 차갑고도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랑 목욕탕을 가면 꼭 그렇게 못을 다 벗은 모습으로 아주머니들이랑 얘기를 주고 받을 때가 있다. 아는 분이시냐고 하면 모르는 분이라고 단언하시는데 무슨 자신감이고 무슨 동감하는 말이라고 금방 말을 트시고 얘기를 주고 받으시는지... 난 모르는 사람 누가 뭐래도 딱히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면 잘 귀기울이거나 동감가는 내용이어도 못들은척 하기 일수이다.

남의 우스갯 소리 몇 마디에도 함께 웃어주지 못하는 나, 여태껏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 덕분이라고 변명해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합리화시키고 있었던거야...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짐만을 지고 살 수는 없었다. 때로는 이쪽이 저쪽의 짐이 되는 수도 있었고, 저쪽의 그것을 이쪽이 함께 나눠 지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사람의 사람다운 길이었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였다.
                                                                    - 이청준 <낮은데로 임하소서>165p

 
   
위 인용은 웃음 조차 나눠 웃지 못하는 나를 깨우치기 위한 본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각박해진 세상이라며 밖을 바라보고 탓할게 아니라, 나 하나의 변화를 돌아보는게 어떻게느냐고 속삭이는걸. 역시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짐만을 지고 살수는 없었다. 그것이 사람의 사람다운 길이었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였다. 어렸을 적, 독후감상문을 써오라거나 글쓰기를 시킬 적에 꼭 마지막에 당부에 글을 남겨두곤 하엿다. 나부터 변화하고 나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이 작은 숨결과 나지막한 목소리, 굼뜬 행동이 어떤 세상을 변화 시킬 수있겠느냐만은 스스로 그 숙명을 지고 살 용기를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숙명은 인간전체의 피할수없는 운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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