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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의 심리학 - 무력감을 털어내고 나답게 사는 심리 처방전
브릿 프랭크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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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신입생 때는 뜨겁게 불타올랐던 열정이 사그라들고, 너무 무기력해져서 등교까지 거부했던 적이 있다. 그저 무기력했다기보다는, 두려움, 혼란, 우울,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과제 수행에 장애가 컸으며, 결과적으로는 자퇴로 이어졌다. 모든 것이 내 선택이었다. 등교에 두려움을 느낀 것도, 과제를 엉망으로 한 것도, 대학을 자퇴한 것도, 뒤따라오는 대인기피, 우울증, 자살시도 모두 내 결정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오롯이 내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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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기력한 이유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데에는 성격이나 유전 영향도 있다고 한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사람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섹스하는 등의 개인적 쾌락보다는 존중받는 것이 행복에 더 중요하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여러 관점과 요인이 있다. 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주장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어느 것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기력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두에서 무기력에 비롯한 모든 결정들이 내 탓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가 원인이 된 적도 있다. 다만 지금 그것들을 탓해봤자 소용없고, 과거는 변하지 않기에 문제 삼고 싶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 많은 요소들로 얽혀있기에, 우리가 '무기력'이라는 감정을 포함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가 어렵다. 사람 때문에 무기력함을 느낄 수도, 바뀌지 않는 어려운 환경에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이 사회가, 정권이나 정책이, 인접한 국가가 무기력을 유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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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이 복합적인 요인들 속에서, 만약 무력감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당신은 기꺼이 하겠는가?


​브릿 프랭크의 『무기력의 심리학』은 무력감으로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그 자신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는 10장에 걸쳐 무기력의 원인을 나에게로 하는 화살을 꺾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처방전을 제시해 준다. 그녀 역시 20대에 심각한 무기력함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를 했음을 고백한다. 이를 바탕으로 무기력을 느끼는 많은 이들이 그 원인을 '내 탓'으로 하는 부분부터 바로잡기 위해 '서문,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로 시작한다.


​무조건적인 남 탓이 좋지 않듯, 무조건적인 내 탓 역시 좋지 못하다. 34쪽에서 저자는 불안감에 대한 다섯 가지 미신을 보여준다. 우리의 불안감이 질병이고, 화학적 불균형이고, 유전의 문제고, 정신 장애고, 정신적으로 약하다는 신호가 맞는다면, 우리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원인이 모두 나에게 있기 때문에 오로지 죽음을 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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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류 심리학이 행복을 위해서 사회를 바꿀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가짐만을 바꾸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행복 산업의 문제는 『무기력의 심리학』에서도 살짝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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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약, 웰니스wellness, 미美, 피트니스 산업은

불안감이 우리 탓이고 '자신을 개선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견해에 기반한다.

자유, 즐거움, 큰 행복, 평화 등을 약속하는 광고는 우리에게 우리 밖에서 답을 찾으라고 속삭인다.


​─ P.27, 『무기력의 심리학』, 브릿 프랭크


​우리 삶은 엉킨 실타래처럼 모든 요인이 작용하고 있고,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수도 있다. 사회가 아닌 개인만을 바꾸라는 주류 심리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책은 내 마음가짐만을 바꾸라는 단순한 방법만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는다. 불안이나 무기력 같은 감정을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 나, 관계들, 그 속에서의 트라우마, 무기력으로 인한 행동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과정을 거친다. 독자가 이러한 과정을 담은 텍스트들을 따라가며, 장 말미마다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해낸다면 천천히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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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일은 바꿀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 『철학자의 걷기 수업』, 알베르트 키츨러


​당신이 너무 무기력해서 작은 단계부터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는 책 한 권으로라도 시작해 보았으면 한다. 때론 우리 안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원인이 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 다음에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까.




정신건강, 약, 웰니스wellness, 미美, 피트니스 산업은 불안감이 우리 탓이고 ‘자신을 개선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견해에 기반한다. 자유, 즐거움, 큰 행복, 평화 등을 약속하는 광고는 우리에게 우리 밖에서 답을 찾으라고 속삭인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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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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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은 모든 시대에 존재해왔다.


─ 라 로슈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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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셜 출판사의 『걷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통해 한 번 글이 소개된 바 있는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가 아티초크에서 출간되었다. 『걷기의 즐거움』에서 해즐릿은 동반자 없이 홀로 떠나는 여행을 예찬하며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고집불통'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그 답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에 대해서는 강하게 거부하며 오직 '홀로'를 고집하고는 있지만, 이런 즐거움이라면 모두가 이해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에서는 그런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기대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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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혐오의 즐거움‘이라니, 가히 자극적인 제목이 아닐 수가 없다. 제목이 주는 부도덕함에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으리라. 누구나 한 번쯤 혐오의 즐거움을 느껴보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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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가 억압하는 본성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어느 천재적 인간이 쓴 새로운 걸작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이 멸시했던 온갖 성찰이나 억제했던 기쁨과 슬픔

혹은 무시했던 많은 감정들을 발견하면서 기뻐하는데,

책을 통해 그런 감정들을 알아보면서 그 가치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갇힌 여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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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에 태어난 작가가 250여 년 전에 쓴 글을 읽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독자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오래된 글에 공감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책─정확히 말하자면 고전이나 걸작─의 이러한 성질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독서에서의 이러한 발견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즐릿의 에세이는 책을 통한 이러한 발견에서 '기쁨'과 같은 쾌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해즐릿은 신랄한 문체를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과감하게 들추고 지적한다. 혐오, 질투, 무지, 집착과 욕심…. 수 세기가 지났지만 인간의 이러한 어두운 면은 여전히 유효하다. 표제작인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만으로도 모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인터넷이 대중들에게 보급되면서 혐오의 범위가 확장되고, 혐오의 수단과 방법은 더욱 악랄해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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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인간은 그랬으니 이 책이 쓰였을 터이고, 지금도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책을 통해 확인하며 공감하게 되니, 미래에도 우리는 변하지 않고 또 그러겠지라는 씁쓸함이 책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을 감돈다. 그가 납득하고 싶었던 '세상사의 이치'는 여전히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다.


만약 내가 인간이 아니라 글을 읽을 줄 아는 원숭이나 외계 종족이었다면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글을 읽으며 난 인생에서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다는 등의 고상한 척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인간이기에, 때문에 해즐릿의 지적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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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강명은 추천사에서 혐오는 나쁜 것이라고만 외치는 이 시대에 혐오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해즐릿의 에세이가 참 반가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웃기게도 인간은 때론 이유 없이, 혹은 부조리한 이유로 누군가를 혐오하기도 한다. 모든 이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2022)』의 심은석 판사(김혜수 扮)가 소년범을 혐오하는 것처럼 '이유 있는 혐오'를 한다면 모를까.


부조리한 혐오는 일방적인 폭력의 형태로 드러난다. 학교폭력은 늘 있는 문제고, 성별이, 외모가, 신체가, 인종이 달라서 등과 같은 이유로 혐오를 당하고 상처받는 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유가 없거나, 부조리하게 혐오를 당해보았다면 혐오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에나 겨우 털어놓을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부조리한 혐오를 당해본 이의 괜한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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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
박희병 엮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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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창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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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교육과정을 거치며 '공부'의 의미가 내 안에서 많이 변질된 것 같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보다는 '그냥 남들이 하니까' 공부를 했다.

주변의 어른들도 '나의 쓰임을 위한 공부'들은 알려주지만,

'나를 위한 공부'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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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공부'라 하면 아무래도 철학이지 않을까. 오래전 남겨진 철학적 문장들은 나를 깊게 생각하게 만들고 말과 행동을 수정시킨다. 


​최근 들어 출판업계에 흐르는 철학 유행의 큰 줄기는 대체로 '서양 철학'에 기반을 둔다.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이젠 거의 뭐 옆집 아저씨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친숙하고, 그 뒤를 이어 키르케고르가, 괴테가, 아들러가……. 그렇게 서양철학자들을 접하고 나면, 자연스레 동양철학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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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선인들과 함께하는 무용[無用]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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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선인들의 공부법을 다뤘던 책, 『선인들의 공부법』이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게' 개정되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동양 철학자 15명의 '공부'에 대한 명문장들을 소개하는데, 공자, 장자나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 익숙한 선인도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조금 생소했던 이름도 있었다.


​선인들이 이야기하는 공부는 무엇일까? 우리는 같은 단어라도 각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새로 펴내며 쓴 글에서 박희병 선생님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공부'란 무엇인지 밝히며, '실용[實用]의 공부'가 아닌 '무용[無用]의 공부'의 쓰임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기 위한 공부,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 경쟁에서 남을 이기려는 공부 등만을 추구하고 있고, 이런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진리는 계속해서 대물림되고 있다. 나 역시 꽤 오랜 기간 실용적인 공부만을 해왔다. 대학 자퇴 이후, 문이과나 전공 등으로 스스로를 정의 내리지 않고 책을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인들의 지혜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독서를 하며 행간을 읽어 내려고 정진하기,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정확하게 글로 나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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窮理多端, 所窮之事,

或値盤錯肯綮, 非力索可通, 或午性偶暗於此, 強以燭破,

且當置此一事, 別就他事上窮得,

如是窮來窮去, 積累深熟, 自然心地漸明, 義理之實漸著目前.

時復拈起向之窮不得底, 細意紬繹, 與已窮得底道理, 參驗照勘, 不知不覺地, 竝前未窮底, 一時相發悟解,

是乃窮理之活法.


이치를 궁구함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궁구하고자 하는 일이 얽히고설켜 있어 힘써 탐색해도 알 수 없거나

자신의 천성이 그 일에 어두워서 억지로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우선 그 일은 내버려두고 따로 다른 일에 대해 궁구해야 한다.

이처럼 궁구하기를 계속하다 보면 자꾸 누적되고 익숙해져

자연히 마음이 점차 밝아지므로

이치의 실상이 차츰 눈앞에 드러나게 된다.

그때 다시 전에 궁구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고 연구하여

이미 궁구된 이치와 서로 관련시키고 비교해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에 알지 못했던 이치를 갑자기 깨치게 되니,

이것이 곧 이치를 궁구하는 활법[活法]이다.


─ P.104, 「이황 · 지금 당장 공부를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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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스스로의 자아마저 흔들리고 있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무용[無用]한 공부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98년에 처음 나온 책이 24년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박희병 선생님의 근심이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더욱 동양 선인들이 강조하는 '무용[無用]한 공부'의 가치를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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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건 오류
김나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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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추운 날 몸을 녹이려 팔고 있던 성냥으로 성냥불을 켠다.

성냥불이 켜지자 행복한 상상들이 연이어 소녀 앞에 나타난다.

따뜻한 난로,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하지만 그런 상상과는 반대로 소녀는 차가운 거리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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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옳은 것, 좋은 것들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대게 옳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설 『사랑 사건 오류』의 은하와 수호도 그 흔하디흔한,

'그리하여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되지 못했다.

결혼을 앞둔 은하와 수호는 쇼핑몰 마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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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작가의 장편소설 『사랑 사건 오류』는 독자에게 애도와 추모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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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악인의 부고 소식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어쨌든 보편적으로 죽음이란 슬픈 일이고, 불의의 사고로 인한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늙어가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이 아닌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이별들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모든 사고에 애도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다. 어떤 사고에 있어 완벽한 타인에 가까울수록 그 사고에 대해 더욱 무뎌지지 않던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도 지적하는 사실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모르는 사람 수만 명이 죽더라도 내 새끼손가락 하나가 없어진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고. 여기에 더해 그 죽음의 원인이 너무나도 흔하다면 더욱 우리는 무감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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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 등장하는 죽음들은 너무나 익숙한 형태로 등장한다. 작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기 위해서 이 글을 썼을까. 은하와 수호가 겪었던 쇼핑몰의 화재사건, 초록남자의 아들이 겪은 공장 소독 약품으로 인한 의문의 죽음은 모두가 어쩌다 한 번쯤 한 줄의 뉴스 기사로 접했을, 그래서 더욱 잊히기 쉬운 형태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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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잊히는 일들이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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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당시 기획팀장이 조난 사망자 근처에서 발견된 이파리를 본떠 만든 잎맥 노트와 수몰된 마을 모형을 담은 디오라마를 만들어 판매한 은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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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사고처럼 수많은 목숨이 스러져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한 줄을 그은 일도 슬픈 일이지만, 지난 6월,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으로 23명이 숨진 사고는 지금 몇 명이나 기억할까? 또 지난주에 또다시 김해의 폐배터리 공장에 덮친 화마가 1명의 사망자를 냈음에도 이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애도할까. 죽음에 대하여 규모로 경중을 따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억하고 애도하는 일에는 이렇듯 저마다 한계가 있다.

​

그렇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때와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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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쪽의 문장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할 때가 있다. 기억만으로는 바뀌지 않을 결말, 남겨진 이들에게 사라지지 않는 깊은 상실의 아픔,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안타까운 이별들에 행복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들을 삽입했다. 퍼스널 AI 챗봇, 자동 창작 프로그램, 가상현실 게임, 이 세 가지 기술은 작중에서 누군가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딥러닝으로 고인의 생전 모습을 학습한 AI가 소설 창작활동을 하고, 그들이 생전 마주했던 사고는 가상현실 게임의 바탕이 되어 그들에게 슬픈 결말이 아닌 다른 결말의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호랑이'라는 단어를 보며 떠오른 것이 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든다는 사자성어로, 거짓도 반복되면 참으로 여겨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성냥팔이 소녀가 했던 것 같은 행복한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마침표로 끝나버린 슬픈 과거. 저자는 파괴된 것을 바탕으로 그 위에 창조를 세운다. 그리고 그 창조된 것을 모두에게 보임으로서 원본이자 최종본으로 만들어버린다. 옳지 못해버린 결말의 오류를 바로잡는 이러한 행위들은 또 다른 현실에서라도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남겨진 이들의 사랑의 형태이자 애도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애도와 추모에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이들의 서사를 그려낸다.

은하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잊히는 일들이 있다고 답했다. - P115

그렇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때와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 P125

이게 또하나의 현실이라면서요? 그럼 진짜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 P151

애도를 해야 한다면 더 근사한 다른 방식이어야 했다. 가령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그들을 살려내는 건 어떤가?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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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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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내친구의서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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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했던 사건 하나 때문에 당신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치자.

만약 여기서, 그 사건이 아예 벌어지지 않도록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약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그 약을 기꺼이 복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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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기사야마는 아내 기키와 슬하에 두 딸, 마후유와 아야카를 두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사야마의 속내는 묘하게 뒤틀려있었다. 배우인 아내의 전 스토커를 잡아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별장 '불사관'에 가둬 강제로 ○○하기도 하고, 가족을 감시한 방송인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죽인다. 그리고 길에서 마주친 곤경에 처한 남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 대가로 남자와 함께 '콘셉트 호텔 가네샤'로...

​

그 일이 그에게는 화근이었다. 다음 날, 첫째 딸 마후유가 가족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고 집으로 데리고 온 남자가 하필 기사야마가 호텔로 데리고 갔던 남자였고, 그 남자는 기사야마와 있었던 추잡한 일을 숨기지 않고 모조리 말해버렸다.

​

"이런 행복한 생활, 꿈은 아닐까 몇 번이고 생각했어. 역시 진짜가 아니었네."

아내는 이 말을 남기고 두 딸과 함께 기사야마를 떠났다.

기사야마는 혼자가 되었다.

​

여기서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

만약 당신이 기사야마의 입장이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의문의 약을 써서라도 이 균열을 막을 것인가?

​

─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는 추리·미스터리 소설 장르의 한 갈래인 '특수 설정'을 깔고 있다. '특수 설정'이란 비현실적인 설정 ─ 예를 들면 이름을 적으면 죽는 노트 등 ─ 이 있고, 그 설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장르를 일컫는다. '특수 설정' 장르를 아직 많이 접해보진 못한 탓에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어려운 단계지만, 『엘리펀트 헤드』는 아직 추리소설 초보자인 나에게 특수 설정 장르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작가의 발상이 놀라운 작품.

​

『엘리펀트 헤드』는 2022년에 개봉했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멀티버스', 그리고 '잔인함'이라는 면에서 많이 닮아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가정의 붕괴를 막으려 하지만, 그 의문의 약 탓에 생겨버린 또 다른 기사야마의 멀티버스들. 어떤 기사야마는 운이 좋아 붕괴되지 않았고, 어떤 기사야마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며, 어떤 기사야마는 붕괴는 일어났으나 잘 복원했다. 또, 어떤 기사야마는 병상 신세를 지게 된다. 이렇게 분열된 모든 기사야마들은 잠이 드는 순간 한곳에 모여서 대화할 수 있는데, 어느 날, 아내의 전 스토커인 '페페코'의 죽음으로 기사야마들은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된다.

​

한 세계에서 어떤 인물이 죽으면, 다른 세계에서도 그 인물은 모두 죽는다는 것.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주변인들의 기괴한 죽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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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떤 시간선의 기사야마'가,

'어떻게' 죽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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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헤드』의 특수 설정과 그 설정 위에 세워진 트릭이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노골적인 묘사와 잔인함, 비윤리적인 이야기에 아무에게나 추천하기 힘든 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얼마 전에 읽었던, 2003년에 '19세 미만 구독불가', 이른바 빨간 딱지가 붙은 소설책보다도 더 심했다. 추리·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겐 분명 엄청난 충격을 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니, 그만큼의 대가는 지불해야 할 작품이다. 이런 탓에 아무에게나 감히 권하기보다는, 이런 쪽에 익숙한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각오와 함께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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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면, 시라이 도모유키의 전작인, 『명탐정의 제물』과 『명탐정의 창자』를 읽어보고 결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이유는 이 두 작품에서 작가의 스타일이 느껴지기 때문. 『명탐정의 제물』에서는 '다중 추리'와 '모든 것이 복선'이라는 특징이, 『명탐정의 창자』에서는 '특수 설정'이 두드러진다. 조금 순한 맛의 시라이 도모유키 월드를 경험해 보고, 좋았다면 그때에는 『엘리펀트 헤드』를 과감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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