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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ㅣ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63
로버트 시걸 지음, 이용주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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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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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힘, …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모든 초등학생이 빠짐없이 읽었던 만화책이 있었다. 바로 홍은영 작가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 비록 출판사의 불공정한 관계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던 작품이기도 하지만 내 또래에 이 책 안 읽으면 간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신화 읽기'를 모르던, 더 나아가 책조차 제대로 읽을 줄 모르던 어린아이에게 그때의 독서 경험은 그야말로 오락 본위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기는 읽었는데, 그 상태가 다시 읽기의 걸림돌이 되었고, 그러면서도 딱히 신화에 대해 할 말은 없는 그런 상태로 꽤 오랜 기간 머물러 있었다. 그런 내가 다시 읽어볼 결심을 하게 된 건 조지프 캠벨의 『신화의 힘』을 접하면서부터였고, 그 이후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나 신화학자 양승욱의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보다 깊이 있는 독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스 신화는 추상명사·관념의 시운전장[試運轉場]이다"라는 고 이윤기 선생님의 문장으로 겨우 오락 본위의, 그리고 문자주의적 신화 읽기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잘하지는 않았으므로 여전히 신화는 어려웠다.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단 하나의 타이틀 아래에 왜 이렇게 버전은 다양한 건지, 이 오래된 이야기에서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사는 나는 어떤 해석을 끄집어내면 좋을지 그런 고민들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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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펴내는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겨 출간하는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에서 ─ 늘 궁금한 제목의 책은 많았지만 ─ 내가 신화에 대해 가졌던 이런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줄 책을 발견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고, 신화와 종교 이론을 강의하며 『조지프 캠벨』, 『신화를 이론화하다』 등의 저술을 펴낸 로버트 시걸 교수의 『신화』라는 책이다.
아폴로도로스의 아도니스 신화와 오비디우스의 아도니스 신화 두 편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뉘는 이 신화의 해석을 통해 신화에서 파생되는 여러 이론들을 비교한다. 기원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이야기를 학자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여러 학자들은 신화에서 과학, 철학, 종교, 의례, 문학, 심리학, 그리고 구조와 정치까지 바라보았고 책의 각 장마다 이 분야들을 다루고 있다.
신화와 대립된다고 여겨지는 과학은 어떻게 신화와 연계되었을까? 온갖 의례와 종교는 신화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신화는 설명일까 이야기일까? 신화가 가지는 내재적 의미는 한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인간 보편적 심리를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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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이론을 필요로 하는 만큼이나 이론도 신화가 필요하다.
이론이 신화를 해명한다면, 신화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이론을 신화에 완전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자체는
그 이론의 진리성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이론은 이론 그 자체의 논리에 의해 확립되기 때문이다.
─ P.23, 「서론, 신화에 관한 이론들」
책은 '신화'에 대한 안내서가 아닌, 신화를 해석하는 틀, 즉 '신화 이론'에 대한 안내서이며, 근현대 이론에 한정된다는 한계를 서론에서 밝히지만, 상당히 유익했다.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개론서로 신화를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짧은 입문서라는 한계야 있겠지만, 이 책이 신화를 폭넓게 읽을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끄는 역할로는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