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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네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조카가 있다. 밤톨만한 그 사내아이가 우리집에 놀러 온다고 했을 때 가지고 놀 장난감 하나 변변치 않아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대학생인 동생과 직장인인 나, 다 큰 성인 둘이 사는 자취집에 어린 조카가 만족하며 가지고 놀 만한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집에 돌아가겠다고 떼를 쓰겠거니 했다. 그러나 조카가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에 모든 게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린 조카에게는 우리집 전체가 놀이터였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내 다리에 매달려 인사를 하고는 잠깐 집안을 돌더니 두 팔 가득 놀잇감을 챙겨 왔다. 존재를 잊고 있었던 플라스틱 물고기 모형에서부터 고장난 안경집, 단추, 옷걸이, 택배로 책을 받은 후 빈 채로 두었던 박스까지….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을 읽는 동안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어릴 적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도 어릴 때에는 우리 조카처럼 온 세상을 놀이터 삼아 종일 놀았다. 모래만 가지고 놀아도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퇴근한 아버지 팔 한 쪽에는 동생이, 다른 한 쪽에는 내가 매달려 서로 오래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말다툼을 하거나 깔깔대며 쓰러져 웃기도 했다. 그렇게 노는 동안 뇌에 새로운 길이 뚫리며 성장한다는 건 알지 못한 채 그저 재미있어서 놀았을 뿐인데, 나는 자랐다.
이 책의 저자 브라운 박사는 수십 년간 놀이를 연구해 온 의사로, 그 연구결과를 정리해 담았다. 인간이 목적 없이 '놀이'를 즐긴다는 점은 동물과 같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놀이를 멈추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평생동안 그 방식을 발전시켜가며 놀이를 즐긴다. 놀이를 즐기지 않는 동물은 위협에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쉽게 죽음을 맞이한다. 놀이를 즐기지 않는 인간은 사회성이 없고 자신을 콘트롤하는 능력도 현격히 모자란다. 1966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15명을 죽이고 31명에게 상처를 입힌 찰스 휘트먼을 연구한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저자인 브라운 박사를 포함한 휘트먼 연구팀은 범인이 다정한 남편이자 순종적인 아들로 살아왔다는 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정신착란 증세가 있는 편집증 환자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범인을 분석한 결과, 휘트먼의 심리적인 병은 평생 놀이를 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진다.
ADHD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들, 부모와 대화를 하려고 들지 않는 사춘기 소년, 독립심이 없는 청년, 직장에 가는 일이 짜증스러워 한숨이 나는 무수한 직장인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놀이를 통해 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놀이가 없는 세상은 병들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될 무렵,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은 덜 놀고 더 일하기를 원하는 걸까?'
이미 '덜 놀고 더 일하기'를 원하는 세상에 적응해 버린 나와 같은 어른들은 한시라도 빨리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놀이'에 돌입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해지고,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머리가 좋아지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수도 없고 다짜고짜 값 나가는 악기나 웨이크보드 장비를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되묻는 '답답한 사회에 길들여진' 어른들에게 권하는 또 하나의 책,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이 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방법 59가지'를 담고 있는데, '일상생활을 놀이로 만드는 방법 59가지'을 담고 있다고 바꾸어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서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재밋거리, 놀잇감 투성이어서 비로소 우리 조카처럼 말랑한 두뇌를 가지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놀기 좋은 계절이다(하긴, 따지고 보면 놀기 나쁜 계절은 없다). 사장님도, 아버지도, 고등학생도, 유치원생도, 직장인도, 선생님도, 모두 함께 놀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