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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 나는 여태껏 베르그손을 읽지 않았다. 푸코, 데리다, 들뢰즈, 바디우 등을 읽었음에도 그들 사상의 원류인 베르그손을 읽지 않았다.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이유는 내가 베르그손에 대한 완전한 초심자임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베르그손에 대해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었다.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은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리즈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쓴 고전”을 지향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고전을 다시 읽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전의 자구 해석에 집착하기보다는 고전이 갖고 있는 잠재력에 주목한다.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드러내려는 시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책이다. 이 책이 지금-여기보다는 베르그송 철학의 정합성에 대한 해설과 소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르그손 초심자에게 이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 같다. 지금-여기의 관점에서 사상을 환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시대와 상황 속에서, 텍스트 자체와 베르그손 철학에 대한 전체적 관점 속에서 그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차근차근 논리전개에 맞춰서 설명한다. 하지만 1896년에 나온 책을 21세기의 우리가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충분한 철학사적 설명과 더불어 현재의 생리학적, 심리학적 연구 성과를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베르그손 철학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누구나 그 사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친절한 설명과 구성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이다. 철학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과 탐구심만 있다면 누구라도 충분히 쉽고, 재밌고, 유익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베르그손의 철학은 지속과 기억의 형이상학이다. 지속은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시간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써 우리가 언제나 과거와 더불어 있음을 말한다. 기억은 그런 지속 가운데 모든 것이 기억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베르그손을 읽으면 누구라도 시간이 감을, 늙어 감을 긍정하게 된다. 모든 과거는 우리와 함께 있고, 모든 기억은 언제든 우리의 의식 위로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늙어 감은 그런 과거와 기억이 점점 늘어나고 풍부해짐을 의미한다. "현명한 노인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무시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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