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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
김항.이혜령 기획,인터뷰,정리 / 그린비 / 2011년 1월
평점 :
일단,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상찬이 필요하다. 스무 명이 넘는 인문학자의 '육성'을, 깊이 있는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마련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말이다. 좁은 신문지면이나 몇몇 칼럼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던 인문학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경험에 속한다. 유명한 지식인의 대담집이나 인터뷰집은 있었어도, 현장에서 인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이제까지의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문학의 현실'에 대한,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구술사적 접근이자 현지조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인문학의 현실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하나의 지식담론체계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그리고 현재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조사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역사학, 문학, 철학 등을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에게 묻고 답하고 정리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책의 가독성은 뛰어나다.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찬찬히 말과 말의 부딪침을 따라가면, 충분히 전체 논의와 입장들을 정리할 수 있다. 관심이 없던 인문학 분야에서 행해지는 최신 연구의 경향과 연구의 변천을 정리하는 대목이 특히 유용했다. 인문학을 연구하거나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라는 형식은 또 다른 관점에서도 도움을 주는데, 그것은 '인간의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몇몇 학자의 경우, 글로만 접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그들의 뜨거움이나 열정, 관심사와 지향점 같은 것을 아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냄새가 제거된 인문서만 접하다가,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체온이 느껴지는 인문학자의 인터뷰를 읽으니 인문학이 정말 '인간의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너무나 '현실의 인문학'만을 다루고 있다. 대학이라는 제도에 소속된 인문학, '인문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못 박혀 있는 인문학, 지금 여기에서 멀어져서 회고적으로 과거를 관조하는 인문학. 다시 말해, 이 책에서는 제도 밖의 인문학, '인문학'이라는 카테고리 밖의 인문학,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탄생하는 인문학에 대한 성찰이 거의 없다. 물론 이는 연구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범위를 제한해야 하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두 명 정도는 '바깥의 인문학'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진지하게' 인터뷰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은 어쩌면 인문학의 현실을 단지 반쪽밖에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것은 제도권 인문학자들의 '좌담회'라는 형식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문제다. 인문학이라는 제도를 인문학 바깥으로부터 볼 수 있는 시점의 부재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