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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처음은 슈베르트가 만든 [마왕]의 내용으로 시작된다. 마왕의 존재를 알아차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얘기를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 마왕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마왕은 결국 아들을 붙잡게 되고 그 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책의 제목과 같은 슈베르트의 [마왕]과 이 책의 내용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안도와 준야 형제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어느 순간 자신이 복화술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을할수 있음을 알게된 안도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독특하고 신기한 이 능력이 왜 갑자기 그에게 나타나게 됐으며 그는 이 능력을 과연 어떤식으로 사용하게 될까 궁금해 지는데 이야기는 갑자기 정치쪽으로 넘어간다. 정치인 이누카이는 "5년안에 경기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나의 목을 날리라"라고 말하며 젊은이들을 선동하는데 이 모습은 "4년안에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라는 말을 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고이즈미 전 총리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정치에 관심없던 젊은이들은 인터넷 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누카이에 대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사람들은 모두 이누카이 라는 정치인에게 희망을 갖게된다. 게다가 때맞춰 미국,중국과의 마찰이 일어나고 그로인해 반미 물결이 생겨나자 너나 할것없이 강력한 외교를 지향하는 이누카이에게 열광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건 오직 안도 뿐이다. 21세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여겼던 파시즘이 현실에선 너무도 쉽게 나타나고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이다.
자신의 생각은 갖지 못한채 그저 우르르 몰려다니는 이 현상을 보고 안도가 느낀 불안감을 난 너무도 잘 이해한다. 슈베르트의 [마왕]에서 마왕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심정도 이러했으리라. 민족주의가 변질된 파시즘이 뭐가 나쁘냐고, 오히려 나라에 애착과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하나로 똘똘 뭉치니 좋은거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안도의 불안감을 단지 극단적인 생각을 해서 그런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안도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일까. 그래서 "덴덴"이라는 술집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에 두려워하고 락밴드 공연장에서 무비판적으로 가수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관객들을 보며 파시즘을 떠올리고 수박의 씨앗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에서 획일적인 파시즘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던 것일까. 아마 그는 이누카이의 모습을 보면서 파시즘 이라는 마왕이 언젠가는 사람들의 뒷덜미를 낚아챌 것을 미리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패기가 없다면 살아갈 의미 따위는 없는거야" 라는 말을 외치며 그에겐 벅차보이는 일을 하려고 한건지도 모르겠다. 복화술 이라는 작디 작은 능력으로 말이다.
하지만 복화술 이라는 능력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너무도 미약한 능력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해낸다면 그것은 자기가 아니라 동생인 준야 라던 안도의 말처럼 이제 준야가 그뒤를 이어나간다. 10분의 1의 확률의 내기에선 무조건 이기는 능력을 지닌 준야도 형처럼 세상을 바꾸는덴 필요하지 않는 능력처럼 보인다. 그가 내기에서 이겨서 돈을 딴다고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도와 준야는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자신이 할수있는 최대한의 행동을 하는것 뿐이다. 비록 그것이 실패로 끝날지언정 한 곳으로만 가는 사람들 틈에서 반대로 갈수있는 용기를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안도와 준야 형제처럼 획일화된 사회 모습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강한 민족주의 뿐 아니라 국민들을 선동하는 정치가와 인터넷에서 야기되는 생각없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은 마왕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사람들에게 알리려 할지도 모른다. 난 과연 안도와 준야 형제처럼 싸우고 있는지,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틈에 섞여 아무 생각없이 흘러갈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