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구두 - 전3권 세트
정연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꽁꽁 저며둔채 평생을 살아가는 모습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본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까지 만들어준다. 이 책속에 나오는 사랑은 어찌보면 미련하고 답답할 정도로 애틋하고 애잔하다.

인스턴트 사랑이 그리 흉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해 관계가 얽히고 설킨 세 남녀의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을것이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을 이루던지 차이던지 할텐데 주인공 세 남녀의 모습은 그러지를 못하니 서로 어긋나기만 할 뿐이다.

반면 남자들간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저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내는 남자들의 우정은 가족의 정 보다,연인의 사랑보다 더 위에있는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성일과 기훈의 오래된 우정처럼 말이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봄이는 어느날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가게된다. 고향집에는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살던 아버지의 친구이자 지금은 자신의 새아버지가 된 성일이 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에겐 삼촌과 같은 사람이 어느날 새아버지가 된다고 한다면 그 충격은 어떠하겠는가. 게다가 그로인해 어머니에 대한 미움까지 더해지게되니 봄이에겐 새아버지가 있는 집은 더이상 있고싶지 않은 공간일 것이다.

그런 봄이에게 성일은 조용하고 간곡하게 자신의 젊은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봄이가 몰랐던 어머니와 친아버지 기훈, 그리고 자신의 젊은시절 이야기를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오래전 성일과 기훈의 학창시절로까지 올라가게된다. 둘의 끈끈한 우정과 사연많고 말썽많은 그 시절 모습과 대학생과 폭력배로 살게된 두 친구의 다른 길을 말해준다.

그리고 폭력배 생활을 접고 기훈과 같이 살고있는 성일에게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서 이야기는 청춘빛 사랑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일이 데려온 여자친구가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학생이라는걸 알게 되는 시점은 더이상 책을 덮을수 없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우정과 사랑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일의 모습에 더 많은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성일과 기훈의 오랜 우정, 그리고 그 둘의 사랑을 받고있는 봄이의 엄마인 미숙의 모습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겉으로는 제자리에 있는것 같지만 성일과 미숙의 속 마음은 서로에게 향해있고 이 위태로운 사랑과 우정의 모습은 서로의 속마음을 감출때에만 평화롭게 이어질수 있 때문이다. 세명다 불행해 질수있고, 우정이냐 사랑이냐는 다소 유치한 질문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게 된 그들의 사랑을 어찌해야 하는가.

작가는 이 세 남녀의 사랑과 함께 80년대의 시대 배경을 적절하게 담아내주고 있다. 또한 폭력배였던 성일의 과거때문에 조금은 과격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눈을 찌푸리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를 더 애틋하게 만들어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처음에 등장했던 봄이가 이 책의 주인공일줄 알았는데 이야기의 99%는 봄이의 친부모와 성일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고 그들의 과거이야기가 나옴으로써 현재와 과거를 잇는 극적 재미는 더 풍부해졌다. 무심코 지나갔던 봄이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가 소소한 반전을 이끌어내는 부분에선 섬세한 작가의 능력이 느껴진다.

애틋했던 그 시절 성일과 기훈, 그리고 미숙의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것 같다.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서로에게 정직했더라면, 사소한 오해가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면서 책을 덮었다. [또띠]의 작가였기에 재미있는 코미디 이야기를 들고 나올줄 알았는데 전통적인 신파조 이야기여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 능력은 역시나 대단했고 덕분에 가슴 저미는 책을 만날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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