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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며 사랑에 대한 정의와 그녀들의 삶의 패턴에 열광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그녀들과 나와의 삶은 분명한 거리가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내가 하는 고민과 그녀들이 하는 고민은 서로 조금씩 핀트가 어긋나고 있다는걸 알아버렸다. 난 이번달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느데 반해 그녀들은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살까 말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하는것처럼 말이다. 공감가는 부분도 분명히 많긴 하지만 호화롭고 멋있는 커리어우먼 으로 사는 그녀들의 모습은 나의 로망일 뿐이지 현실은 결코 아니다. 그녀들은 미국시민으로 뉴욕에 살고 난 대한민국 시민으로 서울에 사니까.
하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의 주인공인 31살의 노처녀 오은수는 정말 내 속을 까 뒤집은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무척 닮아있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우리 여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 이리라. 사회인 으로써, 미혼의 노처녀로써 살아가는 오은수의 삶의 행보는 이미 지나쳐 왔거나 지금 걷고 있거나,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하는 고민과 일상들이 결코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회사에선 어느정도 경력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젊은 신입사원들 같은 패기와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그저 아무탈 없이 조용히 묻어가기를 원하는 재미없는 회사에서의 삶. 하지만 회사문을 넘어섰다고 짜잔 재밌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헤어진지 얼마되지도 않는 전 남자친구의 결혼소식을 알게된 날엔 친한 친구 재인이 결혼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질 않나 친구 유희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하질않나. 엄마를 포함해 회사 상사는 자꾸 선 을 주선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질 않나. 뭐 하나 유쾌하고 즐거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전쟁처럼 치르는 만원 지하철에 타는 것 만큼이나 세상은 피곤함 투성이다.
이런 오은수의 재미없는 삶에서 원나잇 스탠드 로 만난 7살 연하의 태오는 한줄기 빛이라고나 할까. 물론 진지하게 만날 생각은 없지만 모처럼 찾아온 가슴설레는 만남에 오은수 인생에 남자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건 나뿐인지 은수는 태오를 결혼상대자로써 염두에 두지 않는다. 젊고 탱탱한 피부를 가지고 있고 영화감독 이라는 자신만의 꿈이 있고 마음 씀씀이 까지 예쁜 연하남 태오가 당연히 남자주인공이 되어 은수와 사랑을 이루어 나가지 않을까 하는 내 예상은 단박에 날아가 버렸다. 아! [브릿지 존스의 일기]에서와 같이 평범한 여자가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을 이루게 되는 따위의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구나 라는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태오처럼 가슴이 설레게 만드는 그런 연하의 남자 대신 김영수라는 흔하디 흔한 이름의 지극히 평범한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게 되는 오은수의 선택은 정말 너무도 현실적이라 눈물이 찔끔 날 정도다. 피 끓는 청춘일 때야 결혼은 목숨을 걸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하는 것 이라고 부르짖지만 나이가 한살 두살 먹게되니 그런 생각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나이가 적당히 차고 남자가 생기게 되면 적당히 맞춰 시집가게 되는게 현실이라는 결혼한 언니들의 말이 떠오른다. 나이가 들면 로맨스와 설렘보다는 편안함과 안정을 택하는 것인가.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결혼하느니 안하겠다 할지 모르지만 나이가 드니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는 말이다.
톡톡 튀고 다채로운 언어의 유희를 보여주는 작가의 문체는 오은수 라는 여성의 삶을 나와 동일시 하게 만들어준다. 나 또한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삶의 패턴을 이어가고 있으며, 점점 어려워지는 인간관계에 좌절하기도 하며, 가끔 찾아오는 사랑을 사랑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의 조건과 나의 상황에 맞춰 결국은 나에게 찾아든 인연을 이어가지 못하기도 한다. 피곤함과 헛헛함과 가끔 찾아드는 외로움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나의 삶에서 가끔 즐거운 일도 일어나기도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 또한 은수와 많이 닮았다. 그리고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 를 찾아가고 예전보다는 성숙한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제목처럼 무한정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이 소설. 오히려 씁쓸함이 더 많이 느껴졌던 책이었지만 오은수 라는 여성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