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을 아시나요 1 - 김동규의 오페라 이야기
김동규.정혜진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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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즐겨보지만 오페라는 웬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잘 선택하지 않는 편이다.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고, 번역이 아닌 원어로 부르는 오페라가 많기 때문이다. 줄거리를 알고 간다해도 이 장면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건지 알수없고, 노래의 뜻도 미리 알고 가야 그나마 보기에 수월하니 단순히 '감상'하러 가기에는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된다. 작품을 보러가기 전에 줄거리와 노래의 뜻을 공부해야만 할것 같아서 애초부터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아이다]처럼 내용과 노래가 익숙한 경우는 덜 한데 잘 알려지지 않는 오페라는 시도하기에 앞서 겁부터 난다. 그래서 뮤지컬보다 덜 보게 되고 도전해야만 하는 벽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오페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두껍고 무거운 책이지만 쉬운 설명과 더불어 공연 사진등이 배치되어 있어 술술 읽힌다. 단, 처음 들어가기전에 오페라 용어와 탄생 과정, 가수의 음역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좀 지겨웠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리아,아리에타,아리오소 등 비슷한 단어도 많고 쉽게 머리에 그려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분들은 금세 이해했을 법 하지만 말이다. 아마 오페라를 자주 접하다보면 외우지 않아도 이건 부파 오페라, 저건 징슈필 이라는걸 알게 될 테지만.  

그래도 배우는 것도 많았다. 가수들의 음역에 따라 배역이 달라진다는 것은 처음 알았는데 아무래도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표현하는 목소리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조증과 울증을 심하게 넘나드는 캐릭터는 테너,거의 항상 요염하고 바람을 피우는 여인 역할은 메조의 몫, 청순한 캐릭터는 소프라노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음역대의 느낌으로 캐릭터를 알수 있다는 것은 꽤 편한것 같다.  

1권엔 총 8편의 오페라가 소개되는데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의 탄생 배경이 간략하게 설명되어있다. 그리고 작품의 소개가 시작되는데 처음과 마지막 장면을 마치 눈에 보일듯이 섬세하게 표현해내서 독자로 하여금 관객석에 앉아있게 하는 느낌을 전해준다. 비록 귀로 들을수는 없지만 글 속에 음율이 느껴질 정도로 리듬감 있게 설명해주고, 노래 가사를 잘 번역해줘 극의 흐름을 이해하기 쉬웠다. 이 부분에선 오케스트라 연주가 어떤식으로 하는지, 무대 장치 효과가 어떤지, 배우들의 눈빛과 분위기는 어떤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더불어 공연 사진까지 있어 무대 위 모습을 볼수 있다.  

오페라의 내용도 주로 비극적인 사랑을 주제로 했고 극의 흐름도 단순한 편이라 어렵지 않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아내 산투차를 놔두고 옛 애인 롤라와 바람을 피운 투리두가 끝내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이다. 바람을 피우고도 뻔뻔한 투리두가 질투에 휩싸인 산투차에게 지긋지긋 하다고, 이혼을 통보하는 모습은 참 비겁해 보이고 이해가 안된다. 남자에게 더 관대한 이탈리아 통념을 놓고보더라도 말이다. 바람을 피워도 떳떳한건 이탈리아나 이쪽이나 같은가 보다. 이렇게 통속적인 줄거리를 놓고보면 별 흥미가 안 생기지만 오페라의 매력은 바로 음악이 아닐까 싶다.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연주와 배우들의 멋진 목소리, 그리고 열정적인 무대를 통해 우리는 문화를 같이 배우는 거니까. 이 작품에서 1막 2장이 시작되기 전에 '간주곡'이 흐른다는데 저자는 마스카니가 직접 지휘한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책을 읽는 순간은 그저 음악을 상상만 해야 한다는게 괴로울 정도로 듣고 싶어진다. 작품 소개 끝에 저자가 추천하는 CD와 DVD가 실려있어 좋은 참고가 됐다. 

보통 오페라가 4막인데 반해 [팔리아치]는 2막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다른 작품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 광대들은 슬프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무대에서는 남을 웃겨야만 한다. 그들이 울거나 슬퍼해도 사람들은 일그러진 광대의 모습에 웃기만 한다. 카니오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걸 안 직후에 무대에 올라야 했고 연기에 집중할수가 없었다.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아내에게 더 큰 분노를 느낀 카니오는 광대의 분장을 한 채 울부짖으며 비극을 야기한다.

-웃어라, 광대여. 모두가 박수를 쳐 줄 것이다!  너의 분노와 고통은 점점 익살로 변해가고, 너의 눈물과 흐느낌은 그저 찌푸린 얼굴로 변해갈 것이다. 웃어라, 광대여.비록 가슴이 찢어질지라도 네 가슴을 독으로 물들이는 고통을 비웃어 주어라!- 카니오의 'Vesti La giuba.의상을 입어라 

너무도 유명한 [카르멘]은 열정적인 집시 카르멘의 유혹에 빠져 약혼녀와 직장까지 버린 돈 호세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1875년 초연 때는 청충의 반응과 비평이 좋지 않았다가 4개월 후에 그랜드 오페라풍으로 선보였을때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역시 첫 공연때 실패를 맛봤지만 비평가들에 의해 재평가 되고 전설적인 소프라노에 의해 감동을 주면서 느즈막히 환영을 받았다. 훌륭한 음악과 작품은 뒤늦게라도 빛을 보는 모양이다.  

일본이 배경이고 일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나비부인]도 큰 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일본에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이 작품은 끌리지 않는데 줄거리 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푸치니는 일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오리엔탈리즘으로 곡을 썼고, 그의 마지막 작품 [투란도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나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채 그저 서양인의 시각에서 썼기 때문에 이래저래 불편하기 때문이다. 오만한 미국인과 결혼한 일본 여자 초초상의 한결같고 비극적인 사랑과 자결에 감동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름다운 음악만 듣기엔 뭔지 모를 찜찜함이 생긴다.  

정략결혼과 가문의 원수를 사랑한 죄로 끝내 미쳐간 여인 루치아와 에드가르도의 비극을 담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 대부분의 오페라가 비극인 가운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도 있어 눈길을 끈다. 사랑의 묘약을 믿는 순진한 네모리노의 사랑을 저울질 하는 아디나의 [사랑의 묘약] 과 아미나와 엘비노가 오해를 풀고 사랑을 다시 이루는 [몽유병의 여인]이 그것이다. 배신과 죽음만 다룬 작품을 보다 사랑스럽고 행복하게 끝나는 두 작품을 읽으니 유독 더 밝게 느껴지는것 같다.  

읽기 쉽게 정리해준 글 덕분에 오페라에 대한 벽이 전보다 훨씬 낮아진건 분명하다. 이젠 책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무대위의 배우와 음악을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조만간 공연 지름신을 대거 영접할것만 같다. 그런면에서 이 책,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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