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진주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이시다 이라 에게 원하는 이야기는, 그에게서 듣고싶은 이야기는 이런 시시하고 뻔하디 뻔한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공감도 안될뿐더러 깊이도 없는 이런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작가에 대한 믿음과 실망이 계속 반복되어지는데 이 작품은 또 다시 내게 실망감을 안겼다.[LAST] 라는 작품으로 굉장히 특별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면 그가 잘 쓸수 있는 이야기는 [LAST]나 [이케부크로 웨스트게이트 파크]같은 작품이지 SF소설인 [블루타워]나 이 책 처럼 사랑이야기는 아닌것 같다.

갱년기 후유증을 앓고있는 45세의 중년 여성과 영화 감독 지망생인 28살의 젊은 청년의 사랑 이야기는 1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꽤나 파격적이다. 하지만 그 소재를 적절하게 살리지도 못했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할만큼 공감가는 이야기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여주인공인 사요코가 겪는 갱년기의 우울증과 핫플래시라는 후유증은 충분히 고통스러운 경험임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보여주는 자기연민은 솔직히 같은 여자가 봐도 못봐줄 정도이다. 흐르는 세월을 왜 그토록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걸까.

마흔 다섯 살. 더이상 젊지도 않고 거울을 보면 자글자글한 주름과 탱탱하지못한 피부, 축 늘어진 뱃살을 가지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나이다. 그리고 사요코가 느끼는 절망감은 당연한 것이고 감정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우울증에 걸릴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자기 연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함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고 질투하고 절망하기에만 바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전혀 매력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짜증만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사요코가 17살의 연하를 만나고 진정한 사랑(글쎄,내가 보기엔 사랑보다는 욕망인것 같다. 그리고 젊은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붙잡고 싶어하고 갖고싶어하는 심리로밖엔 보이지 않는다.)을 하게 되면 겉모습에 덜 치중할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겉으로는 새롭게 변화된것처럼 보이지만 내가보기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검은 사요코에서 하얀 사요코로 변화하는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래된 로프들을 보면서 세월이 흘러 겉모습은 낡고 변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 모습은 그대로라고 말하는 그녀지만 정작 그말을 자기 자신에겐 적용하지 못한다. 계속 나이를 의식하는 그녀. 아직 덜 자란 어른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 가는 까페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모토키와 부딪히고 결국 그와 사귀게 되는 과정도 너무 급작스러워서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특히 사요코가 만나고 있던 불륜상대가 모토키 앞에서 사요코와의 섹스 체위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은 솔직히 뜨악스러웠다. 불륜상대의 말에 놀랐던것 보단 그 후 모토키의 반응이 놀라웠는데 보통 이런 경우라면 당황해하고 분노를 느끼는 사요코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모토키는 불륜남이 아는것을 자신도 알고싶다고 말한다. 즉 당신과 자고싶다는 말이다.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런쪽으로 진지하게 얘기해본적도 없는데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솔직히 예상밖의 말이었다.

만약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특히 은근히 마음에 두고있던 연하의 남자앞에서 자신의 애인이 저런 말을 한다면 수치심에 눈물이 나고 분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땐 따뜻한 위로의 말이 듣고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연하의 남자가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모든것을 보고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난 너무 황당하고 놀랄것이다. 그러나 사요코는 수치심에 떨던 모습을 금방 털어버리고 수줍은 소녀마냥 기뻐하면서 승낙한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반응하는건지, 아니면 이 커플이 이상한건지 정말 묻고싶을 지경이다.

17살이나 차이나는 커플에게 이별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일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고 행복할지 몰라도 결국엔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나이에, 자신의 외모에 너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요코라면 더더욱 그럴것이다. 항상 거울을 보면서 신경쓰고 걱정할테니까 말이다. 그런 걱정과 미래 때문에 사요코는 모토키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이별을 결심한다. 많이 봐오던 멜로 드라마 속 얘기처럼 말이다. 마지막 결말마저 상투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채 그렇게 재미없게 끝나버렸다. 이걸 과연 이시다 이라가 썼나 하는 의심마저 드는, 정말 너무도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