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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열차를 타고 유럽의 이곳 저곳,다양한 나라를 누비는 일은 이땅에 사는 우리들에겐 정말 너무도 부러운 일이다. 언젠가는 내가 사는 곳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가고 중국과 러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 오지않을까. 그러면 나도 이 작가처럼 야간열차를 타고 각 나라의 국경을 넘으면서 여행을 할텐데 말이다.
확실히 비행기를 타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덜커덩 거리는 기차를 타면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한 여행을 할수있을것 같다. 그리고 왠지 기차라는 단어 속엔 어린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다. 비행기,초고속 열차가 주지 못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기차여행은 단지 이동의 수단이 아닌,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안겨다준다. 여행자로 하여금 특별한 시간을 보낼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야간열차"라는 단어가 주는 밤의 싱그러운 향기와 외로움,고독감, 그리고 특별함을 이 책에서 볼수있기를 바랬다. 작가가 찬양해 마지않는 야간열차의 매력을 나 또한 깊숙이 느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바램과는 상관없이 이 책은 전혀 특별하지도,신선하지도 않았다. 야간 열차에 대한 작가의 열광적인 찬양을 문화권이 다른 내가 받아들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나 보다.
이 책을 여행기라고 부르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또한 그의 글은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고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그가 야간열차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나라들의 이야기들은 분명 흥미로웠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과 문장을 인용한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솔직히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정도로 내겐 어려웠다. 주석을 읽느라 바쁠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내게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문장을 읽기는 읽었지만 전혀 기억에 남지도 않을뿐더러 그리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무척 더디게 갔다. 그의 글은 "야간열차"가 너무도 좋다는것만 얘기할 뿐, 그 매력을 내게 보여주진 못했다. 오히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보다 "느림의 미학"을 중요시하는 자신같은 야간열차 애호가들이 더 특별하다고 말하는듯한 인상도 풍겼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이 책을 삐딱하게 받아들인 나만의 감상이다. 정말 "야간열차"가 어떤지를 솔직하고 생생한 글로 만나고 싶단 욕구가 더 커지게 되었다. 내가 더 꿈꿀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경악스러웠던 부분은 중국여행에 관한 글이었다. 작가는 중국인들이 영어를 못해 대화가 안되는것이 굉장히 불만스러운 모양이다. 그럼 모든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찾는 파란눈동자의 외국인들을 위해서 영어를 배워야 직성이 풀린다는걸까. 심지어 그는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면 수천명의 외국인 선수들이 의사소통을 못해 쩔쩔매거나 심지어 금,은메달을 구분하지 못해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라며 조롱을 한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모든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나랏말"을 배워야한다는 것일까.
이탈리아를 여행할땐 이탈리아에서 가장 말수가 적은 이탈리아인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 문장만 보면 그 이탈리아인이 꽤나 과묵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는데 작가는 그 주인이 이탈리어밖에 할줄몰라서 였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기전에 간단한 이탈리아어를 외우고 갔더라면 그 주인과 대화를 나눌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 작가도 젠 체하는 지식인일뿐 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자신을 유목민 이라고 하면서 정작 그의 생각은 유목민의 열린 사고방식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오히려 야간열차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는것을 느꼈으니 큰일이다. 좀 더 솔직하고 생생하고 담백한 그런 여행 에세이가 읽고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