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어느날 물건을 사기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데 온갖 종류의 식품들과 다양한 생활필수품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요상한 물건이 눈에 띈다. 아무리봐도 소변 용기통 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물건의 이름은 "시간" 이었고 가격은 $1.99 이라고 한다. 자, 과연 사람들은 그 상품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리고 그 상품을 살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 정신나간 짓!" 이라고 외칠것이다. 아무리 모든것을 사고 팔수있는 자유경제 사회라지만 "시간"을 팔고 산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또 그것을 살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현대판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시간을 팔아 돈을 벌수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우스꽝스럽고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이 책속에 나오는 어떤나라 에선 이 "시간" 이라는 상품이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린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그 후엔 유행처럼 번져서 너도 나도 이 상품을 구입한다. 국가에서 승인을 받고 판 물건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시간을 사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누릴수 있는 5분이라는 시간을 얻기위해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지갑을 열고 그 물건을 사는것이다.

이 "시간"이라는 물건을 사야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시간을 사용할수 있다니. 처음엔 코믹하고 풍자적인 글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졌는데 뒤로 갈수록 웬지모를 씁쓸한 뒷맛이 느껴졌다. 그 어떤 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제정신이 아니거나 바보라서 그 "시간" 이라는 제품을 산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 바치고 은행 대출금을 갚기위해 써야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그들은 결코 다르지 않다. (유행을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습성까지도 말이다.) 내 시간의 주인은 바로 나인것을 결코 잊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우리를 시간에 얽매이게 만든다. 어떤나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어떤나라에 사는 보통남자 TC. 그의 직업은 회계사 이지만 그가 진짜로 하고싶어 하는 일은 개미사육장 건설장을 지어 적두개미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다. 그리 대단할것도, 어려울것도 없어보이는 꿈이지만 그는 그 꿈을 이루기가 쉽지않음을 깨닫게 된다. 어느날 자신의 상황을 분석해보고 그가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기위해선 35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그말은 즉 자신은 $(돈)이 아닌 T(시간)을 빚지고 있다는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계속 일하다간 TC의 꿈은 평생 이룰수 없을뿐더러 그가 가진 유일한 재산인 집을 가지기 위해서 그는 35년이라는 시간을 모조리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끔찍한 상황속에서 매일매일 살고있는 것이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점점 더 암울해짐을 느낀다. "시간"이라는것이 상품으로 나온다는것 자체가 우리들이 얼마나 시간에 ?기면서 사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가 나의 시간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건 아닌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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