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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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요.
아이들은 무경을 통해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목표를 위해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외로웠으나 의연했고 두려웠으나 눈감진 않았다.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건 아니었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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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접적으로 접하는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었고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지속적으로 은밀하게 또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내동댕이쳐진 채로 알게 된다. 짤막한 기사 몇줄이나 대대적으로 뉴스에 보도되는 학교폭력도 그렇고 장르 특성상 사실 그 이상의 다른 것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인 「꼬리와 파도」에서는 좀더 섬세하고 밀도 높은 폭력의 양상을 만날 수 있었다. 단순히 몸과 말을 휘두는 폭력뿐만 아니라 데이트 폭력, 운동부 사제 관계 간의 폭력 등의 학교 폭력은 내 예상보다 치밀하고 훨씬 폭력적이었다. 소설속이 아니라 현실에 분명 있을 법한 이야기들임을 계속 자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다만 학교 폭력이 학교 폭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경과 친구들은 그에 맞서 파도를 일으킨다. 이 파도는 10대 아이들의 용기와 연대,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탄생한다. 더 큰 파도가 되어 더 큰 물결이 일으키면서.

자칫 무기력에 빠질수도 있겠으나 이 연대의 과정을 보면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된다. 10대의 청소년들이 많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자연스레 커지는 것은 물론 어른들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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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mediachangbi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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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이 되면 Dear 그림책
황인찬 지음, 서수연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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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이 되면』
#황인찬 시 / 서수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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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은 그림책을 염두에 두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수연 작가님의 그림이
더해져 한 권의 시 그림책으로 완성 되었다.

그림책의 시작은 무려 백 살이 되기를 소망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백 살이 되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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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부름에도, 아빠의 흔들림에도 깨지 않고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귀기울이 바라는 소년.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소리들을 들으면서
나무가 되기를,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무 밑에서
조용히 쉬고 계시면 좋겠다는 소년.
침대위에서는 무표정이었던 소년의 표정은
어느새 말갛게 피어나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이곳저곳을 평화롭게 누빈다.
덕분에 소년을 따라나선 이 동행은 보는 이마저
기분이 동동 뜨기 마련:)

그림책은 현실에서 어른의 몸으로 삶을 영위하는
내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전달하지만 사실은
내안에 어린아이에게도 가닿는다.
눈 뜨지 않길 바랐던 어느날 아침으로 데려가고
온갖 상상으로 내 세상을 그렸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때 그곳은 어땠나.
그리고 지금은... 아득하니 아련한 것 같고.

🔖그 잠에서 깨어나면
여전히 한낮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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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휴식 같은 시 그림책"이라는 표현만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번잡한 마음과 분주한 일상에서 이 그림책은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휴식을
선물해주었다.
눈 뜨지 않고 백 살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조차
사치였던 일상이었건만 이렇게 또 쉬어간다.

🔖잘 쉬었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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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대답하고 싶어서 매일 펼쳐 볼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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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sakyejul
#백살이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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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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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조지 기싱의 소설 「짝 없는 여자들」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사랑 없이도 거뜬한 여주인공처럼 비비언 고닉도 스스로를 '짝 없는' 여자들 중 한명이라고 인식하기도 했고,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우정의 관한 통찰력이 빛나는 글들은 제목과 더할나위없이 어우러진다.

고닉은 유년기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사랑의 상실에 대해 "도무지 찾을 길 없는 진정한 짝이 인생의 화두가 됐고, 그런 사람의 부재는 모든 걸 정의내리는 경험이 됐다."고 말하면서 "사람은 이상화된 타자의 부재로 인해 외롭지만, 그 쓸모 있는 고독 속에 스스로를 상상의 동반자 삼아 침묵에 생명을 불어넣고 지각 있는 존재라는 증거를 방 안 가득 채워 넣는 '내'가 있다."고도 한다. 이렇듯 로맨스를 걷어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손상된 자아는 다시 제모습을 갖춘다. 그가 말하는 이러한 성찰과 통찰력도 감탄스러웠지만 "재치 있고 영리한 게이" 친구인 레너드와의 관계에서는 묘한 부러움마저 일으켰다. 20년이 넘도록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사이. 그럼에도 강렬하게 이끌리는 대화를 나누고 자신을 느끼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란 도대체 어떤걸까. "그와 내가 서로에게 투사하는 자아상은 우리가 평소 머릿속에 지니고 있던 모습 그대로다. 스스로 일관되다 느낄 만한 평상시의 자아상이다." 이 관계를 더 극적으로 설명해주는 건 둘의 대화에서이다. 책속 곳곳에 등장하는 대화는 때론 날이 서기도 하지만 가장 안전하게 받아칠 수 있는 쿠션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남이 보면 아슬아슬한데 둘에게는 일상다반사랄까. 그리고 곧 삶의 배경이자 터전인 도시,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경험은 이들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스쳐지나간 인연이든 단순한 에피소드로 기록될 사건이든 고닉의 시선이 닿으면 사소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조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럴때마다 글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사유의 감각으로 전환된다. 꽤나 자주 찾아오는 이 감각은 충만하고 기쁘기 그지없다:)

비비언 고닉의 글을 이번이 처음이다. 어느 리뷰에선가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계속 나와서 짜증이 날 정도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이제서야 그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닉의 언어는 단단하고 꼿꼿하며 영락없이 고닉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 담고 싶고 닮고 싶어지는 것 같다.

덧)
최근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았는데 기대치 않게 정리에 도움이 됐다. 드와이트 가너가 그랬다. 고닉은 우정을 다루는 데 있어 최고의 작가라고. 진짜로, 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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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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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 #블랙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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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하루 그물질을 마치고 갈대밭에 배를 댄 어부는 집에서 싸온 주먹밥과 마른안주, 술 한 병으로 허기도 달래고 갈증도 푼다. 하지만 화가는 반찬 그릇은 그리지 않고 술병과 술잔만 그렸다. 안주 없이는 술을 잘 먹지 않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안주 그릇은 그냥 생략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저 술병에는 술이 남아 있을가? 아마 모두 비웠을 것이다. 어부의 자세를 보면 술을 다 마신 뒤 배를 내놓고 편안하게 앉아 취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그래도 얼굴은 그다지 취한 것 같지 않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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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문장은 김희겸의, <야주취월 夜舟醉月> 그림 설명의 일부다(3번째 사진 참조). 이 그림은 '1관.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에서 제3전시실에 '하루하루에 충실한 서민들' 카테고리 안에 있다. '2관. 궁궐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의 전시실'보다 1관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탓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모습이 닮아보였기 때문이다. 또는 '가부장제 아래의 조선 여인들'편도 그랬다. 5번째 사진의 그림은 익히 들어본 이름, 김홍도의 <빨래터>이다. 신윤복 화첩 그림 속 주인공 대부분이 양반과 기녀였던 것과 달리 김홍도 그림의 주인공은 평민이라는 점에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은 고미술계의 최고의 해설가 탁현규가 집필하여 문화 절정기 조선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한권에 담아냈다. 언젠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혹은 평소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우리의 옛그림의 '멋'과 더불어 보는 '맛'을 선사한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으니 조선 미술 입문서로는 제격인 셈이다:) 사실 미술 작품이나 화가라면 서양 미술을 먼저 떠올리며 그 가치를 셈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알게된 조선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연출력이나 섬세함에도 감탄사가 터지곤 했다. 교과서적인 설명이 아니라 저자만의 예리한 해석과 해설이 그 매력을 더한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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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글의 행간이 넓고, 그림의 디테일한 부분은 확대해서 편집한 디자인이라 페이지마다 보기가 수월했다. 이정도면 초등학생 딸에게도 권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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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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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술관 #미술전시 #한국미술 #고미술 #책추천 #예술도서 #풍속화 #민화 #궁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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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테리 이글턴 지음, 정영목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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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위대한 평론가의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문학과 정치, 철학과 연극 등을 총망라한
비극 탐구
테리 이글턴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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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보편적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일상적인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아이의 죽음, 광산의 참사, 인간 정신의 점진적 붕괴를 슬퍼하는 것은 어떤 특정 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슬픔과 절망은 공통어를 이룬다. 그러나 예술적 의미의 비극은 매우 구체적 사건이다.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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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테리 이글턴의 비극 탐구.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비극이 아닌 예술이 갖는 비극의 의미를 파고든다. 철학자와 비평가, 문학작품들이 말하는 비극은 그동안 1차원적 접근으로 가능했던 비극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고통과 절망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면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많은 작품과 인물들이 인용되는데 역시나 반은 알고 반은 모르겠어서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이 설명되는 가운데 한가지 분명한 건 모두 비극과 연결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건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은 주인공 요소를 두루두루 갖춘 영웅이나 특정인물로 대표되었다면 근대에 들어서는 개인이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근대성은 비극을 망치기는커녕 생명을 새로 연장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p43 이 문장은 책에서 첫번째로 등장했던 질문, '비극은 죽었는가'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해준 듯했다. 시대에 따라 비극의 면모는 다를지언정 죽지않고 어떻게든 연장될 뿐이라고. 이를 뒷받침 하듯이 "희극과 비극 양쪽 모두 오랜 원천은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 가운데 누구든 욕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비극은 예술에 의해 구체적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개인과 뗄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도 같다. 타자에 의해서든 간에, 자기가 주체가 되든 간에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작품속 비평으로 편하게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철학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난해하고 모호한 와중에 묵직한 질문도 깊이 박힌다. 아마도 비극은 개인의 일상에서도 넓게는 인간사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여태 나는 남의 일로만 치부했으니까 더더욱;). 따져보면 그건 곧 나를 투영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받았던 경험으로 알게된 새로운 사실인 거 같다. 이게 또 묘~하게 위로가 된단 말이지. 옮긴이의 말중에서 그땐 몰랐고 지금은 무슨 말인 줄 알아듣는 문장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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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극』은 여든에 다가선 노비평가가 평생 숙고해온 비극의 틀에 기대 자신이 살고 경험한 이 세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감당하고 견디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게 매우 추상적이고 딱딱하고 까다로운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그 자신의 상처가 아무는 법이 없는, 타인의 상처에 같이 아파하는 내밀한 속내가 은근히 드러난다. 아마도 그런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것이 굳어 글의 결정체를 이루면서 이런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들을 한 줄 한 줄 음미하다 보면, 문득 이게 혹시 '위로할 수 없는 자'를 위로하려고 쓴 책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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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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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_테리이글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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