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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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내게는 증오할 시간이 없었다 -
왜냐하면
곧 죽음이 방해할 것이라서 -
남은 생이
그다지 길지 않아서
증오를 - 멈출 수 있었다 -

내게는 사랑할 시간도 없었다 -
그래도
애써야만 했으므로 -
조금만 애써 사랑하면 -
내게는
충분할 것 같았다 -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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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이 남긴 1,800여 편의 시 중에서도 그녀를 대표하는 명시들을 엄선해서 한권으로 엮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를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시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문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사랑받는 에밀리 디킨슨. 사실 그녀의 시를 읽기 전부터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 평생 독신이라거나 은둔생활, 대인기피증 같은 이미지들이 더 강렬하게 와닿았던 적도 있다. 그럴땐 시들이 음침하고 낮은 슬픔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들은 언제까지나 그녀의 시를 가로막지 못한다는 사실은 시를 읽으면 읽을 수록 분명해진다.

시를 해석하며 의미를 좇는 독자는 아니기에 그저 읽는 행위에 충실한다. 그것만으로도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확고한 신념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강렬한 이끌림을 느낀다. 함성과 외침의 환청속에 탄성과 감탄이 오가다가도 어느 페이지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기도 하지만 그냥 이대로도 좋다고 충분하다고, 만족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시알못은 그렇게 필사를 이어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시를 누리고 있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전부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열차의 짐은
철로가 견딜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너무 행복한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
고통은 날개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무거워 날지 못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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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여러권 소장중이지만 이 책은 양장본에 300페이지의 분량에 주와 해설도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에밀리 디킨슨 입문자나 오랜 시간 천천히 즐기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크리스티앙 보뱅의 「흰옷을 입은 여인」은 마치 에밀리 디킨슨 자체로 시를 쓴 문장처럼 아름답다...🥹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야심을 드러내며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할 때 그녀는 그 무엇도 되지 않고 이름 없이 죽겠다는 당당한 꿈을 꾼다. 겸손이 그녀의 오만이며, 소멸이 그녀의 승리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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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eul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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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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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중 "각자의 온도로 서로를 끌어안는, 오늘을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

▪️정지아, 「말의 온도」
▪️손보미, 「담요」
▪️황정은, 「모자」
▪️김유담, 「멀고도 가벼운」
▪️윤성희, 「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
▪️김애란,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자주 언급되는 '정상가족' 형태의 가족 소설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상상해볼 수 있는 소설집이다. 맹목적인 가족주의를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의미 이상의 확장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마침 독서모임 《독사과》에서 5,6월은 가족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회원님들께도 추천하고 싶어졌다:)

여섯 편의 단편중에서는 뭐가 더 좋고, 아니고 우열을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두 재밌게 읽었다(사실 그러기 쉽지 않은 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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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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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없이 도아의 품에 안겨 울었다. 울음이 소리의 전부였던 시절까지 포함해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온몸을 쥐어짜 내듯 울었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감각은 오래되어 흐려졌다. 단지 도아가 했던 말만이 내게 오래 남았다.

네가 울어서 내가 울어야 할 양이 사라졌어.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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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중 우정을 테마로 엮은 7편의 단편소설집. 마지막장에 작품 출처가 있듯이 이 단편들은 한번씩 발표된 소설들이다. 그래서 이미 한번 보았을 수도 있겠지만 국내작가 편독이 심한 나는 백수린 작가님의 「고요한 사건」 외엔 초면인 작품들이었다.

'우정'하면 학창시절부터 떠올리거나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과의 추억이 뒤따르곤 한다. 그때의 친구들은 지금의 친구들이기도 하고.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30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은 조금 다르다. 우정에 대해 되짚어 보면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거기서 거기지만 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경험에 기반한 사실이거니와 소설에서 마주한 이들의 관계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기 때문이다.

우정의 모습은 가지각색이고 성별과 나이는 물론 인종과 사물의 경계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아도 그리워할 수 있는 기묘한 관계에서부터 철벽을 두른 내면의 요새가 단 한마디에 허물어지는 경험. 그리고 애쓰고자 하는 마음과 다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의 밀당도 모두 우정이 담을 수 있는 것들이다. 지리멸렬한 감정싸움과 그닥 아름답지 않은 기억일지라도 소설속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은 다양하고도 새로운 우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청소년이나 성인에게 우정이라는 좁은 범위의 관게를 확장시켜주고 더불어 어려운 인간관계에서의 대안을 이야기(소설)로 제시해준다고 느꼈다. 작가들마다 풍기는 개성이 한 주제로, 한 권에 모아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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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짓밟으며 무엇을 손에 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따에게서 온 편지들을 읽었다. 우따가 보낸 편지는 언제나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더 나은 무엇이 되자. 그때 만나자.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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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changbi_insta
@mediachangbi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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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는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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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파더스 클럽 -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강혁진 외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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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다섯이 뭉쳐 육아일기를 썼다. 육아일기는 본업을 병행하면서 매주 1,600명의 구독자에게 뉴스레터로 가닿았다. 그렇게 1년 넘게 지속된 뉴스레터는 다양한 구독자의 공감을 얻으며 그중에서도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을 꾸려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다.

화자가 엄마였다면 사실 육아에서 그리 특별한 건 없는 이야기다(하지만 진솔하고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오히려 너무 흔한 이야기이다.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현실적인 부분까지. 아이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에 좇기고 밤잠을 설치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에게 마냥 사랑스러운 감정이 피어나는 것도 그렇다. 배우자와 트러블과 육아휴직을 하며 나를 잠시 내려놓는 순간에도, 육퇴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모두 익숙한 이야기이다. 다만 화자가 아빠로 바뀌었을 뿐인데그래서 무언가 더 특별해 보이고 "아빠가 육아일기 쓰는 게 뉴스에 날 일"이 되는 걸까.

육아일기 쓰는 아빠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그 사회에서 얼마나 특수화된 역할인지 보여준다. 그래서 대한민국 남성 100명 중 4명만 쓰는 육아휴직 당사자들도 이에 대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보편화를 넘어 아주 흔하디 흔한 이야기가 되었음 좋겠다. 실제 돌봄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비우고 채우던 모든 감정과 육체적 고단함이 아빠의 입에서, 아빠의 글로 자주 보고 싶다..라고 쓰고, 어려운 일이겠지... 그전에 이 책이 널리 읽히는 것부터가 빠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

온세상 엄마,아빠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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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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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파더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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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 디플롯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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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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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성폭력의 로컬리티과 시대적 구체성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성폭력은 사회적 산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얼마나 아는가? 문제는 각 사회마다 성적인 것의 의미, 폭력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지역에서 성폭력은 공동체의 전통으로 여겨지거나, 여성이 겪는 폭력이 바람직한 성 역활로 미화된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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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소개되는 성폭력의 세계사"

전 세계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성적 학대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피해자/생존자인 동시에 수치 또한 이들의 몫이다. 여기까지는 나 역시 인지하던 부분이고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결코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성폭력을 남성이 여성을, 강자가 약자에게 성적 권리를 행사하거나 강간의 범주안에서만 생각했다. 그보다는 훨씬 방대하게 인종과 계급에서 성소수자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동성애 혐오가 성 정체성을 교정한다는 목적으로, 부부간 성 학대가 사적영역 밖으로 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쟁에서, 군대에서, 법이 지켜주지 않는 곳에서 자경단 활동의 정의로움 반대에 이면까지무엇보다 남성이->여성을 강간하는 비율이 높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무시할 수는 없음을 알았다. 어느 나라에서는 '강간'을 의미하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신분 계급이 낮다면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사례들이 나올 때마다 당황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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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방대한 성폭력의 세계사라니, 낙담할 법도 했지만 낙관주의자인 작가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살피고 "강간 없는 세계"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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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강간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생각하고, 계획하고, 만들려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경제적ㆍ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구조 안에서 지역적 맥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역의 변화로 축적된 효과가 전 지국적 변화로 나타난다.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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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느껴지지만 "권력이 있는 곳에 언제나 저항이" 있기 마련이고 더 급진적인 노력이 요구되겠지만 "젠더 폭력에 맞서는 캠페인은 다른 진보적은 대의들과 연합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도, 번성할 수도, 세계를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더불어 "지배의 체계는 다층적이고 공동 구성되고","학대는 별개의 혹은 단일한 사건이" 아님을 많은 이들이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 학대 행위는 젠더화된 노동의 산물이며 그 노동은 정치적이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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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특히 7장, <군대가 낳은 강간>편의 시작은 일본 황군이 현대 역사에서 가장 큰 성매매 사건을 체계적으로 계획 및 실행했던 '위안부'이다. 80퍼센트가 한국인이었고 생존자들의 기록과 설명이 나온다. "한국 여성의 몸은 군수품, 일본의 승리를 가져올 자원으로 취급"되었던 사실과 일본과 한국의 정치적 장기말이 된 것, 또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한국이 일본 제국 일부였을 당시 입은 피해 보상을 청구할 수 없었던 것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말 830만 달러의 배상금과 제한적인 사과를 보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적고, 너무 늦은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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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dplot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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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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