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인생은 각자도생이라며 나불거리던 때도 있었는데 각자도사를 마주하자 깨깽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오롯이 개인이 짊어지고 책임져야 하는 사회에 묘한 반발심도 들고. 그래서인가, 언제부턴가 공존이니 연대이니 하는 말을 아끼게 됐다. 내 이성과 논리로는 도무지 둘 사이의 간극을 그럴싸하게 매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움만 늘었다. 그럼에도 한가지 일말의 희망에 기대어 본다면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싶다. 사회적 약자를 테마로 한 단편 소설 8편이 공존하는 사회에 위한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엮은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은 우리를 타인의 삶으로 인도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영역을 확장시킵니다. P7문학이 현실을 얼마나 변화시킬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한 토론의 장"을 만들고 "우리가 질문하고 고민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킬" 계기는 마련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속의 모든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다.🔖문득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처음에는 너무 뜬금없고 이상한 감정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선명해졌다.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 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 살아서 개 같은 것들을 쓰다듬는 것은 특히나 더 좋다. P190..✔️출판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mediachangbi_book @changbi_insta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이 책은. 공포와 호러에 가깝다기보다는 기묘하고 이상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화들짝 무서운게 아니라 곱씹을 수록 등골이 서늘한 한장면에 오래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보다 맵지 않을 수는 있지만 끝맛이 오래 남는 매운맛이라고 생각한다. 네명의 작가의 각기 다른 기담을 맛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백민석 작가의 「나는 나무다」가 가장 좋았다. 500여 년을 한자리에 있었던 나무가 바라본 인간들의 행동들. 시체를 묻고 파고, 때론 애정 행각으로 몸부림을 치거나 더 크게는 전쟁과 조경사업이라는 방식으로 숲을 학살하는 행위까지. 스스로 죽을 수도 없어 그 모든 걸 온몸으로 체감하며 지켜본 나무에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작가의 말중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고, 나를 항상 오싹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의 행동"이라 썼다. 이 문장은 뒤에 오는 다른 소설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바이다.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것은 항상 사람이고, 사람이 만든 제도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어놓은 불평등한 관계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 것들이 사람을 끔직한 지경에 빠뜨리고, 고통스럽게 하고 최정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한 시간에 한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무섭지 않은가? 공포는 현실에, 이 사회에, 소설의 바깥에 있다. P41..✔️읻다출판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itta_publishing .
부모에게 버림받고 혹은 학대받고 그룹홈에서 만난 민서, 해서 솔의 이야기. 이들이 독립후 자립하는 일은 순탄치않을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을 정도로 지난한 과정이었다. 개개인이 짊어지고 있는 짐과 처한 상황까지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그럼에도 어설프게나마 서로를 위하고 연대하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아프기도, 꽤나 멋져보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성장 소설.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곱씹는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과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짐"이다. 그래서 주로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청년들의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뭐지? 성장은 멈추는 걸까, 끝나는 걸까. 계속 진행되고 있다면 청년 세대 이후의 나도 현재진행중이지 않을까? 성장소설을 읽을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떠오르는 생각들🫠 우리는 어딘가 조금씩 불완전하고 평생을 성장의 길에 있는다 해도 완전형의 인간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야 소설속 인물들에게 어쩌면 지금 현실에 어딘가에 존재할 이들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아일랜드에서 여섯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중견 작가로 자리 잡은 데리언 니 그리파의 첫 산문집. 산문집이자 또 다른 아일랜드 시인의 전기로서의 역할도 한다. 내게는 모두 생경한 작가들이었다.데리언에게 그 시는 막 열 한살이 된 몽상가 소녀에겐 강렬하게 다가온 애가, 또한 비극적인 로맨스의 시행詩行으로 다시 만난 청소년 시절만 해도 해석의 방식은 유치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여성에게 전가된 노동으로 스스로를 지우는 행위가 되었을 땐 200여 년 전에 단 한편의 전설적인 시를 남기고 사라진 아일린 더브를 좇는 여정은 작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과 진배없다. 마치 날실과 씨실로 엮이며 직조되는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주 느슨하고 어쩌면 엉성할 수 있지만 하나의 색으로 완성되는 "여성의 텍스트".아트 올리어리의 아내 혹은 아일랜드 정치인 대니얼 오코넬의 고모로 남성들의 그림자 속에 위치한 아일린 더브를 오롯한 존재로 끌어내기. 자료들을 추적할수록 '남성들의 텍스트'를 하나씩 걷어내고 "보이지 않는 잉크로 암호처럼 적힌" 삶의 궤적을 발견한다. 한줄에 다른 한줄을 보태는 것은 아주 약한 심장박동처럼 희미하게나마 분명히 존재를 알리는 순간들로 각인된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3대에 걸친 추적에도 불구하고 아일린은 그녀의 아들이 직접 쓴 문서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토록 많은 빈틈들은 도무지 메울수가 없는 부분이다. 데리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그 누구도 데리언만큼 아일린을 불러내진 못했을 거라 확신한다. ..아일린의 시의 제목은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 첫눈에 반한 아트와 결혼하기 위해 가족을 떠난 일부터, 아트가 죽은 장소에게 그의 피를 마시는 모습, 또 그후의 감정들이 묘사되어 있다. 책의 말미에 한국어-영어-아일랜드어로 번역된 시의 전문이 실려있다...✔️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eulyoo #목구멍속의유령데리언 니 그리파 #을유문화사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르고,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클레이 키건의 소설. 또 최근 개봉한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클레이 키건은 24년의 활동기간동안 4권의 책만 냈다고 하는데 모두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앞선 책 소개에 대한 내 반응은 그냥 미지근했으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20년 전부터 주목한 작가라는 말에 앞뒤 안 재고 6월 첫날의 읽을 책으로 선택했다.아일랜드 단식 투쟁이 한창이던 시절, 빠듯한 살림에 제대로 된 돌봄은 커녕 복작복작한 형제들 사이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소녀는 먼 친척집에 잠시 맡겨지게 된다. 새롭고 낯선 곳에서의 일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장면은 소녀가 킨셀라 부부에게 환대 받는 순간들이다. 손을 잡고, 눈울 맞추고, 함께 동행하고, 격려하는 순간들. 부끄러운 비밀이 없는 이곳에서 소녀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그리고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소녀가 화자라 간결한 문체가 가독성을 높여주는 건가 싶었지만 하루키가 말하길 "키건은 간결한 단어로 간결한 문장을 쓰고 이를 조합해 간결한 장면을 만들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책 전반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소녀의 응축된 감정이다. 간결하고 단순하게 드러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는 꽤나 아릿하다. 그렇게 100여 페이지가 못되는 이야기에서 킨셀라 부부와 함께 지내며 받았던 다정함과 넉넉한 사랑은 차곡차곡 쌓여 마지막 한문장에서 터지는데... 그게 제일 아픈 장면으로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