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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 -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김현기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평점 :
서커스에 훈련된 동물들이 안타깝고,
평생 우리안이 서식지임을 알고 살아갈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는 시선이 불편하고
동물 학대하는 인간들을 금수만도 못한 쓰레기구나.. 욕이나 하고 있으면
나는 좀 괜찮은 인간성을 가진 부류로 넣곤 했다.
(아쿠아리움 가서는 우와~ 입을 못 다물었으면서)
자아를 말살시키는 훈련(파잔)을 받는 아기 코끼리들,
밀렵꾼들은 상아를 얻기 위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전기톱으로
코끼리의 머리를 통째로 잘라내고,
얼토당토않은 정당방위를 내세운 트로피 헌터,
나아가 죽이기 위해 울타리에 가두는 상태로 키우는 동물을 사냥하는
'캔드헌팅(Canned Hunting)' 일명 '통조림 사냥'까지.
충격을 거듭한 가운데 전통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피바다를 만드는
일본 와카야마현 타이지 마을의 돌고래 사냥과 페로제도의 고래사냥.
그리고 밀렵과 인간에게 계속 죽임을 당하고 밀리고 있는
야생동물들의 이야기까지 숨이 멎는 듯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개인의 쾌락, 헌팅 업체, 지역 사회, 국가가 창출하는
수입에 연결되어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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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이 괜히 언급된 부분을
무심코 읽고 지나쳤는데 이제 보니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알수록 대 환장 파티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지자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가상세계에서 살고 있는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에게 두 개의 알약을 내민다.
안락한 가상현실에서 계속 살아갈 건지,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건지 묻는 것이다.
그 기로에서 앤더슨은 결국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빨간 알약을 선택한다.
p16
책의 초입에 등장하는 문장에 나는 굳이, 뭘, 이렇게까지나. 정도로 받아들였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럴 수가.로 연발하기까지 얼마 안 걸렸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지구 곳곳에는 이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코끼리 생태공원을 설립해 구조하는 차일러트 여사,
밀렵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코끼리에게 위치추적기를 달고 있는 체이스 박사,
돌고래 사냥철마다 실태를 알리기 위해 매년 타이지 마을을 찾는 팀 번즈와
베어 센터를 운영하며 야생 곰을 보호 후 방생하는 벤킬햄 박사,
지구상에 단 두 마리만 남은 북부흰코뿔소의 사육사까지.
이들에게서 실낱같은 희망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언제까지 기댈 수 있을까?
다섯 번의 대멸종마다 당시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다.
지금 최상위 포식자는 누가 봐도 우리 '인간'들 일 것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결코 오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을 앞장서 당기고 있는 것도 '인간'들이지 않을까.
차일러트의 여사의 물음은 끝끝내 흐려지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코끼리를 보고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땀을 흘려줄 사람은 누구입니까?"
p44
키패드를 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당장 무엇도 할 수 없음을 자각한다.
뻗치는 분노와 참혹한 현실을 알고도 내 일상과 자식을 내팽개치고
아프리카 어디론가 날아가서 구조활동을 하거나
일생을 바칠 수는 없다는 것을.
무력감에 괴로워할 찰나 저자의 말은 위안과 각성을 동시에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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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의 여정도 결국은 우리 마음속의 의자와 진정성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삶의 정수'는 바로 인간의 각성이다.
이제껏 제어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인간의 탐욕을 지금부터라도
정면으로 응시하고, 멈춰내겠다는 결심,
그것이 이 기울어진 공존의 균형추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유일한 희망이다.
p283
모두가 각자의 일상 속에서 생태계를 위한 작은 실천을 행하는 것,
이 각성이 주는 자괴감과 위기감에 비추어,
해야 할 일에 나서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멀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공존을 향한 작지만 담대한 첫걸음이 아닐까.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