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김동선, 궁리
환하게 웃는 노인과 따뜻한 붉은 색, 그리고 진주 빛을 두른 책 표지.
정겨운 시골의 풍경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는데, 내용을 맞닥뜨리는 순간 마음이 한없이 불편해졌다.
“때는 2004년 3월. 65세 치매 노인이 낙동강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용의자는 40세 아들이다. 40대 아들은 치매와 욕창으로 거동이 힘든 노모를 병원에서 모셨으나 수발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 노모를 거리에 버리고 도망쳤다고 경찰서에서 진술했다.”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노인범죄 소식에 이어 ‘긴 병에 효자 없다’, ‘가족, 노인을 외면하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다’, ‘노인, 가족을 위해 자살하다’, ‘내 집에서 죽고 싶다’, ‘가족신화 무너지다’ 등 책의 목차를 확인하는 순간 암울한 고령화 사회 모습에 숨이 막혀온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은 저자가 일본에서 가장 모범적인 노인복지 시스템을 갖춘 마을로 평가받는 ‘야마토마치’에 머무르며 고령화의 문제점과 대안을 취재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담아낸 책이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족의 변화와 고령화에 따른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바로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일본과 우리는 많이 닮아 있다.
저자는 의료기술 발달과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고령인구의 증가, 의료비 증가, 중증질병 노인을 부양하는 가정의 붕괴 등 고령화가 숨기고 싶어 하는 어두운 이면을 일본의 사례를 통해 낱낱이 공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야마토마치’의 노인 복지 시스템을 소개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인 니카타현에 위치한 야마토마치는 인구 네명 중 한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자 마을이다. 일본에서는 비용 효율에서나 서비스 질 면에서 바람직한 노인 수발 시스템을 구축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2000년 노인 수발을 위한 공적개호보험을 도입할 당시 후생노동성 관료를 비롯해 전국의 노인복지 담당자들이 찾았던 곳이다.
많은 이들이 야마토마치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과 같은 고령사회는 노인 의료비 증가가 가장 큰 부담인데, 야마토마치는 노인의 평균 입원기간과 1인당 평균 의료비가 전국 평균에 비해 매우 낮았다. 이처럼 노인의료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재택개호 시스템’이 정착해 조직적으로 잘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택개호’란 노인 혼자거나 노부부가 사는 세대, 또는 자녀와 동거를 하더라도 맞벌이 등으로 낮 동안 노인을 돌볼 사람이 없는 가정에 간호사나 홈헬퍼가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재택개호서비스는 크게 간호서비스, 개호서비스, 가사지원서비스로 나뉜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인구의 비중이 늘고, 의료기술 발달로 ‘유병’상태로 노후를 보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모 부양을 하는 자녀의 부담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또한 자녀들 역시 기대수명이 늘며, 60세가 넘는 며느리나 자녀가 70, 80세 시부모나 자신의 부모를 부양하는 ‘노노부양’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부모님이 건강하다면 다행이지만 뇌졸중이나 치매 등으로 부모가 ‘네타키리(몸져 누운 상태의 노인을 일컫는 말)’상태에 놓이게 되면, 부모부양의 가족 부담은 개인 혼자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저자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하며 가족만이 가장 잘 돌볼 수 있다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라며 “특히 중증노인을 부양하는 경우는 효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이 따르며 이로 인해 노인학대, 동반자살, 살인 등의 엄청난 결과가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사전에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야마토마치를 대표하는 ‘재택개호 시스템’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재택개호 시스템’이 잘 발달된 야마토마치는 집에서도 충분히 네타키리 부모를 모실 수 있고, 독거노인들도 사회의 도움을 받아 지역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갈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부분의 노인 복지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서비스들이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지역사회, 행정조직이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야마토마치의 노인 복지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30여년 전 고령화를 예감한 세 명의 현명한 의사들이 지역공동체와 함께 오랜 기간 준비해 시행 한 결과이며, 지역공동체, 가족, 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일본의 노인복지 시스템이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갔는지 우리나라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통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김동선
1965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와 사회학과에서 공부했고 1990년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의 문화부, 생활부에서 일했다. 2001년부터 이듬해까지 1년 동안 일한문화교류기금의 펠로십으로 일본에서 노인복지 정책에 대해 공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에서 일본 공적개호보험과 가족 해체의 연관성에 대해 석사 논문을 썼다. 지금은 대전에서 ‘연령차별’에 관한 연구하고 있다.
공도윤(syoo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