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생활의 발견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5
임어당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어제 오늘 임어당이 쓴 <생활의 발견>에 취해 있었다. 역자는 이 책을 러셀의 ‘서양의 지혜’에 견주어 ‘동양의 지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했다. 과연 책을 읽으니 동양 특유의 정취와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난 마음이 바쁜 사람이다. 항상 무언가를 배우려하고, 끊임없이 도달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러다 지칠 때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본능주의자로서의 삶을 꿈꾼다.


  임어당은 동서양의 형이상학자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의 원숭이 예찬과 육체 지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유기’에 손오공이 등장한다. 원숭이고 하는 짓이 괴이하다. 신들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연회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다 관음보살로부터 벌을 받게 된다. 다행이 삼장법사의 도움으로 풀려나긴 하지만, 법사를 도와 긴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손오공은 그렇게 명랑한 장난꾸러기지만, 하는 짓이 귀엽고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또한 그는 정신과 반대로 인간은 육체를 지닌 동물이란 것을 강조했다. 내게는 본능과 영혼의 구별처럼 들렸다. 나는 영적인 체 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본능주의자의 글과 생각에 너무 끌렸다. 그러고는 나를 잃어버렸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요즘 다른 사람을 닮는 게 아닌, 나로써 존재하기를 바랐는데 생각의 실마리가 잘 풀렸다. 이 책을 읽고는 영혼과 본능의 선상에서 나는 어느 곳에 위치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됐다.


  서양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미국의 한계점을 들어, 중국 그러니까 동양의 아름다움을 펼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유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편안하고 한가하게 삶을 풍미하자는 거다. 내가 가장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부분인데, 임어당은 한가롭게 생활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 자연주의자의 삶을 예찬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도연명이었다.


  그는 세상에 나아가는 유학자도 아니었고, 세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있는 도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 중간에 위치했다. 돈은 너무 많이 갖고 있지 않고 그저 생활에 쪼들리지 않는 정도와 친구가 어려울 때 빌려줄 수 있는 정도의 재산이면 되고, 글은 쓰되 신문에 어쩌다 실리는 정도로 원고료가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는 정도면 되고, 이름은 알려지되 세상에 너무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고 그저 한 두 작품 남아있으면 된다. 이런 삶을 임어당은 좋아했고, 실제 본인도 실천에 옮긴 듯하다.


  이 책을 중간 정도 읽고 평을 쓰는데 가장 좋았던 부분은 ‘한 나라의 문학, 시가, 미학 등이 무엇 때문에 중요할까? 그것은 주로 그런 것들이 그 나라의 남성과 여성에게 개성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리는 재료와 암시가 되고’ 유물론자답게 저자는 실용주의자였다. 나도 형이상학에 학문이 쓰이는 것보다는 이렇게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을 무척 중요시여기는 사람이다.


  “하늘에 있는 용의 고기가 좋기는 하지만 범부는 먹을 수 없다. 땅 위의 돼지고기는 용의 고기처럼 고귀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먹을 수 있다. 용의 고기와 같아서 심오하기는 하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없다면 먹을 수 없으니 배만 고플 뿐이다. 그러나 돼지고기처럼 소박하고 쉬우면 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으니 배가 부르고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이 쓴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이 문장이 떠올라 옮겼다. 구 선생님은 그렇게 이상주의를 품으면서도, 현실에 적용 가능해야 함을 항상 역설하셨다. 모든 좋은 것들은 생활인을 웃게 한다. 임어당이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도, 이론이 아닌 실천 가능으로써의 생활 철학이다. 이 책의 제목이 생활의 중요성 혹은 생활의 발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꽤 오랫동안 혼란스러운 생각을 하며 지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생활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되살릴 수 있었다. 자칫, 이론과 책 속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균형을 잡아주는 훌륭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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