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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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않는다.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거다.

무엇보다...

드라마 할 때 집구석에 얌전히 있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릴 때 거짓말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슴에 턱턱 걸려드는 대사를
들으며 드라마에 관심을 두고 몇 부 본 기억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잊지 못했기 때문에 행복했다” (나 이 비슷한...)란 대사를 듣고 
 어렴풋이...나도 잊혀지지 않는 사랑을 해야되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대사를 쓴 사람이 노희경이란 건 몰랐다.

 

아무리 굴곡진 삶을 살았다지만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쓰다듬고  
큰덩이로 가슴에 턱턱 엊혀져 잊혀지지 않게 만들까...힘들었다는 그녀의 삶마저 잠시 부러우려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던가...
그사세라고 불린다는 그 드라마가 좀 땡긴다.

아, 그녀의 아버지를 모티브로 했다는 기적부터 한번...

 

무엇보다... 노희경이라는 사람,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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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0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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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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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정하게 생긴 여자가 선이 날렵한 가위를 가지고
하얀 종이를 단정히 접어 이리저리 오린다.

열심히 오린 종이를 담연히 펼쳐놓고 미로찾기를 시킨다.

나는 이 여자의 계획된 가위질에 은근 감탄하며
미로를 따라 선을 긋는다.

 

이윽고 미로찾기는 끝났지만
펼쳐드니 이곳 저곳 선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한 것이 과연 미로찾기였던가....

단정한 여자는 야무진 입으로 이야기 한다.

 " 너는 몰라."

 

철저하게 계산된 뭔가에 놀린 느낌인데.

워낙 단정하고 얌전해서 뭐라 반박도 못 하겠다.

 

 

그러게 내가 언제 알았던 적이 있었던가.

하긴, 누가 다 알겠는가.
 


글쎄... 

묵언다변이라 해두자.

 

 

*****

 

 시체가 발견된 것은 오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전 열시경이었다. 비둘깃빛 가운을 부대자루처럼 뒤집어쓴 성가대원들이 직사광선 내리쬐는 교회 뒤뜰에 줄지어 앉아 2부 예배 때 부를 찬송을 연습하는 시간, 지난밤 처음 만난 연인들이 숙취 때문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뜨겁고 어색한 두번째 섹스를 나누는 시간, 조기축구회 유니폼을 입은 이기적인 가장들이 넓적다리와 정강이 근육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중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시간이었다.

 

55p.

 인생에는 한들한들 부는 산들바람에 몸뚱이를 맡겨도 되는 시간이 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삶이란 조금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기차에서 시속 오십 킬로미터의 속도를 견디는 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147p.

 아버지들이란 대개 그렇다. 그리고 역시 남편만큼 자기 아내를 잘 모느는 사람도 없다. 김상호가 이 여인에 대해 알려준 사전 정보는 일정 부분 잘못 되었다. 그녀는 예민할지는 몰라도 결코여린 여자가 아니였다.

 

 

199p.

  한때 몹시 비겁했던 적이있다. 돌아보면 지금껏 비겁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덧없는 틀 안에다 인생을 통째로 헌납하지 않을 권리, 익명의 자유를 비밀스레 뽐낼 권리가 제 손에 있는 줄만 알았다. 삶은 고요했다. 그 고요한 내벽에는 몇 개의 구멍들만이 착각처럼 남았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숭숭 뚫린 빈칸을 이제 와서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그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231p.

 서로의 영혼을 샅샅이 읽어 낼 의무가 없는 관계가 옥영의 숨통을 터주었다. 언제까지 좁은 야채칸에 꼭 붙어서 뭉그러져 가는 애기감자 두 알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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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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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청이라고, 침냄새 난다고 놀림받던 친구가 있었다.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었지만 사회에서 돈을 벌던 친오빠가 후원자가 되어 원조를 해 주었다.
덕분에 구순구개열 수술도 받고 치아교정도 받았지만 흉터는 남아있었고, 교정기 때문에 침냄새도 여전했다.
(교정기 사이에 이똥과  고추가루가 하나씩은 끼어있었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열화와 같은 호감을 받는 아이는 절대 아니였지만  좋아하려고 무지 노력했다.
난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그런 아이도 좋아하고 감싸줘야 "착한 아이"니까.

 

 엄마가 그 아이 주라고 준 회수권도 한장도 안 떼어먹고 잘 전달하고 도시락을 안싸다니는 그 아이를 위해 김밥을 덜어주기도 했다.  스스럼 없는 아이는 내가 준 회수권으로 바꿔먹은 옥수수 튀김 과자 같은 걸 나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후원자가 줬다는 학용품이나 과자를 주기도 했다.

 천사의 집이라고 불리던 그 아이의 집, 고아원에서의 삶이 궁금했다. 소공녀에서 읽었던 것 처럼 고아라는 사실만으로 푸대접을 받는건 아닌지, 내가 초등학교 당시 유행했던 소년소녀가장 이야기들 책 속의 주인공들 처럼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지옥같은 곳인지도 궁금했다. 

 선배라고 불리는 어떤 언니가 좀 무섭지만  썩 괜찮은 곳이라고 했다. 단지 남자원장 선생님 안마하는 게 힘들고 귀찮다고 그랬는데 ... 밤마다 씻고나서 잠자기 전 원장 안마를 하는게 일상이며 자기 말고도 안마를 하는 여자아이가 더 있다고 했다. 오른쪽 왼쪽 나눠서 억지안마를 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충격이었다.

 왜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냐고, 내가 그거 안 하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번 버스를 타고 원장을 찾아갔었다. 친구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라는 친절한 원장의 미소에 넘어가 제법 호기롭게 이 아이는 내 친구인데 왜 밤마다 안마를 시키며 괴롭히냐며 따져물었다. 

원장은 매우 당당했다.
무슨 헛소리냐고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와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런 소릴 나불거리고 다니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는다며 책상위에 있던 잉크병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우리 부모에게 알리거나 하면 무사히 학교에 다니지 못할거란 협박까지 ....

 
 입주위 근육이 발발떨리고 손끝과 발끝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는데. 나름 얼마나 놀랬는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는 지금도 잘 생각이 안 난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그 친구와 나는 매우 서먹해졌다. 그리고 끝내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 천사의 집도 문을 닫았고 아이들은 근처 수녀원 같은 곳으로 흩어졌었다. 

 
 그때 이후로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어딘가에서 남을 정의롭게 도와야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기시작했는데...
그 생각이 나중에 대학가서 지금 생각하면 아주 웃긴 뻘짓까지 하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그 뻘짓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깨닫게 된 사실 하나는 ...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내 이기심을 채우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런 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굳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최소한의 관심일지는 몰라도. 



이야기가 삼천포로 셌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아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 정상이라고 하긴 좀 모자라고 그렇다고 모자라다고 하기엔 정상인 그 아이가 밤마다 해야 한 그 안마.

그땐 그게 그렇게 당당해도 묻혀갈 일인지 몰라도 지금 세상에선 성추행이라고 발칵 뒤집힐 일이다. 그 원장이 내게 그렇게 협박을 해댔던 걸로보아 그 인간도 어느정도 인지는 하고 있을 정도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과거엔 정의실현(?) 을 나름 희망했지만 어리고 무식했던 나만 남았었고 지금은 그럴 용기조차 없을지 모르는 게으른 어른만이 옛 일을 추억한다. 비극이다.  확률적으로는 재정난으로 문 닫았을거 같지만 진실이 천사의 집을 무너뜨렸을 지도 모른다는 건 어쩌면 마지막 희망이고.

 

책 속의 주인공들의 갈등과 두려움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세상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데 확신이 섰다. 그래서 더 실감나게 다가왔고...다소 과장되는 표현이 싫었지만 그건 순전히 내 취향이고, 공지영 작가의 익은 문장들이 가슴 속에 파고 들었다.

나는 지금 잘 살고있을까 ?
어린시절 나의 기준에 잘맞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

평화주의자를 표방한 비겁자는 아닐까... 진실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용기는 있는 사람일까 ? 

어느 물음에도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갑자기 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잘 살고 있을까 ? 잘 살고 있다면....그렇다면 좋겠는데.
그것도 나 자신을 위한 위안이겠지.

 

 

****

 

135

세상은 동화처럼 그렇게 녹록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어린아이처럼 그의 바짓단을 붙들고 있지만 이 계절이 끝나면 지나온 긴 날들처럼 앞으로 많은 날들을 그들은 그 앞에서 지폐를 흔들며 거만하게 굴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번 기회에 자신이 그들의 은인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인간들보다 우월할 기회는 거의 없다. 아니 동등할 기회조차 거의 없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165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149

오랜 경험을 가진 그로서는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쁜 놈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놈들이 수갑을 찬다. 맹수는 다리를 다친 사슴 한 마리를 잡을 때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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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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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싶은 날이 있었다.

40일에 한번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일 수도 있었지만,
딱히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언젠가 뒹굴었던 어두운 감정의 바닥에 닿은 듯 한 느낌이었고
헤어나와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럴 이유를 또는 목적을 찾기 힘든, 외로운 날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의 중심부에서 제일 떨어진, 아직은 덜 꾸며서 횡하기 그지없는 서재 바닥을 뒹굴며 울었다.
그렇게 차오르는 눈물이라도  비워내면 시원할 것 같았고.
어쩌면 내가 찾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황하게 울어댔다.  
발버둥을 쳐 보기도 하고 작은 상자 속에 기어 들어가 보기도 했다.
(옆지기가 날 찾으러 왔을 때 상자속에 든 나를 발견하지 못 했을 땐 기뻐서 눈물이 멈출 뻔도 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무리 대단하게 울어대도 눈물은 코풀기로 끝난다. 
서재 바닥을 다 젖게 만들 만큼 콧물을 흘려댔고 (영문도 모른채) 휴지를 내밀어 준 건  
옆지기였다.


울다가 서재를 보니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이 책.


끝없는...조금만 방심하면 빨려들어 갈 것 만 같은 미칠듯한 어둠,

그 막막함 속에 갇혀 한참 힘들었다.

책 속에 한참 빠져 생각하다 어둠 속에 잠식된 나를 발견했다.
이 작가.... 어둠과 어둠속의 은둔을 아는 사람이구나.

 

다른 생각을 별로 할 틈도 없이 계속 두 주인공을 따라 걷는다.
물론 결말이 궁금해 죽을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내 인생의 결말을 궁금해 하는 것 같은 그런 정도의 궁금함 이었던거 같기도하다.
다소 불친절한 번역때문에 몇번을 다시 읽어야 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친절할 이유가 없다. 그건 오버다.


길위에 서 있는 내 아들과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아들의 아비와 아들을 상상하기도 했다.
먼가 확 뜨거운게 울컥 치밀기도 했으니 매력적이다.
그 날 내가 울었던 이유도 알아냈으니 건진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이 two thumbs up이라고 말하기 두렵다.
 너무나 실감나는 희망없는 어둠에 대한, 우려 때문에.

 

 

***

 
9
남자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이가 자신의 근거라는 것뿐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저 아이가 신의 말씀이 아니라면 신은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 거야.
 

10
괜찮니? 남자가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들은 암회색 빛 속에서 아스팔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발을 질질 끌며 재를 헤치고 나아갔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다.

 

17
어떤 건 잊어먹지 않나요?
그래. 기억하고 싶은 건 잊고 잊어버리고 싶은 건 기억하지

 

35
당신 주위를 돌아보라
‘늘’이라는 것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소년은 남자가 아는 것을 알았다.
‘늘’이라는 것은 결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64
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서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거야.

 

102
전에도 이런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마비 상태나 무지근한 절망마저 넘어선 어떤 느낌. 세상의 날것 그대로의 핵심으로, 앙상한 문법적 뼈대로 쪼그라든 느낌.
망각으로 빠져든 사물들을 천천히 뒤따르는 그 사물의 이름. 색깔들. 새들의 이름. 먹을 것들.
마침내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이름마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덧없었다.
이미 사라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시대상을, 따라서 그 실체를 빼앗긴 신성한 관용구.
모든 것이 열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어떤 것처럼 스러져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깜빡 하고 영원히 꺼져버리는 어떤 것처럼.

 

148
하지만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남자는 무엇 때문인지 잘 몰랐지만 아마 아름다움이나 선(善)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도저히 생각할 방법이 없는 것들.

 

149
남자는 회색 빛 속으로 걸어나가 우뚝 서서 순간적으로 세상의 절대적 진실을 보았다.
유언 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 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괴멸하는 시커먼 우주의 진공.
그리고 어딘가에는 쫓겨다니며 숨어 있는 여우들처럼 몸을 떠는 두 짐승.
빌려온 시간과 빌려온 세계와 그것을 애달파하는 빌려온 눈

 

151
그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가 방마다 돌아다녔다.
거울에서 그들 자신과 마주쳤을 때 남자는 권총을 들어올릴 뻔했다.
 우리예요, 아빠. 소년이 소곤거렸다. 우리예요.

 

208
우리가 말하는 것이 진리인가 아닌가 여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기 때문에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215
있지도 않았던 세계나 오지도 않을 세계의 꿈을 꿔서 네가 다시 행복해진다면 그건 네가 포기했다는 뜻이야.
이해하겠니? 하지만 넌 포기할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

 

303
글쎄,나는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

 

307
아팠죠, 그죠?
그래. 아팠어.
아빠는 정말로 용감해요?
중간 정도.
지금까지 해본 가장 용감한 일이 뭐예요?
남자는 피가 섞인 가래를 길에 뱉어냈다.
오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거.
정말요?
아니. 귀담아 듣지 마라.

 

308
하루하루가 헤아림도 없이 달력도 없이 진창을 기어가듯 지나갔다.
멀리 주간 고속도로를 따라 길게 줄지어 있는 검게 타버리거나 녹이 슨 차들.
바퀴의 드러난 테가 시커매진 철사의 고리에 둘러싸인 채, 녹았다가 다시 잿빛으로 굳은 고무 진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타서 재가 된 주검은 아이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좌석의 용수철 위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쭈그러든 심장 속에 매장된 수많은 꿈도. 그들은 계속 걸었다. 바퀴를 돌리는 쥐처럼 죽은 세계를 밟고 나아갔다.
죽음처럼 고요하고 더 깊은 죽음처럼 검은 밤. 몹시 추웠다. 그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309
남자는 눈물이 그렁해진 눈을 들어 소년이 거기 길에 서서
어떤 상상할 수 없는 미래로부터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장막처럼 빛을 발하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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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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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웃기는 책. 

 

 옥션에 중독된 순진한 전업주부 아짐의 귀여운 주책,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집에서 살림을 맡게 된 살림꾼 남편, 다른 남자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중년 여성, 여성의 성역에(ㅎ) 남자의 로망을 실현하는 남자, 로하스 열풍에 휩쓸린 아내와 그게 곱게 보이지만은 않 소설가.....설정은 각각 다르지만 어디에나 공감이 가는...

 

 유쾌하고 따듯하면서도 통통튀는 캐릭터 묘사가 인상적이다.

여자심리를 참 잘 긁어줘서 작가가 남자인걸 다시 한번 확인했을 정도 ㅋ

 

병원에서 기다릴 때 심심할까봐 가져간 책인데

손도 떼지 못하고 정신줄도 떼리못하고 있다가

결국 끝까지 다 보고 잔 책.

 

생각만 해도 히죽히죽 웃음이 나는게...

오쿠다 히데오 다른 작품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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