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날다 - 우리가 몰랐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혹한 실상
은미희 지음 / 집사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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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게 잡혀온 뒤로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일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시간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저들의 소유였고 재산이었고 부품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언젠가 쓸모없으면 폐기처분되고 말 소모품. 소모품에게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치나 존엄성은 부여되지 않았다. 인간이면 안 되었다. 사람이면 안 되었다. 아이들은 그것들 가운데 하나라도 원하면 안 되었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더미였고 마루타였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몸뚱이뿐이었다. 말 잘 듣는 몸뚱이. 말귀를 알아듣는 몸뚱이. 시키는 대로 하는 몸뚱이.(p.106~107)

하지만 고향에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곳은 가서는 안 될 금단의 땅이었다. 이름도 숨기고 고향도 숨기고 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유령처럼 살아야 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순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말을 아끼며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혹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해야 할 것이다.(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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