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 드로잉에 담은 도시의 시간들
이종욱 지음 / 뜨인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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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의 역사와 함께 빚어진 이 도시는 35년 일제강점기 동안 근대화란 명분하에 일제의 입맛대로 변경, 확장되었다. 이렇게 식민지화와 근대화가 뒤죽박죽된 서울시는 해방과 함께 다시 본래 주인에게 떠넘겨지듯 되돌아왔다. 기쁨도 잠시, 조국은 분열되었고 곧이어 전쟁이 발발했으며 서울은 폐허가 되었다. 전쟁 이후 권력을 잡은 정권은 서울의 구조를 재편하기 시작했고, 일제가 구축한 기존 구조와 조직에 순응하거나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권력 중심주의적으로 도시를 뜯어고치기도 했다. 그렇게 수정된 도시 구조는 훗날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도시 발전과 확장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p. 316)

심상지리(심상지리, Imagined Geographies)라는 개념이 있다. ‘마음속의 지리적 인식‘이란 뜻을 지닌 이 개념은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서구중심의 왜곡된 사고를 비판할 때 주로 쓰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심상지리가 있다.(어찌 보면 이 책 자체가 내가 품고 있는 서울의 심상지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 심상지리는 직접 다녀간 곳, 살던 곳, 머물던 곳 뿐 아니라, 각종 서적과 매체를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려질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인식하고 있는 장소에는 각각을 대표하는 시대성이 있을 것이다. 보통 한 장소(도시, 동네)에서 한 시절 진득하게 머물다 떠나버리게 되면 자기가 머물던 시대와 그곳에서의 일들, 자주 보던 경관을 개인의 심상지리에 그대로 반영한가.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에 이르는 장소의 역사와 비교해볼 때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물론 일부분만을 인식하고 있다 하여 문제될 건 없다. 다만 개인적 경험의 한계에서 시대성을 좀 더 넓게 확장하고 싶다면 우리는 장소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한데 도처에 흥미롭고 주위를 끄는 것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 도시 그리고 동네의 역사에 도통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무작정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비교적 가볍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도시 걷기 덕분에 장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길 것이고, 그러한 애정은 장소의 역사로 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렇게 장소의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며, 다시 그러한 경험은 개인의 심상지리의 지평을 넓혀 줄 것이다. (p.31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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