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유지혜 지음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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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여느 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손가락이 길어 한 옥타브를 무리 없이 누르고, 숙제도 성실하게 해오는 학생이었다. 유년 시절이 지나 집에 있던 피아노가 어디론가 사라진 뒤에도 학교 음악실이나교회에서 틈나는 대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 치는 것을꽤 좋아했다. 그러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곡 연습에 돌입했다. 좋아했던 남자애가 피아노를 멋들어지게 잘 쳤기때문이다. 피아노를 잘 쳐서 걔를 좋아했던 건지, 걔가 좋아서 - P21

피아노 치는 모습마저도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노를치는 남자에게 반하지 않기란 거의 도전에 가깝다는 사실을그때 알았다. - P22

"좋아한다, 가 사투리로 뭐예요?" (뻔뻔하기도 하지) 그가 웃으며 답했다.

"좋아하맨마씸."

술에 취한 나는 그 말이 잘 외워지지 않아 말하고 또 말했다.
섬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는 바람 소리를 이길 만큼 억세다고들었다. 강력 접착제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발음 외국어로 들릴 만큼 이국적이었다. 망설임을 뒤로하고 마침내 내뱉는 청년의 고백처럼 그 말은 단단해 보였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가을밤, 닿을 듯 말 듯 젊고 아름다운 기운이 우리를 - P57

에워싸고 있었다. 그와 더 가까워지기 직전, 백지상태의 머릿속에서 여러 호기심이 떠올라 잠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어떤사람일까?‘ ‘어떤 음악을 들을까?‘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할까?‘ 그날 우리는 편의점 앞 벤치에서 밤을 새웠고, 다음 날아침 나는 비행기를 타고 내가 속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좋아하맨마씸.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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