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인디아나 존스>에 빠졌다. 아서왕의 전설을 따라 성배와 성궤를 찾고 나치와 맞서 신비한 고대의 힘을 선한 편(미국...)에 돌려주는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당시 기준으로) 대모험 판타지. 이 영화에 빠진 것이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좀 많이 빠진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매번 장래희망에 고고학자를 써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내 머리가 좀 컸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아들아, 한국에는 고고학자가 없단다, 있다 해도 인디아나 존스처럼 모험을 하는 게 아니라, 방구석에 처박혀 한자나 본다며 꿈을 산산조각 냈다. 아버지는 이후에도 내 꿈을 여러 번 조각냈는데 고고학자 이후 탐정으로 장래희망을 바꾼 뒤에는 불륜 커플 뒤꽁무니나 쫓는 일이다, 라고 했고 소설가가 될 거라는 말에는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다, 그건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이 말은 모순적이지만 진정성의 차원에서는 진실에 가깝다...),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는 말에는 영화감독은 그저 여배우나 만나려는 눈먼 자들일 뿐이다라고 했다. 결국 그가 원한 나의 장래희망은 의사나 검사였는데 그것이 고고학자보다 나와 거리가 더 멀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그와 나 둘 모두 알게 되었고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p31~32, 정지돈의 글)* 책 전편을 구성하는 작가들의 글들은 기대에 못미쳤지만, 옮겨 적은 정지돈의 글을 읽고는 슬몃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