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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과 의열단
박태원 / 깊은샘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서기 1898년 음력 3월 13일, 경남 밀양,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조국광복의 대업은, 무력을 가지고서야 비로소 이루어 진다고, 마음에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p.17)
3.1 운동 이후...이제 까지의 무단정치를 개변한다 하고, 문화정책을 표방하였다.
단원은 위의 말한 13인, 선거에 의하여 약산이 의백, 곧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때에, 그의 나이 스물 두 살이다.
1. 적의 정치기관으로 조선총독부
2. 적의 경제적 약탈기관으로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은행
3. 적의 선전기관으로 매일신보사 등이요, 암살의 대상은, 조선총독 이하 각 요로대관이다.
조선총독부 폭탄사건의 주인공은 의열단원 김익상이다.
일본 강도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을 가르치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이 있으랴?(p.110)
그러나, 모든 애국자, 모든 혁명 투사들에게 있어, 가장 큰 협위는 실로, 밀정들의 존재였다. 우리의 은밀한 계획을 미연에 정탐하여, 이를 낱낱이 왜정에게 알리는 밀정들의 활약이었다(p.170)
박제순 이완용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을 오적(나라를 판 다섯 도적)이라 하여, 사회의 여론을 크게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