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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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뮌스터의 외로운 길들을 ‘너 없이‘ 걸었을 작가는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진주에 다녀온 지 이주쯤 되었습니다. 이 도시가
작가가 나고 자란 곳임은 부고를 접하고 이 책을 잡은 뒤에야 알았네요.
진주성 성벽에 붙어서서 바라보았던 오후의 강과 햇볕을,
작가도 그리워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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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르는 도시.
내 고향 도시의 한복판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강안에서 오랫동안 놀기도 했다. 몇 초 전에 나를 지나간 물이 지금 내가 바라보는 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의 흐름은 내게 가르쳐주었다는 말과 같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로 보이는 강의 흐름을 아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흐름이 동일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잦아지다가 다시 몰려가기도 하고 물결이 싣고 가는 햇빛, 구름, 바람도 그때그때 달랐다. 나는 같아 보이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너무나 개별적인 시간의 것이라는 것도 그때 배웠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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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뮌스터에서 한 공부는 문학은 아니었다 합니다.
읽기와 쓰기는 그저 생활이었겠지요.
중후반부에 소개된 다음과 같은 글은,
그래도 작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는 풍경들이
먼 타향에도 존재했고, 부러움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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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만 알려주면 그 작가의 고조할아버지부터 젊은 시절 발표했다가 절판된 책까지 줄줄 외고 있었던 키 작고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엘렌씨가 하던 서점(엘렌 씨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출간되었음을 미처 모른 내가 다른 책들 앞에서 머뭇거릴 때면 슬며시 다가와서 그 작가의 신간을 내게 들이밀곤 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심지어 어떤 작가의 어떤 시절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도 어림짐작할 줄 알았다).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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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담기지 않은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이제 새로이 발표하는 글로는 접할 수 없음에 안타깝습니다.
지상에 별들과 같은 언어를 쏟아내고 간 허수경작가.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 마음을 울렸던 글귀.
십여 년 찾지 않았던 서울을 방문했을 때, 어떤 선배가 작가에게 남겼다는 말.

"자주 지나다니는 길은 잊어버릴 수 없어. 우리가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마음속에서 서로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이야."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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