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국말 실력에 의심을 품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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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나이사전
유동숙.박숙희 엮음, 이재운 기획 / 책이있는마을 / 2005년 9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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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모르는 우리말- 365일 헷갈리는 365가지
김슬옹.김형배.조경숙 지음 / 모멘토 / 2006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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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2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7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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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 1- 체계편
국립국어원 엮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11월
35,000원 → 35,000원(0%할인) / 마일리지 1,05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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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살림집에 ‘전통’ 숨결 불어넣다
옛 방식으로 집짓는 목수 박충수씨

생땅 나올때까지 땅 파고 집터도 바닥에서 1M이상 높게
못하나없이 나무로 뼈대 짜맞추고 짚 넣은 황토 벽돌 쌓아올려

» 전통 건축 방식으로 나무와 흙을 써서 집을 짓는 박충수씨는 옛날 집짓기 방식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애쓰는 목수다. 박씨는 생활하기 편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며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그런 집을 지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인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300년은 가야 제대로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다 그렇게 집을 지었어요.”

박충수(48)씨는 전통 집짓기를 현대 살림집에 되살리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민족 전통 건축이야말로 미학적으로나 견고함이나 에너지 효율면에서보나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궁궐, 사찰, 재실 등은 옛날 방식으로 짓지만 살림집을 그렇게 짓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안타까워 한다.

박씨는 나무와 황토 등 천연재료를 써서 전통적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 경남 산청과 강원도 인제에 짓고 있는 한옥은 터닦기부터 일반 주택과 다르다. 그는 콘크리트 기초 대신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터를 만든다. 생땅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고 그 위에 자갈과 흙을 넣고 다진다. 1미터 이상 땅을 판 적도 있다. 맨 위에는 황토로 채운다. 집터도 바닥에서 1미터 가량 높게 한다. 땅에서 올라온 물기운으로 기둥이 썩기 때문이다.

“궁궐이나 전통 한옥 모두 방바닥이 땅보다 1미터 이상 높습니다. 그래야 집이 수백 년을 갑니다.”

뼈대도 전통 짜맞추기 방식으로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 만든다. 뼈대는 그 자체로 지붕을 떠받칠 수 있다. 짜맞추기는 설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략 150개의 부분으로 이뤄지는 뼈대는 하나만 틀려도 모두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설계가 치밀해야 한다. 두달 이상 설계를 한 적도 있다. “많은 집들이 벽체로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도록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벽체를 헐어도 뼈대와 지붕은 고스란이 남아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단열위해 창에 한지 바르고 지붕에 60Cm 두께로 황토 올린다
구들방도 하나씩 꼭 만든다…가장 효율적인 난방법 이기에

황토는 벽체, 마감재, 단열재로 쓴다. 그는 짚을 넣은 황토 벽돌을 쓴다. 이물질은 황토의 좋은 성분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참나무숯, 톱밥 등 여러 가지 천연물질을 넣고 벽돌을 찍어 봤지만 짚이 최고였다. 마감재로 쓰기 위해 느릅나무껍질, 찹쌀풀, 다시마물 등 주위에서 좋다는 재료는 모두 써서 황토를 반죽했다. 신통치 않았다. 오랜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황토는 물로 반죽해 적당한 시간동안 숙성시켜야함을 알게 됐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분을 머금고 내뱉는 작용이 떨어진다고 한다.

박씨는 전통 방식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다. 전통은 현대 문화에 맞게 되살려야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통 한옥은 외풍이 세고 화장실, 부엌 등 생활공간이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그 마저 고집하면 과거에 얽매이는 겁니다.”

그의 이런 철학은 지붕과 창에 담겨 있다. 그는 옛날 방식대로 지붕에 60㎝ 두께로 황토를 올린다. 단열을 위해서다. 황토는 1m 두께일 경우 불을 때면 이틀이 지나야 온기가 느껴지고 이틀 이상 지속될 정도로 단열효과가 크다. 그럼에도 요즈음 지붕은 값이 비싼 기와 대신 화학제품인 아스팔트싱글을 덮어 지붕이 뜨거워지기 쉽다. 박씨는 황토와 함께 아스팔트싱글과 지붕사이에 틈을 내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지붕의 열을 앗아가는 방식을 고안했다.

창도 그렇다. 현대인들은 창을 크게 낸다. 단열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창 안쪽에 전통 창살문을 만들고 한지를 바른다. 한지는 통풍성이 뛰어나면서도 단열효과가 큰 소재라고 한다.

박씨는 집을 지을 때 구들방을 하나씩 만든다. 그는 구들도 오랜 시간 연구를 했다. 그가 만든 구들은 통나무 3개를 집어 넣으면 30분 안에 따뜻해지고 24시간 온기가 지속된다고 한다. 구들도 아랫목은 조금 뜨겁게 윗목은 미지근하게 되도록 한다. 방 안에 온도차가 있어야 공기가 순환되기 때문이다. 그는 “공기도 머물러 있으면 탁해지고 썩는다”고 말했다. 구들의 ‘전설’인 경남 하동군 칠불사의 아자방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선사가 아()자 모양으로 구들을 만들어 그렇게 불린 것으로 한 번 불을 때면 한 달 반 동안이나 따뜻했다고 전해진다.

“한 번 열을 받아서 그렇게 오래 열을 머금을 수 있는 소재가 어디 있습니까. 아자방의 비밀은 숯가마처럼 불을 꺼트리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들이야말로 선조들이 남겨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가장 효율적인 난방법입니다.”

박씨는 숨겨지는 곳이 없도록 집을 짓는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봐도 알 수 있어야한다는 게 그의 건축관이다. 그가 지은 집이 그렇다. 집을 둘러보면 안팎으로 숨겨진 곳이 없다. 그가 지은 집은 예쁘고 야무지다. 모든 소재가 정직하게 다 드러나있다. 그는 그런 집을 닮았다. 산청/권복기 기자

“할아버지가 유명한 도편수…
몸 안에 ‘목수 피’ 가 흐릅니다”

» “할아버지가 유명한 도편수…몸 안에 ‘목수 피’가 흐릅니다”

박씨는 집짓는 일을 복짓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의 집짓기는 돈벌이를 위한 게 아니다. 곶감을 만들어 팔아 한 해에 2500만원을 번 적이 있는 그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살 수 있다.

그가 1년에 짓는 집은 2~3채에 불과하다. 공사비는 재료비에 품삯만 얹어서 받는다. 집을 지어달라는 사람이 끊이지 않지만 다 지어줄 수가 없다. 대신 전통 집짓기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오면 누구에게나 알려준다.

그는 자신이 목수가 되리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적성검사 결과 겉을 보면 뼈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건축가가 되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도 흘려 들었다. 중2 때 <장자>에, 고교 때는 프로이트에 심취해 정신세계에 몰두했었다.

17년전쯤 그는 경남 산청의 시골마을을 지나다 한 마을에서 재실을 짓는 것을 보고 마음이 끌려 무작정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일이 너무 재미있어 목수를 모시고 다방에 가서 하루에 한 두 가지씩 기술을 배웠다.

“3년쯤 지나니 혼자 집을 짤 수 있겠더군요. 이상하게도 다른 분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르는 거예요.”

목수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작은어머니가 “너네 할아버지가 유명한 도편수였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 목수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는 매번 다른 집을 짓는다. 같은 집을 지어본 적이 없다. 집터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햇볕은 물론 아침 저녁으로 바람 방향이 바뀌는 것까지 고려해 집을 짓기 때문에 그는 설계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는 재주가 있으면서 생각이 바른 사람들을 찾아 자신이 10여년 동안 연구한 전통 집짓기 기술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전통 집짓기 기술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재주가 있으면서 생각이 바른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권복기 기자                                                                                                                  200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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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존 것을 나혼자 누리면 쓰것소?
 
 
별장·미술관 지어 누구나 대접하는 변동해씨 /

“전남 장성에 가면 산속에 참숯과 편백나무와 황토와 죽염까지 써서 손수 별장을 지어 놓고 누구나 와서 쉬라고 열쇠를 100개나 나눠준 사람이 있대.” “뭐 하는 사람인데? 아주 부잔가보네?”

어느 주말, 우연찮게 들려온 소문과 호기심에 이끌려 한번 가보기로 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10분 남짓,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을 찍은 ‘금곡 영화마을’ 안내판을 따라 산길을 오르니, 맨 꼭대기에 ‘소담한’ 시골집이 한 채 서 있다. ‘세심원’(洗心園·마음을 씻는 곳)이라 쓰인 나무 팻말 위에 깨진 기와 한 장을 올려놓은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언능 들어옷쇼잉, 먼 길에 여까정 오느라 애썼소.” 어제 본 듯 반겨주는 이가 바로 세심원지기인 청담 변동해(52)씨였다. 반바지에 흰고무신 차림이 영락없이 동네 고샅길에 마을 나온 중년 아저씨다. 현관문을 열자 확 풍겨나는 편백나무향과 반닫이 위에 떠놓은 정한수 한 잔이 절로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방명록은 없고, 지금꺼정 받아논 명함만 4천장이 넘드만요.” 1999년 7월 완공해 개방한 이래 꼬박 7년간 어림잡아 1만5천명쯤 다녀갔단다.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을 따라 온 발길들이다. “첨부터 나는 관리인일 뿐이고, 쉬러 오는 사람들이 주인이란 맴으로 대한께 그런가 한번 연을 맺으면 꼭 다시들 옵디다.” 청담이 짐작하는, 소문난 이유다.

» 세심원과 금곡숲속미술관 지기로 문화사랑방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변동해씨. 세심원 거실에서 광주 요델협회 회원들이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저짝 황토방을 따땃허니 데펴놨응께 건너갑시다.” 잇대어 지은 별채의 쪽마루에 올라앉으니, 아래서는 낭랑한 계곡물 소리가 올라오고 첨성대를 닮은 굴뚝 위로는 총총한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이 존 것을 나 혼자만 누리믄 쓰것소?”


이튿날 광주에서 요델협회 회원 가족들 20여명이 와서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그는 이날 직접 농사지어 만든 흑보리쌀 고추장과 죽염된장으로 끓인 무시래깃국, 부인이 담가준 ‘전라도 김치’, 야생 죽로차로 줄잇는 식객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지난 2월 버려진 마을 구판장을 개조하고 평생 모은 소장품을 내걸어 ‘금곡 숲속미술관’까지 문을 연 청담은 요즘 또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세심원과 미술관에서 음악회나 강연회, 다도와 명상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문화의 향기를 더 멀리 퍼뜨리는 것이다.

‘장성 토박이 황주 변씨, 농고 출신, 2005년 장성군청 민원팀장(계장)으로 30년 만에 명예퇴직, 읍내 25평짜리 빌라 거주, 소형 트럭 보유.’ 지극히 평범한 이력의 서민인 그가 이처럼 재벌들도 따라하기 힘든 ‘만인의 별장’에 ‘문화사랑방’까지 꾸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와 인연으로 인근 ‘휴휴산방’에 자리를 잡은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씨는 “사주에 불이 유난히 많고 물은 없어 호를 ‘청담’으로 지어줬다”며 “청렴하게 공덕을 쌓아 유명한 선대의 가풍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풀이한다. 정작 청담의 답은 간단하다. “돈보다 정성으로, 혼자보다 여러니, 쟁이기보다는 퍼주고 사는 것이 행복허지 않소?”

장성/글·사진 김경애 기자


마음 씻으러 온 객들이 주인 - ‘만인의 별장’ 세심원 이야기 /

‘아니온듯 가시옵소서’, 세심원의 한쪽 서까래 밑에 걸려 있는 목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마음을 씻고 가는 것이니 흔적을 남길 것도 없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세가지가 없다. 시계, 달력, 텔레비전. 대신 세가지 금기는 있다. 술과 고기, 휴대폰이다. 도시와 일상에서 묵은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다. 1999년 문을 연 초기엔 멋모르고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며 어지럽힌 객들도 없지 않았지만 “집 기운에 눌린 듯” 지금껏 이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다.

» 축령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심원 별채 황토방의 쪽마루와 굴뚝, 오른쪽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멀리 산 아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누에치던 움막 10여년 손수 개조
숯·편백·황토·죽염의 자연주택
7년간 1만5천여명 발길
사용료 안받고 음식까지 챙겨놔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축령산 자락의 산골에 세심원이 자리잡게 된 내력은 제법 길다. 지난 80년 9급 공무원이던 (청담) 변동해씨는 우연히 구입한 터에 쓰러져 가고 있던 누에치는 잠실을 10여년에 걸쳐 소일 삼아 직접 집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대대손손 토박이에 생활민원 담당을 해 ‘발이 넓었던’ 그는 96년 무렵 지역의 숯굽는 장인과 함께 주민 소득증대 사업으로 ‘숯공예품’을 개발하고 덜컥 공장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장사와는 인연이 없어, 곧 문을 닫는 바람에 숯만 창고 가득 남았다. 마침 축령산에는 국내 유일의 50년생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간벌 때마다 쓸만한 목재들을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남은 숯 2톤을 바닥에 깔고 그 위 마루를 편백으로 깔았다. 벽은 죽염을 섞은 황토로 발랐다. 독특한 편백향 덕분에 모기나 벌레도 없고, 숯이 습기를 머금어 종종 비워놓아도 늘 실내가 고슬고슬한 말 그대로 ‘웰빙자연주택’이 탄생한 것이다.

방 3칸·부엌 겸 거실·욕실 1칸, 황토방 별채 2칸, 다 지어 놓고 보니, “평생 전원의 삶을 꿈꾸면서도 엄두를 못내는 월급쟁이들과 함께 나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맞고 인연 닿는 지인들에게 열쇠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사용료 같은 건 애초 받지 않았고, 쓰레기 처리가 골치 아파 되도록 먹을거리도 가져오지 않도록 했다. 대신 쌀과 김치, 밑반찬을 냉장고에 구비해놓고 알아서 챙겨 먹도록 ‘부탁’했다.

세심원은 지역의 명소를 넘어 씨를 퍼뜨리고 있다. 지난 2월 경북 청도에서 버섯농사를 하는 박복규씨가 ‘길상원’을 열어 교류하고 있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 견학을 오고 있다.

2005년 2월 30년9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을 한 그는 세심원지기로 새로운 출퇴근을 하면서 황토방의 군불을 단 하루도 꺼뜨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정성만으로, 그 큰 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 그의 퇴직 이후부터 방문객이 급증하자 월 25㎏씩 쌀을 보내주거나 감사 편지와 함께 봉투를 남겨두고 가는 자발적 후원자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기는 하다.

“남매는 다 자라 지 앞가림허니께, 많지 않은 연금이지만 관리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지라우.” 옆에서 말없이 웃어주는 부인의 이해심이 세심원을 지켜온 또다른 힘인 듯했다.

금곡숲속미술관이야기
문화 모르믄 촌사람잉께 기냥 들와서 보시요

» 금곡숲속미술관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나 영화마을 구경왔다 우연히 들른 관광객들이나 소담한 초가지붕 한옥 갤러리의 운치와 갖가지 내력을 지닌 작품들의 품격에 놀란다.
“사람들이 미술관 문턱서 겁 먹고 고갯짓만 슬끔 하고 가불더라구요. 기냥 쑥 들와서 보믄 좋을텐디, ‘미술 콤푸렉스’가 엄청나두만요. 그랴서 차근차근 일러주다 보니께 인자는 민중갤러리의 농민 큐레이터라고들 허네요.”

‘문화 보시’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청담 변동해씨의 열정과 지극 발원(?)으로 문을 연 ‘금곡 숲속미술관’은 세심원과 더불어 장성의 또다른 명소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2월 개관 기념잔치 때는 전국 각지에서 1천명이 넘는 하객들이 몰려와 2.5㎞ 진입로가 막힐 정도였다.

미술관은 겨우 30여평에 불과한 단층 초가한옥, 청담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소담’하다. 2년 넘게 버려졌던 마을 구판장 건물을 한 달에 걸쳐 개조한 것이다. 세심원을 즐겨 찾는 광주의 한 건설업체 대표가 조명과 전기시설 공사를 하고, 자신은 그림·장식물·진열장 등 전시 컬렉션을 도맡았다. 숯 위에 편백나무 마루를 깔아 세심원 분위기를 그대로 옮겼고 2평짜리 방과 화장실, 개수대도 갖춰 묵을 수도 있다.

전시작품은 25점 남짓, 그렇다고 허접한 시골미술관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작가인 황순칠씨, 조계종 4대 종정 서옹 큰스님, 한국화 대가 남농 허건, 아산 조방원, 현당 김완영 등 호남 남도 화맥을 이끄는 대가들의 산수화와 선필들이 나란히 걸렸다.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동심 그림도 시선을 붙든다. 운암 조용민씨의 글은 일본 여행길에 붓이 없어 목욕 수건 네귀를 묶어 쓴 것으로 ‘프로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걸작이다. 100여년 전 청담의 고조부 때부터 사랑채에서 쓰던 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로와 고사한 오수목 조각들, 300년 묵은 먹감나무 판으로 만든 다상이 운치를 돋운다. 하지만 청담은 작품들의 값을 모른다. 산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쌓은 교분으로 하나둘 얻은 것들이니 가치를 따질 수조차 없다.

마을 구판장 개조한 초가집에 친분 예인들 작품 걸고 설명까지
‘민중갤러리 농민 큐레이터’ 소문, 문화사랑방 키울 후원회 채비중

입소문을 따라 1주일에 150명 안팎의 관람객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데 힘입어 전시 일정도 하나둘 잡히고 있다. 오는 10월 말 황순칠씨의 초대전, 내년 생태미술 기획전, 김문호씨의 천탑전 등을 준비 중이다. 가을부터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이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미술관 앞마당에 창작공간도 지을 작정이라니 그의 문화 보시행은 끝이 없어 보인다.

» 금곡숲속미술관 밖 전경.

“여그 시골 사람들은 손재주든 소리든 다 한가락씩 하는 쟁이고 예술가”여서 일년 열두달 채울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세심원과 달리 미술관은 그의 열정만으로 꾸려가기에 벅찰 수밖에 없다. 작품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유지는 물론 보안 시설 관리비 등으로 한달에 최소 150만원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월 1만원 후원회’를 꾸릴 참이다.

“지아무리 잘 묵고 잘 산다 해도, 나라에 ‘문화’가 없으면 난장판이 되지 않겄소.” 비록 산골 구석이지만 문화사랑방지기가 되고자 하는 청담의 안목은 넒고 크다.

노형석·김경애 기자                                                                                                    200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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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지키던 소나무숲 조경용 팔아넘기다니…


강원 송림리 주민들 허탈
100년 넘은 나무들 파헤쳐
힘모아 공사저지 나섰지만
사유지 막을 길 없어 발동동


» 김낙기씨가 27일 오전 강원 강릉시 연곡면 송림1리 마을 인근 소나무 파내기 현장을 지켜보다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송림리인데….”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1리 김낙기(70)씨는 100년 넘게 마을을 지켜주던 소나무숲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소나무숲은 마을의 한 부분이었는데 사유지라고 외지인이 팔아넘기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허탈해했다.

28일 송림리 주민들은 시민운동 단체인 강릉 생명의 숲 회원들과 함께, 닷새째 벌어진 소나무숲 이식작업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송림1리와 2리 사이 밭두둑에 약 200m 길이로 펼쳐진 숲에는 가슴높이 지름 42㎝, 높이 10m 가량인 소나무 50여그루가 서 있다. 이 가운데 37그루를 파내기 위해 굴삭기와 삽으로 인부들이 뿌리 주변을 떠내 줄로 동여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한때 실력으로 파내기 공사를 저지하기도 했지만, 사유지에서 벌어지는 합법적 공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주민 김황식(53)씨는 “4년 전 밭을 매입한 서울의 부재지주가 지난해 조경회사에 소나무숲을 팔아넘겼다”며 “마을 사람들이 솔잎혹파리 방제작업을 하는 등 애써 가꾸지 않았다면 숲이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홍동선 강릉 생명의 숲 고문은 “지난 15일 소나무를 강릉의 명품으로 키워나가겠다고 추진위원회까지 발족시킨 강릉시가 마을의 상징이자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강릉시도 이 숲의 경관과 공익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뾰족한 보전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릉시는 땅주인에게 소나무 반출에 필요한 소나무재선충 감염 여부 확인증 발급을 거부했지만, 최근 강원도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았다. 박종환 강릉시 보호계장은 “시에서 땅을 사들이지 않는 한 (소나무숲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8일 소나무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개정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 시행령이 발효됐지만, 이 지역이 재선충 발병 지역이 아니어서 이들 소나무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주민 정정순(64)씨는 “오대산 찬 바람을 막아주던 당당한 소나무들이 이제 수도권 아파트의 정원수가 돼 약물을 매달고 연명하게 될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강릉/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사진 박종식 기자                       2007. 3. 28


 

 

ps. 요즘은 모든 일이 자본의 논리로 돌아간다. 돈이 된다면 그 속에 어떤 세월,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한낱 휴지조각이 될 뿐이다. 자본의 논리 아래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 어디 한둘이냐... 돈의 논리로만 가격 매겨져 사들이고, 팔리고, 파헤쳐지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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