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휘리릭 넘기니 헌책방의 고유한 냄새가 난다.
낡고 아득하고 세월이 켜켜이 쌓인 냄새... 지난 세월의 색채가 먼지로 피어오르는 냄새...
누런 책장에 얼룩덜룩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오래된 활자체가 30년의 시간을 휙 불러낸다.
낡디 낡은 책을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왔다.
아주 가끔 꺼내 보면서...
표지를 쓰다듬고 휘리릭 책장을 넘기는 게 다였지만,
말을 타고 있는 칼과 요나탄 형제가 그려진 표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허하던 가슴에 묵직하게 차오르는 게 있었다.
그게 무언지 곰곰 생각해본 적은 없으나 그 묵직함이 위안이 되어 준 것은 사실이었다.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하는 묵직함이었다.
여리지만 단단한 손길로 어깨를 가만히 밀어주는,
그래서 겁나는 마음을 비겁함에 내어주지 않게 하는,
도망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가만히 내뱉게 하는,
나 혼자 두렵고 떨리는 건 아니라고, 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함께 발 내딛는 작은 용기들이 같이 있다고 말해주는, 그런 뭉클한 묵직함이 항상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이 책이 내 곁에 있었다.
내 곁에, 내 책장 안 깊숙히 사자왕 형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