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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딸 리라 - Anne Story 10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신지식 옮김 / 창조사 / 1994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그 속에 빨강머리에 주근깨 투성이인 앤이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한 번쯤은 읽어봤을 동화책 '빨강머리앤'과 텔레비젼 속에서 맘껏 그 매력을 발하던 만화 '빨강머리앤'. 내 어린시절 속에는 앤이 아련한 추억처럼 자리하고 있다. 흥얼흥얼 즐겁게 부르던 그 만화주제가도 새삼스레 그리워지고, 앤이 살던 애인번리 마을의 풍광과 초록지붕집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다시 그려보던 그 때 그 기분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기도 한다.
앤이 너무 사랑스러워 푹 빠져살던 그 때, 한 권짜리인줄만 알았던 앤이 10권이나 되는 시리즈로 나와있다는 것을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그 10권을 모두 모으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용돈을 모으고 애를 썼던지... 10권의 책을 한 권,한 권 사서 모으며 얼마나 정성스레 여러 번을 읽었던지...
주근깨 투성이의 고집센 소녀의 모습으로만 알았던 앤이 매력적인 숙녀로 성장하고 따뜻하고 인자로운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속의 앤의 모습도 같이 변했지만, 그래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양갈래로 땋은 빨강머리와 주근깨 가득한 얼굴의 빼빼 마른 앤인것 같다.
어린 시절 많이 읽고 좋아했던 작가인 신지식 선생님이 직접 번역한 작품이라서 이 시리즈를 더욱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 함께했던 많은 책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지만, 이 10권의 시리즈만은 아직도 내 책상머리 한 켠을 차지하고 있으니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앤의 매력이란 여전히 마음 설레는건가 보다.
근래에 다른 출판사에서 10권의 앤 시리즈를 다시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쁜 표지그림에 깔끔하게 단장하고 나온 그 책들을 보면서 조금 탐이 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항상 함께 해온 이 낡은 10권의 앤들이 있으니 크게 부러운 생각은 없다. 아직 앤이 10권이나 되는 긴 이야기라는 것과 그 속에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그리고 꼭 앤을 만나서 그 속에 빠져봤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이 10권의 이야기에서 매력적인 것은 앤만이 아니니까. 사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은 앤이 아니라 그녀 주변의 개성적이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수많은 이웃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나싶다. 그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하기에 앤의 긴 생애가 더 풍요롭게 어우러지는 것일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