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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화가 한생곤의 노란버스
한생곤 글, 그림 / 하늘숲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며 그 사람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 사람이 한 권의 책인 경우가 그렇다. 책을 읽은 지 좀 흘러 가뭇하지만 반가움과 아쉬움에 몇 줄 어기적 거려본다.

책에 수록된 그의 그림은 이제껏 본 어떤 그림보다 더욱 마음을 훔친다. 떼를 써서라도 한 점 얻고 싶다. 걔 중 특히 <아버지의 등>에 마음이 머문다.

<아버지의 등>은 나이가 차서야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세월과 땀에 대한 깨달음이 화폭에 옮겨졌다. 피를 뽑기 싫어 도망치듯 놀고 오는 길에 처음으로 그는 아버지의 노동을 본다.

“아버지 혼자 피를 뽑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벼들이 가득 찬 논에 아버지는 하얀 모자를 쓰고 계셨고, 피를 뽑으실 때는 허리를 숙이셨다. 그 연초록생의 벼들 속으로 허리를 숙이시면 아버지의 등이 꼭 거북이 등처럼 둥글게 선을 그었고 다시 일어서시면 하얀 모자와 상반신이 논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한 번은 논 속에 숨고 다시 한 번은 논에서 나타나는 그 모습을, 그 리듬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했다. 그 단순한 아버지의 삶의 리듬을 느꼈다. 그때에서야 겨우.

. 그렇구나. 아버지는 평생 저 일만 하셨을 뿐이야. 논에 있는 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피뽑기. ...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모든 잔소리들은 저 벼들을 보호하기 위한 피 뽑기 같은 것이 있어. 일찍 일어나라, 공부해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시는 모든 잔소리는 모두 저거였어. 내가 꾀를 부리느라 도망친 저 논에서 아버지께서 묵묵히 하신 노동은 저거였어. 저거야. 바로 저거야.”

그의 글과 그림에는 삶에 대한 애잔한 깨달음과 감사 그리고 따뜻함이 베어 있다. 글을 읽다보면 논문을 쓰는데 왜 7년이 넘게 걸렸는지도 이해가 되고, 버스 한 대를 집삼아 10년을 떠도는 것도 그러고도 남을만해 보인다. 그의 종교는 “그림자 벗을 삼아 걷는 이 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지만 마음의 님을 따라 가고 있는 나의 길은 꿈으로 이어진 영원한 길”. 그에게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것은 공책空冊을 끼고 산다는 것이다.” 공책이란 ‘빈’ 책이기에, 화가는 자신의 운명을 빈 책에 둔다. 전제는 없다. 다만 “걸어가는 바로 그것이 길인 삶.” 그는 구도의 길을 걷는 행려승에 다름 아니다. 아름다운 분이다.

다만 한 가지 그의 글에서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는 한가함을 사랑하기에 돈이 아닌 시간을 택하는 삶을 산다는 대목이다.

“시간과 돈에 대한 태도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시간이 없다.”

나는 그의 태도를 존중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이 경우에 어떻게 된 걸까.... 비본질적인데 시간을 쓰지 않기에 그는 한가하다고 하지만... 본질적인데 시간을 쓰는 경우라면? 게다가 그렇기에 돈 또한 매개가 되지 않는다면? 그의 한가함이 부럽지만 나로선 살짝 부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그리는 아이는 없다.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문장과 같다.

그림은 사랑이다.

그래서 꼬치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그림이다.

내 그림이 꽃이길 열매이길

사랑이길 기도한다.


한생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늘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한 소년을 떠올렸다. 만난지 일 년이 넘었건만 얼마 전에야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둠을 덮어쓰듯 늘 모자로 가리고 다녔는데, 올해 들어 환하게 웃는 모습과 밝은 목소리를 자주 보게 된다. 그 아이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한생곤에 따르면 아이는 사랑이 너무 많은 거다. 절판된 이 책을 그 아이에게 주었다. 그 아이는 노란 버스를 어떻게 탈까. 한생곤과는 어떤 얘기를 나누게 될까....

중고로 구한 이 책 안에는 그의 이름과 번호가 적혀있다. 011 *** 9021

그가 직접 선물해준 책인 것 같아 왠지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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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
김훈태 지음 / 북노마드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네 편지를 이제 받았어.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렇게라도 읽게 돼서 다행인지 몰라. 좀 부럽더라. 왜냐면 난 서른을 너 마냥 알뜰하게(?) 고민을 못한 것 같거든. 그리고 그 고민들을 미뤄 버렸던 것 같아. 네 편지를 뒤늦게야 챙기게 된 것도 그 때문인지도...그렇지만 즐거웠어. 네 옆을 쫄랑쫄랑 따라다니듯 편지를 읽어 내렸어. 그리고 이렇게 너의 어투를 따라 편지를 쓰고 있어.


 교토에 머물게 된다면 나 역시 우선 자전거를 하나 빌릴 거 같아. 그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가모가와를 따라 해지는 쪽을 향해 네가 지났던 길을 달려 갈거야. 그러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아무데나 자전거를 엎어두고 가만히 흐르는 강과 정적에서 숨을 고를 거야. 유라쿠소 게스트 하우스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숙소는 위켄더스가 가까운 쪽에 얻고 싶어. 교토엔 절이 넘쳐나니 어디서나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난 미셸스보다 위켄더스의 큼직한 테이블과 너무나도 폭신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맘에 들거든. 그리고 매일 오전 거기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어. 근데 한 가지 난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 다른 차 종류도 메뉴에 있겠지? 그래서 말야 난 커피 순례가 아닌 우동 순례를 하게 될 것 같아. 마치 영화 우동을 찍듯이 교토의 우동집은 다 섭렵 할지도 몰라. 우동을 무지 좋아하거든. 그래서 네가 소개해 준 ‘오멘’은 교토에 도착한 첫날부터 찾아 갈거고

 철학자의 길은 매일 거닐어도 좋을 것 같아. 네가 170cm 벚꽃나무를 강조한 게 좀 걸리긴 해. 그치만 난 다소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낮은 가지들에 겸손하게 몸을 낮출 준비가 되어 있어. 좀 지친다 싶으면 가모가와 상류로 가서 가모가와에 발을 넣고 물장구를 칠거야.  그러다 다시 호젓하게 숲길을 걸을 테야. 엔라쿠지로 가는 히에에잔은 나의 성지가 될 것 같아.


 오타와 폭포에 가서는 나도 너처럼 욕심을 부릴 것 같아. 세 물줄기 모두 받아먹으려고 긴 바가지를 이리 저리 휘젓겠지. 그리고 물통 세 개를 미리 준비해가 각각 넘치도록 채워서 뿌듯하게 품고 내려올지도 몰라. 건강, 부, 사랑. 어디나 사람들은 참 상투적으로 너무 닮지 않았나 해. 어쩌면 일본인과 한국인이 너무 닮은 건지도. 한국인들이 용한 곳이나, 교회나 절에 가서 비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


 감동이었어. 꽃이 시들지 않는 윤동주 시비. 도시샤대학 외진 구석 시비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 있다니. 게다가 너도 그곳에 꽃을 들고 찾아가다니. 난 요즈음엔 ‘시의 힘’이라던가 ‘정신의 힘’에 대해 그다지 믿지 못하게 되었거든. 그리고 고독이란 게 꼭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우토로. 솔직히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어. 그런데 넌 거길 찾아갈 용기를 냈던거구나. “언제나 힘을 내십시오.” 넌 어설퍼 했지만, 나 역시 달리 적절한 말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것 같아. 다행히도 주민회가 재작년 2011년까지 우토로 마을부지 1/3까지 확보 했나봐. 기나긴 시련과 싸움 끝에 마음을 좀 놓을 수 있게 되셨나봐. 그런데 아직 상하수도 시설은 정비가 안 됬다고 해. 지금까지는 팔짱을 끼고 방관하던 일본정부도 웬일로 나서서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과 협의회를 꾸린다고 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면 좋을 텐데.


 네가 일본에 대해 가진 반감과 이질감, 석연찮은 느낌 못지않게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속으로 스며든 너를 발견해. 그래서 넌 일본인이 아닌 듯 영어를 쓰거나 여행지도를 보이도록 다니며 꼭 티를 냈어야 했던 건지도 몰라. 너만 일본인으로 보이는 거는 아닐 거야. 나 역시도 그럴 것 같아. 일본인이 몇 번 씩이나 길을 물어 오면 어떻게하지?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일본은 더 가까운 지도 몰라. 그건 역사 아래로 이어져 내려온 어떤 생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과거를 대하듯 멀면서도 가깝게 일본을 여기는 지도 모르겠어. 나도 교토에 가려해. 언제가 될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곳 구다라, 아스카, 야마토, 나라의 땅을 밟으며 옛 백제의 흔적을 둘러보고 싶거든. 한 동안 여행을 간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 여행을 생각할 기력도 없을 만큼 지쳐있었는데, 네 편지 덕분에 두 발로 다니며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어졌어. 오랜만에 편지를 쓰기도 해. 아리가또.

 

 안녕!

 

 어느 길에선가 다시 만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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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본인 마누라 켄짱
주완수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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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를 훑어 봤을 때는 탐탁지 않은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일본인 부인을 둔 한국인 만화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한 두 에피소드씩 읽다가 내리 읽어버렸다. 몇 댓글마냥 배나온 아저씨의 낯뜨거운 부부생활로만 이 책을 치부하는 것은 읽는 이의 관-점을 드러낼 뿐인 것 같다. 성에 대한 얘기는 '너무' 솔직하면서도 웃기지만 이 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간 사랑의 상흔, 일본인 아내에 대한 사랑, 유산한 아이에 대한 아비의 아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사는 사람들의 곤란, 지지부진한 삶에 대한 연민 등 불혹 줄에 접어든 어른의 이야기와 고민이 그림과 글로 녹록지 않게 다듬어져 있다.

   
  내 길을 믿지 못하니 내 집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길을 가다 어느 길에서 어느 집을 만났다.  
   
   
 

왜 일상은 늘 허접스러우면서도 버겁기만 한데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 그 풍경이 아름다워지는 걸가. 나이 값도 못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얼기설기 늙어서는 나이가 차도 아름다워질 수 없던데. 나는 자신이 없다.

 
   
   
 

혁명과 불륜.

내가 가늘게 끈 대고 있던 것들은 모두 흩어지고
내 젊음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내 눈이 자꾸 강변 너럭바위에 앉은 노인의 등덜미에 머문다

 
   

 박재동 화백의 평보다 이 책에 대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는 없을 듯하다.

   
  “완수의 글은 ...곰삭아 있고 뭉글뭉글하면서도 정교하다.
.... 녹진녹진한 글 속에 깊은 분노의 칼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글미 옆에 씌어진 그의 글은 안개 저 편에서 아른거리며 나를 부르는 묘한 유혹이 있다.
나는 나무다리를 건너 홀리듯 그의 글과 그림을 따라간다. ...”
 
   
 
 그의 글에선 묵혀진 세월의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마음을 이끌고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그의 글에 혹해 이전에 나왔던 <기억상실>도 구해 아껴가며 읽고 있다. 이보다  깊은 만화가의 글을 만난 적이 없다.


적어도 반평생을 넘게 산 이들이 읽어야 될 것 같다.  웃으면서도 그냥 웃고 넘기지 않는, 그럴 수도 없는 나이에 이른.

  이 책을 그림처럼 걸어놓고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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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the Flowing River : Thoughts and Reflections (Paperback, New ed)
파울로 코엘료 지음 / HarperCollins (UK)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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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기위해 다른 책을 조금씩 읽는다. 그러다 가끔 정말 맛있는 책을 만나면 본요리는 대신 그 애피타이저만 끝까지 먹어치울 때가 있다. 주완수 화백의 책이 그랬다. 파울로의 이 책은 그렇지는 않았다. 서문에 쓰인 작가의 조건을 읽으며 쿡쿡거리다 야금야금 읽게 되었다.

일본의 어떤 학자가 현대 소비자를 소비주의자라고 개명했듯, 소비와 욕망의 배출만을 탐하는 세속에서 누구도 욕망의 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책은 정신적 방부제 같다고나 할까. 그치만 방부제는 먹는 건 아니다. 먹어서도 안된다. 아무리 유기농 방부제라고 해도. 방부제는 다만 부패 방지 기간을 연기시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썩었다. 잃어버린 삶의 지침을 찾았다 해도 잠깐 부패를 멈춰세우거나 부패의 지연은 가능하지만 지나간 시간과 도상의 나는 되돌릴 수 없다. 이 썩음과 타락의 길에서 잠시 쉬었다갈 수는 있어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더 잘 알기에. 그렇기에 잠깐동안 썩지 말라는 방부제의 유효기간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 진짜 운명을 발견하는 일은 드물다. 신은 부당하다고 빈정이 상할 뿐이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알려질 때 그 순간이 찾아오면 이미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에는 늦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치 사막같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우리가 낭비해온 시간에 대해 우리 자신을 비난한다. ”(p152)

삶은 어리석고 무의미하다. 나는 더 어리석고 무의미하다. 코엘료의 착한 거짓말은 내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삶의 변화를 보이는 순진함이 내게 아직 남아 있다면 .... 그렇지 않기에 그의 글들은 내 입맛에 본요리를 잊을 만한 애피타이져는 아닌 것이다.

마음을 다독이는 좋은 글들이 많다. 마치 흐르는 가람인 듯 그의 글이 조용히 흐른다.


♣책 속 한 구절
“낙관론자도 비관론자도 결국엔 둘다 죽는다. 하지만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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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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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두어 읽어서 앞부분은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첫 양쪽 가득한 해외 언론의 가득한 찬사가 과장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되었다. 작가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번역으로는 보통 그 본래 문체의 힘이 감소되는 경우를 감안한다면 더욱 매력적인 글이다. 흠이랄 건 없지만,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건축에 대한 관심보다 작가에 대한 관심이 커진 다는 것. “다음 작품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라는 게 괜한 풍문이 아니었다.

“우리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많은 것들 가운데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가치를 할당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힘”을 저자는 “교양”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건축에 관해 저자가 정의한 그런 교양을 선사한다.
르 꼬르뷔지에 관한 얘기는 황당하면서도 재밌다. 배수가 되지 않는 집을 지어 아이가 폐렴에 걸려 결국 건축비를 받지 못했다던가, 오늘날 슬럼이 대버린 프랑스판 뉴타운에 대한 착상이라던가.
일본 건축의 어제와 오늘에 관한 작가의 생각은 일본보다 전통의 훼손이 심한 한국에게는 더욱 와 닿는다. 가령 “현대의 현실을 향해 자신을 번역하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 오랜 매력을 새로운 용어로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짜증”은 비닐하우스와 콘크리트 아파트가 함께 있는 풍경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사는 우리에게선 곱절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

파리와 런던, 네델란드와 스위스, 베네치아와 신주쿠를 걸으며 건축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는 근사하면서도 공감되고 풍성하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다. 보통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말처럼 “깊은 의미에서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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