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 -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김소민 지음, 소윤경 그림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물음왜 동동이는 아빠와 그리고 새엄마와 영혼이 바뀌었나요?

   묘묘는 너무 세다. 왈가닥, 여자 깡패, 태권 소녀 등이 묘묘의 별명이다. 묘묘는 오빠 동동이 보다 칠 킬로그램이나 더 나가고 몸도 튼튼하다. 동동이는 묘묘보다 튼튼해지려고 아빠가 시키는 건 다 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모두 먹었지만, 묘묘보다 여전히 작았다. 그런데 태권도장에서 동생인 묘묘와 대련을 하게 되었다. 동동이는 어떻게든 묘묘를 이기고 싶었다. 동생에게 당하고 아이들한테 놀림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동동이는 캡슐 마녀로부터 영혼이 바뀌는 캡슐 두 알을 얻게 되었다. 한 알은 동동이가 먹고, 나머지 한 알을 묘묘가 먹으면 서로의 영혼이 바뀐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동동이는 묘묘의 몸에, 묘묘는 동동이의 몸에 들어가 강해진 동동이가 묘묘를 이기게 될 것이었다. 땅콩크림빵에 묘묘가 먹을 알약을 넣었는데, 아빠가 먹고 말았다. 그래서 묘묘가 아닌 아빠와 영혼이 바뀌었다. 아빠가 되자마자 동동이는 제일 먼저 묘묘를 쥐어박았다. 묘묘는 울었고, 동동이는 무척 기뻤다. 그리고 아빠를 대신해 맞선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동동이는 아빠의 맞선 상대인 민기숙 아줌마가 새엄마로 맘에 들었다. 하지만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동동이는 밤새 용서해달라는 편지를 써 아줌마 집에 놓고 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왔는데, 묘묘가 머리를 감겨달라고 해서 감겨주었다. 샴푸가 눈에 들어갔다고 묘묘가 울었는데, 동동이도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빠 생각을 했다. 아빠도 이렇게 묘묘 머리를 감길 때마다 울고 싶었을까?

 그리고 갑자기 동동이의 영혼이 동동이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캡슐 마녀는 한 사람의 영혼이 성장하면 약효가 사라진다고 했었다. 아빠의 어려움을 동동이가 이해하면서 동동이가 조금 성장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캡슐 마녀의 알약을 얻게 된 동동이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묘묘에게 알약을 먹여 태권도 대련에서 이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알약을 넣어 둔 땅콩 크림빵을 묘묘가 새엄마에게 주면서, 이번에는 새엄마와 동동이의 영혼이 바뀌어버렸다.

 어떤 짓을 해서라도 묘묘를 이기려는 동동이가 내 눈에는 무지 착하게 보인다.

*윗 글은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한 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같이 쓴 글입니다. 

*아이들의 책읽는 힘, 글쓰는 힘, 말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책힘글힘"

https://withseomong.tistory.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장실에 사는 두꺼비 초승달문고 15
김리리 지음, 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물음왜 준영이에게는 휴가가 필요했나요?

  학교에서 준영이는 이름 없는 아이였어요. 담임선생님은 준영이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어요. 아이들한테 인기도 없었어요. 축구도 못 했고, 약골이었거든요. 그런 준영이는 사십 명이 넘는 친구들 앞에서 벌서는 게 무엇보다 싫었어요.

준영이는 똥을 잘 못 싸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친구를 사귈 만큼 긴 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냈어요. 그 친구는 똥같이 생긴 두꺼비였어요. 준영이는 두꺼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어요. 왜냐하면, 두꺼비를 만나고 난 후 시원하게 똥을 쌌거든요. 학교에서도 좋은 일이 있었어요. 지각했는데도 선생님이 혼을 내지 않았고, “준영”이라고 이름까지 불러줬거든요. 준영이는 엄마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려고 변기에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두꺼비를 보여줬어요. 그런데 엄마가 변기 물을 내리는 바람에 두꺼비가 사라져 버렸어요.

 그 후에 준영이에게 불행이 닥쳐왔어요. 준영이는 두꺼비가 없어져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예전처럼 똥을 시원하게 못 눴어요. 다음으로는 학원을 하나 더 다녀야 했어요. 세 번째로는 아빠 일이 더 많아져서 아빠 얼굴을 보기가 더 어려워졌어요. 마지막으로 엄마가 이사를 한다고 했어요. 이사를 하면 두꺼비를 다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준영이는 거듭된 불행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침에 학교로 가는 대신 놀이터로 향했어요. 한적한 곳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집으로 돌아왔는데, 일찍 온 엄마한테 학교에 안 간 걸 들키고 말았어요. 준영이는 엄마한테 무엇 때문에 힘들고 속상했는지를 말했어요. 엄마는 힘든 시간을 보낸 준영이를 이해해줬어요. 그리고 오늘은 같이 휴가를 보내자고 했어요. 내일부터 더 열심히 살기 위해 하루를 쉬는 일이 휴가라며. 연이은 불행들로 인해 약해진 마음을 다독이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휴가가 준영이한테는 꼭 필요했어요.

*윗 글은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한 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같이 쓴 글입니다. 

*아이들의 책읽는 힘, 글쓰는 힘, 말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책힘글힘"

https://withseomong.tistory.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갱 아저씨의 염소 파랑새 그림책 95
알퐁스 도데 글, 에릭 바튀 그림, 강희진 옮김 / 파랑새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퐁스 도데의 〈스갱 씨의 염소〉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초등학교 새내기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 진지하게 토론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스갱 씨의 염소〉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염소가 축사에서 도망쳐 산으로 갔다가 늑대에게 잡아먹힌다는 얘기입니다. 염소는 스갱씨가 주는 적당한 먹이, 적당한 애정, 적당한 안전을 뒤로 하고, 울타리를 뛰쳐나가 동경 해오던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풀과 꽃, 새로운 친구들, 첫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다 해질녁 귀가를 알리는 나팔소리에 잠깐 고민하다 산에 머물기를 택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선택에는 늑대라는 치명적 위험이라는 대가가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선배 염소를 떠올리며 늑대와 일전을 벌이다 늑대의 만찬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과 나누었던 큰물음은 일단 집을 뛰쳐나온 염소씨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할까요?’입니다. 염소씨는 처음부터 집을 나오지 말았어야 할까요? 아니면 모든 걸 잃더라도 자신의 자유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까요? 지루한 안전과 위험한 자유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할까요? 그리고 염소씨의 선택과 죽음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상대를 얕잡아 보고 위험을 과소평가한 무모한 죽음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종과 역량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용감한 죽음일까요?

소설의 끝에 쓰인 “그러다가 아침에 늑대가 잡아먹었다고”라는 문장을 두고 볼 때 이 이야기는 막연한 자유를 위해 현실적인 안정된 삶을 간과하는 가상의 가난한 문인 친구한테 들려주는 핀잔이나 잔소리 같기도 하지만, 이 글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라는 물음을 영구토록 던져줍니다. 자유 없는 안전과 안전 없는 자유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질 때 반복적이고 따분하지만 안정된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부담이 있지만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유를 추구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님에도 현실적 안정에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여기서 앞서 나온 큰물음을 ‘염소씨는 바보인가 영웅인가?’라는 물음으로 다시 물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좀 더 생각을 우려보면, 염소씨의 일탈이 막연한 유혹에 이끌려 순간의 객기로 생명을 잃은 위험한 가출로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목줄과 울타리라는 세속의 구속을 뒤로하고 온전히 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긴 출가로 볼 여지도 있을 듯 합니다.

*아이들의 책읽는 힘, 글쓰는 힘, 말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책힘글힘" 글숲지기입니다.

withseomong.tistory.com 를 방문해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의 화가 한생곤의 노란버스
한생곤 글, 그림 / 하늘숲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며 그 사람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 사람이 한 권의 책인 경우가 그렇다. 책을 읽은 지 좀 흘러 가뭇하지만 반가움과 아쉬움에 몇 줄 어기적 거려본다.

책에 수록된 그의 그림은 이제껏 본 어떤 그림보다 더욱 마음을 훔친다. 떼를 써서라도 한 점 얻고 싶다. 걔 중 특히 <아버지의 등>에 마음이 머문다.

<아버지의 등>은 나이가 차서야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세월과 땀에 대한 깨달음이 화폭에 옮겨졌다. 피를 뽑기 싫어 도망치듯 놀고 오는 길에 처음으로 그는 아버지의 노동을 본다.

“아버지 혼자 피를 뽑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벼들이 가득 찬 논에 아버지는 하얀 모자를 쓰고 계셨고, 피를 뽑으실 때는 허리를 숙이셨다. 그 연초록생의 벼들 속으로 허리를 숙이시면 아버지의 등이 꼭 거북이 등처럼 둥글게 선을 그었고 다시 일어서시면 하얀 모자와 상반신이 논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한 번은 논 속에 숨고 다시 한 번은 논에서 나타나는 그 모습을, 그 리듬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했다. 그 단순한 아버지의 삶의 리듬을 느꼈다. 그때에서야 겨우.

. 그렇구나. 아버지는 평생 저 일만 하셨을 뿐이야. 논에 있는 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피뽑기. ...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모든 잔소리들은 저 벼들을 보호하기 위한 피 뽑기 같은 것이 있어. 일찍 일어나라, 공부해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시는 모든 잔소리는 모두 저거였어. 내가 꾀를 부리느라 도망친 저 논에서 아버지께서 묵묵히 하신 노동은 저거였어. 저거야. 바로 저거야.”

그의 글과 그림에는 삶에 대한 애잔한 깨달음과 감사 그리고 따뜻함이 베어 있다. 글을 읽다보면 논문을 쓰는데 왜 7년이 넘게 걸렸는지도 이해가 되고, 버스 한 대를 집삼아 10년을 떠도는 것도 그러고도 남을만해 보인다. 그의 종교는 “그림자 벗을 삼아 걷는 이 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지만 마음의 님을 따라 가고 있는 나의 길은 꿈으로 이어진 영원한 길”. 그에게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것은 공책空冊을 끼고 산다는 것이다.” 공책이란 ‘빈’ 책이기에, 화가는 자신의 운명을 빈 책에 둔다. 전제는 없다. 다만 “걸어가는 바로 그것이 길인 삶.” 그는 구도의 길을 걷는 행려승에 다름 아니다. 아름다운 분이다.

다만 한 가지 그의 글에서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는 한가함을 사랑하기에 돈이 아닌 시간을 택하는 삶을 산다는 대목이다.

“시간과 돈에 대한 태도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시간이 없다.”

나는 그의 태도를 존중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이 경우에 어떻게 된 걸까.... 비본질적인데 시간을 쓰지 않기에 그는 한가하다고 하지만... 본질적인데 시간을 쓰는 경우라면? 게다가 그렇기에 돈 또한 매개가 되지 않는다면? 그의 한가함이 부럽지만 나로선 살짝 부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그리는 아이는 없다.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문장과 같다.

그림은 사랑이다.

그래서 꼬치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그림이다.

내 그림이 꽃이길 열매이길

사랑이길 기도한다.


한생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늘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한 소년을 떠올렸다. 만난지 일 년이 넘었건만 얼마 전에야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둠을 덮어쓰듯 늘 모자로 가리고 다녔는데, 올해 들어 환하게 웃는 모습과 밝은 목소리를 자주 보게 된다. 그 아이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한생곤에 따르면 아이는 사랑이 너무 많은 거다. 절판된 이 책을 그 아이에게 주었다. 그 아이는 노란 버스를 어떻게 탈까. 한생곤과는 어떤 얘기를 나누게 될까....

중고로 구한 이 책 안에는 그의 이름과 번호가 적혀있다. 011 *** 9021

그가 직접 선물해준 책인 것 같아 왠지 기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
김훈태 지음 / 북노마드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네 편지를 이제 받았어.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렇게라도 읽게 돼서 다행인지 몰라. 좀 부럽더라. 왜냐면 난 서른을 너 마냥 알뜰하게(?) 고민을 못한 것 같거든. 그리고 그 고민들을 미뤄 버렸던 것 같아. 네 편지를 뒤늦게야 챙기게 된 것도 그 때문인지도...그렇지만 즐거웠어. 네 옆을 쫄랑쫄랑 따라다니듯 편지를 읽어 내렸어. 그리고 이렇게 너의 어투를 따라 편지를 쓰고 있어.


 교토에 머물게 된다면 나 역시 우선 자전거를 하나 빌릴 거 같아. 그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가모가와를 따라 해지는 쪽을 향해 네가 지났던 길을 달려 갈거야. 그러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아무데나 자전거를 엎어두고 가만히 흐르는 강과 정적에서 숨을 고를 거야. 유라쿠소 게스트 하우스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숙소는 위켄더스가 가까운 쪽에 얻고 싶어. 교토엔 절이 넘쳐나니 어디서나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난 미셸스보다 위켄더스의 큼직한 테이블과 너무나도 폭신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맘에 들거든. 그리고 매일 오전 거기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어. 근데 한 가지 난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 다른 차 종류도 메뉴에 있겠지? 그래서 말야 난 커피 순례가 아닌 우동 순례를 하게 될 것 같아. 마치 영화 우동을 찍듯이 교토의 우동집은 다 섭렵 할지도 몰라. 우동을 무지 좋아하거든. 그래서 네가 소개해 준 ‘오멘’은 교토에 도착한 첫날부터 찾아 갈거고

 철학자의 길은 매일 거닐어도 좋을 것 같아. 네가 170cm 벚꽃나무를 강조한 게 좀 걸리긴 해. 그치만 난 다소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낮은 가지들에 겸손하게 몸을 낮출 준비가 되어 있어. 좀 지친다 싶으면 가모가와 상류로 가서 가모가와에 발을 넣고 물장구를 칠거야.  그러다 다시 호젓하게 숲길을 걸을 테야. 엔라쿠지로 가는 히에에잔은 나의 성지가 될 것 같아.


 오타와 폭포에 가서는 나도 너처럼 욕심을 부릴 것 같아. 세 물줄기 모두 받아먹으려고 긴 바가지를 이리 저리 휘젓겠지. 그리고 물통 세 개를 미리 준비해가 각각 넘치도록 채워서 뿌듯하게 품고 내려올지도 몰라. 건강, 부, 사랑. 어디나 사람들은 참 상투적으로 너무 닮지 않았나 해. 어쩌면 일본인과 한국인이 너무 닮은 건지도. 한국인들이 용한 곳이나, 교회나 절에 가서 비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


 감동이었어. 꽃이 시들지 않는 윤동주 시비. 도시샤대학 외진 구석 시비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 있다니. 게다가 너도 그곳에 꽃을 들고 찾아가다니. 난 요즈음엔 ‘시의 힘’이라던가 ‘정신의 힘’에 대해 그다지 믿지 못하게 되었거든. 그리고 고독이란 게 꼭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우토로. 솔직히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어. 그런데 넌 거길 찾아갈 용기를 냈던거구나. “언제나 힘을 내십시오.” 넌 어설퍼 했지만, 나 역시 달리 적절한 말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것 같아. 다행히도 주민회가 재작년 2011년까지 우토로 마을부지 1/3까지 확보 했나봐. 기나긴 시련과 싸움 끝에 마음을 좀 놓을 수 있게 되셨나봐. 그런데 아직 상하수도 시설은 정비가 안 됬다고 해. 지금까지는 팔짱을 끼고 방관하던 일본정부도 웬일로 나서서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과 협의회를 꾸린다고 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면 좋을 텐데.


 네가 일본에 대해 가진 반감과 이질감, 석연찮은 느낌 못지않게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속으로 스며든 너를 발견해. 그래서 넌 일본인이 아닌 듯 영어를 쓰거나 여행지도를 보이도록 다니며 꼭 티를 냈어야 했던 건지도 몰라. 너만 일본인으로 보이는 거는 아닐 거야. 나 역시도 그럴 것 같아. 일본인이 몇 번 씩이나 길을 물어 오면 어떻게하지?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일본은 더 가까운 지도 몰라. 그건 역사 아래로 이어져 내려온 어떤 생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과거를 대하듯 멀면서도 가깝게 일본을 여기는 지도 모르겠어. 나도 교토에 가려해. 언제가 될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곳 구다라, 아스카, 야마토, 나라의 땅을 밟으며 옛 백제의 흔적을 둘러보고 싶거든. 한 동안 여행을 간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 여행을 생각할 기력도 없을 만큼 지쳐있었는데, 네 편지 덕분에 두 발로 다니며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어졌어. 오랜만에 편지를 쓰기도 해. 아리가또.

 

 안녕!

 

 어느 길에선가 다시 만나길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