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간달프 > [장하준] 주류경제학 뒤에 숨겨진 ‘위선’- 미국식 아닌 ‘한국식 경제모델’을 추구해야

주류경제학 뒤에 숨겨진 ‘위선’- 미국식 아닌 ‘한국식 경제모델’을 추구해야
인터뷰/ ‘뮈르달 상’ 수상한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이종태 jtlee@digitalmal.com

 

미국은 철저한 보호무역국가였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주장해 온 것, 즉 세계경제는 자유로운 시장 덕분에 발전해 왔다는 주장을 뒤집어 놓은 책인 것 같다. 세계경제사에 대한 재해석이랄까.
“현재의 세계화론을 보면 이상으로 삼는 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까지의 고전적 자유경제시대다.그러나 사실 당시의 자유란 것은 결국 선진국의, 그것도 가진 자의 자유였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폭압적인 시대였다. 이 책에서 나는 이 같은 시대를 미화하는 부분을 지적하려고 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절대 그 시대가 잘못된 역사라는 것을 얘기하지 않는다. 선진국이 발전한 이유가 자유무역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깨보려는 것이 집필의도였다.”
-책을 보면 공식적 역사 속에 숨겨진 역사, 또는 숨겨진 학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부분을 재발굴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독일에서 발명한 것으로 아는 ‘유치산업 이론’(후진국 정부는 관세?보조금?쿼터 등으로 선진국에 비해 ‘유캄한 자국의 신흥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학문적으로 정형화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미국인들도 잘 모른다. 10달러 지폐에서 매일 보는 사람인데 말이다. 해밀턴은 미국의 발전기에 당시 선진국인 영국 경제를 추격하는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이다. 이밖에도 미국의 경우 19세기 유명한 경제학자들은 거의 다 보호무역주의자이고 제도경제학자였다. 그러나 현재 주류경제학계에서 이들의 역사는 언급도 되지 않는다.”
-나온 김에 미국 얘기를 좀더 해보자. 책 내용을 보면 남북전쟁부터 2차세계대전 까지는 미국이 가장 강한 보호무역주의국가였다고 나와있다.
“미국은 당시 공산품 관세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았다. 그때 아담 스미스, 장 바티스트 세이 등 유럽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전부 ‘땅 넓고 농업자원 풍부하니까 미국은 농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선진국들이 후진국들한테 하는 소리와 흡사하다. 그런데 해밀턴이 등장해서 ‘미국은 자유무역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변했다. 해밀턴은 생전에 자신의 주장이 완전히 관철되는 것을 못 봤지만, 결국 미국은 1830년대부터 완전히 그의 정책기조로 나갔다. 링컨도 당시에 가장 열렬하게 유치산업 보호론을 주장한 정치인 중 하나였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관세를 종전의 두 배로 올려버렸다. 링컨의 경제보좌관 중 하나인 헨리 캐리는 당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경제학자였지만 지금 헨리 캐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류경제학자들이 미국 보호무역의 역사를 ‘어두운 과거’라고 묻어버렸기 때문에 해밀턴과 더불어 캐리 역시 잊혀져버린 것이다. 미국 시민전쟁(남북전쟁)은 두 가지 문제, 즉 노예와 관세 때문에 터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관세문제가 더 직접적인 원인이다.”

   
발전기에 자유무역 거부한 국가만 성공

-영국은 어땠나. 처음부터 자유무역으로 발전한 나라였나.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찌보면 미국보다 더한 역사왜곡이 거기 숨어 있다. 영국이야말로 보호무역의 원조격이다. 14, 15세기 무렵 유럽의 산업중심지는 네덜란드,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이었고, 영국은 유럽의 변두리였다. 그 당시 소위 ‘하이테크산업’은 모직공업이었다. 영국은 양 키워서 양털을 수출하는 원료수출국이었다. 에드워드 3세, 헨리 7세 등 영국 왕들은 원료공급국의 위치를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직물 분야를 장려하기 위해 보호관세를 매기고 외국에서 기술자를 정부 돈 주고 초빙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특히 1721년엔 영국 최초의 수상이라는 로버트 월폴이 무역정책을 개혁했는데 그것은 1960~1970년대의 한국이나 일본이 썼던 정책과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수출장려를 위해서 많이 쓰던 제도 중 하나가 수출원료관세환급이라는 제도였다. 원료를 수입하면 관세가 붙는데, 그 원료로 제품을 만들어 다시 수출하면 처음에 냈던 관세를 돌려주는 거다. 물론 국내시장에 제품을 팔면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수출을 장려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제도를 일본이 만든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미 17, 18세기에 영국에서 월폴이 그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던 것이다.”
-결국 지금 말씀하신 게 책의 내용이라면 이른바 자유시장이 경제질서의 시금석처럼 된 ‘지금, 여기’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그렇다. 말하자면 자유시장이라는 게 선진국들의 이데올로기다.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 나라는 발전을 못하고, 미국이나 독일처럼 무조건적인 자유무역을 강력히 거부한 나라는 성공했다.”
-개발도상국들이 자유무역으로 훨씬 불리해졌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는가.
“경제성장률을 봐도 후진국들은 1960~1980년대에 보호무역을 주된 무기로 산업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가 득세, 각종 투자협정, WTO, 지역 FTA 등이 등장하면서 자국 경제를 보호할 만한 수단이 줄어들었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옛날의 수입대체공업화’가 실패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편집자 주 : 수입대체공업화란 수입품을 대체하는 산업을 국내에 육성해서 공업화를 달성하려는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전략으로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수단 등을 통해 국내 공산품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 그러나 실제로 경제성장률을 보면 당시 후진국 평균성장률은 3%대였다. 이 후진국들이 1980년대 이후엔 규제를 풀고 개방을 하게 되는데, 평균성장률을 보면 1.5%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인도나 중국같이 완전히 시장개방하지 않은 나라들이 ‘선방’해서 그 정도다. 예를 들어 남미를 봐라. 수입대체공업화가 실패했다면서 자유화하고 개방?탈규제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이 0.6%에 불과하다. 남미는 과거에 3%씩 성장했는데 말이다.”


한국은 아직 완전자유시장 도입하기 일러


-한국도 수입대체공업화를 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이야말로 영국, 미국 등 유치산업보호국가의 법통을 잇는 나라다. 사실 독일은 1830년대에 관세동맹을 했지만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고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으로 산업화가 왜곡되기도 했다. 영국, 미국처럼 깔끔하게 유치산업보호론으로 산업화된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영국, 미국 이후에 일본, 한국인 것이다. 한국이 처음에 포항제철 지으려고 돈 꾸러 다니니까 세계은행에서 미쳤다고 욕했다. 그리고 자동차 한다고 그러니까 세계에서 ‘돌았다’고 그랬다. 조선산업도 마찬가지다. 당시로 보면 말도 안되는 산업들만 한 것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물론 국민들의 피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어쨌든 한국은 유치산업보호론을 통한 발전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대체적인 경제발전 패턴이 발전기에는 보호주의를 채택하다가 일정 수준이 되면 자유주의를 채택하는 것 같다. 한국의 경우는 옛날의 보호주의를 벗어 던지고 이제 자유주의로 가야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보나. 한국이 자유주의해도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위치에 왔다고 보는가.
“나는 아직 그 위치까지 왔다고는 보지 않는다. 겨우 진입하려고 하는 상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본과 자유무역협정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나라인가. 우리나라는 일본에 적게는 20년, 크게는 40년 뒤져 있다. 물론 반도체처럼 1등하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선진국은 아직 멀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1960년대 초에 아프리카 가나가 우리보다 1인당 소득이 50%나 높았다. 그때 가나가 1백28달러고 우리나라가 82달러였다. 미국의 해밀턴이 그랬듯이 그런 나라를 현재처럼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짠 게 박정희 정권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인권탄압 등 나쁜 짓도 무수히 했다. 내 이야기는 다른 나라들은 성장도 못하고 인권도 보장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한국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보는 박정희 찬양론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 주장들은 사실 역사의식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할아버지들이 기차가 늦게 오면 ‘무솔리니 때는 기차가 딱딱 정시에 왔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웃음). 지금 박정희의 샴쌍둥이를 찾는다면 ‘옛날 것을 싹 쓸어버리고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서 우리도 미국식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역사의식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빛 좋은 개살구’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지구적 규범)는 무역과 자본을 가리지 않는 자유화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엔 지구적, 세계적이란 뜻이 있는데, 과연 그만큼 보편적인가.
“그게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내세워지는 것들 중엔 영미식, 특히 미국식 제도가 많다. 미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니까, 그게 마치 선진국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글로벌 스탠더드로 따지면) 한국 기업들은 (1997년 이전엔) 부채가 많다고 공격받았지만,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기준이지만,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모두 다 우리보다 기업 부채비율이 높았고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우리나라랑 비슷했다. 부채비율 낮은 게 좋다면, 멕시코, 브라질은 미국보다 낮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들이 선진국인가. 공기업 민영화만 해도 그렇다. 오스트리아, 프랑스에는 공기업들이 수두룩하다. 노르웨이, 핀란드도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다. 삼성 자동차가 르노에 팔린 것이 ‘시장주의의 승리’라며 좋아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르노라는 회사는 1996년까지 완전 공기업이었고 삼성을 살 때까지만 해도 주식의 44%를 정부가 갖고 있는 사실상 공기업이었다. 따라서 삼성을 르노한테 팔면 그건 민영화가 아니라 ‘국영화’다. 다른 나라 국영화라서 그렇지(웃음).”
-미국의 경제규범을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셈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가 상대적으로 산업정책을 만들지 않으니까 정부개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정부들은 사실 상당히 개입하고 있다. 연방정부도 연구개발지원(R&D)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개입주의적이다. 전체 R&D 비용의 60~70%를 연방정부에서 낸다. 국가 주도 경제라는 일본이나 한국도 20% 정도에 머무는 것을 볼 때 엄청난 규모다. 그런데 미국은 밖에 나가서 ‘이건 산업정책이 아니라 그냥 연구개발지원이다’라고 말한다. 그걸 우리나라는 순진하게 믿는 거다. 미국이 말하는 것을 글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로 가자면서 미국도 제대로 못 배우고 있다. 미국식이냐 북유럽식이냐 혹은 보호주의냐 자유주의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모델을 만드는 게 먼저다.”


국민과 재벌 간의 ‘대타협’이 필요하다


-요즘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일부 대기업은 오히려 수익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모두 ‘경기가 좋지 않아 죽겠다’고 하고, 실업난은 개선 기미가 없고, 금융시장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업 수익률만 괜찮다는 것은 참 이상하다. 이 같은 현상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관련되어 있는가.
“많은 기업들이 망했고 반면 살아남은 기업들은 예전보다 이윤을 많이 내는데 그게 국민경제에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고 경영권이 불안하니까 그걸 방어하느라 급급하다. 외국인 주주비율 높아지면서 배당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상당한 압력이다. 물론 그 외국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외국인 주주들이 사는) 나라들은 고령화 사회이기 때문에 금융투자를 해서 고배당을 받아내는 게 적합한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투자하고 성장해야 하는 나라인데, 그 배당에 맞추려다 보니까 배당액은 옛날보다 3, 4배 늘어났다. 투자는 옛날의 1/3밖에 안 되고. 그러니까 일자리는 안 생기고 청년 실업문제가 터지는 것이다. 지금 잘나가는 기업들은 투자는 않고 금융에만 열을 올린다.”
-최근 엘지카드 사태로 보면 책임에서 대안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많다. 어떻게 보나.
“엘지의 경우 오너측에게 ‘주식으로 담보로 잡고 출자를 더 하라’고 했지만 사실 그건 주주자본주의원리에 맞는 것도 아니다. 주주자본주의는 유한책임제니까 회사가 잘못되면 자기가 잃은 돈만 털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재벌들은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되냐’고 반발한다. 기본적으로 영미식 시스템으로 가면서 경제활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고육지책으로 갔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의 금융정책은 장기적으로 지탱될 수 없는 정책이다.”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하나의 대안으로 ‘대타협’을 말한 적이 있다 올들어 한국에서는 노동자를 비롯해서 굉장히 많은 이익집단들이 나섰고 충돌도 많았다. 만일 국민과 재벌들이 대타협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적인 타협이 필요하다. 재벌을 통제하겠다는 과정에서 생각해낸 방법이 주식시장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경제단계에 맞지 않는 배당정책, 투자정책을 써야 했다. 그 상황을 풀어줘야 하는데, 그동안 국민들의 희생으로 성장한 재벌들이 거만하게 굴어왔기 때문에 국민감정상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재벌이 고사하면 가장 큰 피해는 국민이 본다. 지금은 거꾸로 가서 기업들 법인세를 깎아준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북유럽처럼 기업들에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해서 복지정책을 확대시키고 노조도 확실히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신 국민들은 재벌들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식으로 타협할 수 있다.”


대안적 세계화를 고민하자


-대안적인 세계화포럼을 만드신다고 들었는데 여기에 대해 말해 달라.
“아직은 가칭인데 ‘세계화와 개발 포럼(globalization & development forum)'이 그 명칭이다. 세계화 속에서 후진국 문제를 바라보자는 포럼이다. 현재 세계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아젠다를 짜보자는 것이다. 인도 델리대학 디팍 나이야 총장과 내가 공동의장이다. 우리는 다보스 포럼이나 세계사회포럼처럼 끼리끼리 모이는 게 아니라 기업인, NGO, 정부, 노동계, 학계 등 여러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모아보려 한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출발해서 한해 한해 유기적으로 키워나갈 생각이다. 현재 내락받은 참여인사들 중에는 전 아일랜드 대통령인 메리 로빈슨 여사 등이 있고 스티글리츠 교수와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끝으로 세계화와 관련해서 우리가 가야 될 방향을 제시한다면.
“1964년 일본이 OECD가입하면서 자본시장을 개방하게 됐다. 당시에 미국 제네럴모터스 자동차회사 하나가 일본의 10개 자동차회사 모두 합친 것보다 규모가 컸다. 그래서 ‘열면 다 잡아먹힌다’는 위기의식이 일본 내에 팽배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관련기업들이 서로 우호지분을 확보해 줬다. 주거래은행이 3% 정도 사주고, 보험회사가 2% 사주고 하는 식으로 각 기업들이 50% 내지 60% 정도의 우호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그래서 막상 자본시장이 열린 뒤 미국이 이걸 다 잡아먹어야겠다고 들어왔지만 아무리 사모아도 일본기업들을 인수할 수가 없었다. 적게는 50% 많게는 70%의 주식이 살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회사금고에 주식을 넣고 잠가버렸으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요즘에야 다른 방어기제가 많지만 개방 초기에는 이 방법이 없었으면 도저히 방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기존의 틀 속에서도 뜻이 있으면 돌파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교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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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이종태 기자 jtlee@digitalmal.com
정리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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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리포트도 구별 못하는 대학생
“일요일 저녁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여. 교수님께 미리 말씀 드리려고 했지만 연락처를 몰라서여.”
지방 ㅎ대에 근무하는 이모(여. 42) 교수는 지난 해 한 학생의 결석 사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학생이 담당 교수에게 제출한 문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어체로 쓰여졌고 ‘~여’라는 말이 마치 표준어인양 남발되고 있었다.

이교수는 “나중에 이런 식의 말투가 인터넷 게시판 글 형식에서 나온 걸 알았다”며 “대학생이 게시판 글과 교수에게 제출하는 문서도 구분 못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대학생들은 글을 쓸 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분이 매우 모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의 리포트, 대자보, 대학 매체 기사 등을 수집해 점검한 결과 그 글의 용도에 부적합한 내용이나 어구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의 글을 분석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맞춤법, 띄어쓰기, 적합한 어휘의 사용 여부 등을 차치하더라도 ▲어휘 선택에서 문어체와 구어체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학문적 글쓰기와 개인적 글쓰기가 섞여 있는 등 글쓰기 기초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난 요즘 불안하다. 26세의 젊은이로서 나의 앞날이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많은 선택과 기회 앞에서 나의 꿈을 향한 밑그림에 확실성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나의 의지, 자신감을 믿는다 해도···. (이하 생략)

이 글은 일기장의 한 토막이 아니다. 한 대학생이 지난해 사회과학 수업과제로 제출한 서평의 머릿말이다. 구어체를 쓰지는 않았지만 책 내용과 상관없는 자기 이야기를 늘어 놓아 전체 글 흐름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래 글은 더 심각하다.

기차를 타고 갈려고 예약했는데 마침 교수님이 차를 타고 간다고 해서 얼른 차에 타서 가기로 했고 기차는 당연히 취소를 시켰지요. 가는 동안에 휴게소에 들려서 맛있는 것도 먹고 우리는 ㄱ 극장으로 향하였답니다. 교수님의 차를 얻어타고 가서 그런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태원에서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고 ㄱ 극장에 가서 ㅇ 교수님과 인사도 하고 이제 공연장에 들어가서 막이 오르기만을 기대했지요.

ㄴ대학 한 학생이 오페라 감상문으로 제출한 리포트의 일부이다. 이 리포트에는 ‘없었어여’, ‘열려문(열녀문, 烈女門)’, ‘날리(난리, 亂離)’ 등 소리 나는 대로 쓰거나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많았다. 같은 수업의 또 다른 리포트에는 막이 오르기 전까지 극장 풍경을 모두 4쪽 중 2쪽에 걸쳐 묘사해 놓기도 했다.

리포트 형식 중 가장 중요한 주석 달기에서도 주석을 왜 달아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OOO 검색 백과사전’, ‘OO일보 사이트’ 라고 쓴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학문적 논거가 되어야 할 주석에 ‘나찌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홈페이지’, ‘http://www.*****.pe.kr/윤리학습/나/냉전.html’처럼 검증되지 않은 개인 홈페이지 주소를 주석으로 달아 놓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대자보
학생회나 동아리들에서 즐겨 쓰는 대자보의 경우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목적인데도 쓸데없는 겹문장이나 현학적인 단어를 써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시는 극도의 보안 속에 이라크를 방문하며 벌인 깜짝쇼는, 지금까지 현직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던 전쟁은 모두 미국의 침략 의도가 실패로 돌아갔던 전쟁이라는 점에서, 지금 부시가 얼마나 위급해 있는가를 반영하고 있다. (ㅅ 대학 대자보 중 일부)

이 글의 뜻을 살려 바르게 고치면 다음과 같다. ‘부시는 철저한 보안 속에 이라크를 방문하는 깜짝쇼를 벌였다. 미국의 침략이 실패로 돌아가기 직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상대국 현지를 방문했던 전례가 있었다. 이로 볼 때 부시의 이라크 방문은 부시가 얼마나 위급에 처해있는가를 반영하고 있다.’ 세 문장에 담아야 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쓰려다 읽는 것조차 힘들게 됐다.

몇 년 동안 계속된 각 선본의 여성운동단위들의 비판 덕분인지 선거 시기에 ‘여성주의 학생회’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정책들에 있어서도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여성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동의기반이 적어도 학생운동권 안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잡거나 강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왔다.(같은 학교 대자보 중 일부)

‘학생회 선거를 통해 ‘여성주의’라는 주제가 자주 언급되는 등 여성주의운동의 틀이 잡혀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문장이 너무 길고 모호한 단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 국립국어연구원 김문오 학예연구사는 두 문장에 대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글을 쓸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실수”라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의 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오류 중 하나로 말줄임표의 남발을 들 수 있다. 모든 종류의 글을 망라하고 말줄임표를 마침표나 쉼표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데……’ 식으로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 않은 표기도 많았다.

~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지인들(조원들을 포함하는…)과 ~ ~ 이 같은 방법이 나름대로(비록 주관적인 것일지라도…) 합리적일 수 있다.
파병에 반대한답시고 주절대는 내가…군인이었을 때 ~ 그는 군대에서는 개념을 상실한 놈이다. 그것도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김 학예연구사는 이런 습관에 대해 “멋으로 이런 식의 표현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올바른 의사 전달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글에 독자가 마음대로 생각할 여지를 두는 것은 바른 글쓰기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남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임재춘 객원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글에 대한 외경심이 부족하다. 특히 객관적인 언어를 사용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교수는 “이공계의 경우 우리말 글쓰기를 경시하는 풍조까지 있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단법인 한국언어문화연구원이 지난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어 능력 인증 시험’의 분석 자료를 보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억 가운데 쓰기 영역의 성적이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다. 쓰기 문제에 대한 정답률이 평균 68%, 각종 어문 규정에 대한 문제는 정답률이 60% 정도이다. 이는 다른 영역 정답률이 75%를 상회하는 것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서울교대 원진숙 교수(국어교육)는 지난해 열린 ‘국민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한 학술회의’에서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적으로 글을 쓸 때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자기 중심성을 나타내고 있다”라며 “글쓰기가 차지하는 문화적인 비중을 고려할 때 평생 교육 차원에서 국민의 글쓰기 능력을 신장할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제 리포트 좀 봐주세요” - 서울대 글쓰기 교실
국내 최고 수재들이 모인다는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글쓰기를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 4월 교수학습개발센터 산하에 글쓰기 교실을 개설, 서울대 재학생들의 리포트나 졸업논문에 대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쓴 글을 면담 이틀 전 상담조교에게 보내 ‘첨삭 지도’를 받는다. 상담 조교들은 별도의 평가서까지 작성해줄 정도로 꼼꼼하게 리포트를 점검한다.

‘글쓰기 교실’은 학생들의 글에 나타나는 문제점으로 △주제를 지나치게 넓게 잡는 점 △도서관에서 찾은 책을 논거로 쓰지 않고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는 점 △단락의 구분이 모호한 점 △구어체를 사용하는 점들을 꼽았다.

현재까지 상담건수는 300여 건. 설문 자료에 따르면 이 곳을 거쳐간 학생들 90% 이상이 “상담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상담조교 김지희(독문학 박사과정 수료)씨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남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은 학생들의 글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만큼 더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처 : 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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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빠기 2004-02-0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rd나무님의 코멘트

이 기자는 서평에 개인적 이야기가 들어 갔다고 난리인데, 정확한 보고서가 아닌 이상 개인적 이야기라도 책 내용과 관련이 있으면 오히려 글에 참신성 또는 독창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이 기자는 '서평'이란 무조건 책 내부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전문서평들이 책 외부에서 전개를 해 나가다가 서서히 책 내부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위의 글은 진짜 일기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책 내용과 상관있을지 없을지는 뒤의 문맥,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는것 아닌가?

부빠기 2004-02-0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쉼표와, 현학적 표현, 모호한 표현이 문제라고 하는데, 솔직히 읽을 때 쉼표를 제대로 지켜주며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쉼표가 아무리 많아 봤자, 실제로 읽으며 잠시 숨을 돌리고, 쉼표가 나타나는 순간은 다음 문장이 이어지기 전에 전 문장의 내용을 잠시 되새김하며 읽으면 전혀 복잡할 것도 없고 헷갈릴 것도 없다. 그저 속독법에 미친 실태가 쉼표는 그저 문장의 악세서리 정도로 만들어 버린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리고 현학적 표현과 모호한 표현들의 문제. 웃기다. 실제로 현학적 표현과 거의 이해불가능 할만한 문장 구성을 자아내는 것은 이른바 배웠다는 지식인과, 대학교수들이 제일 심하다. 읽고 있으면 짜증이 날만큼 아는체 하려는 태도에 신물이 날 정도다. 이른바 '배웠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자기네들이 조성해 놓고, 자기 밑에서 자라나는 대학생들의 표현능력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앞뒤가 틀리지 않았는가? 먼저, 지식인들 대학교수들 보고 글이나 똑바로, 제대로, 알기쉽게 적어라고 지적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생각도 없으면서 괜히 어려운 표현과 구성으로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말이다.
 

Adolphe Alexandre Lesrel (French), Captivated

이제는 책읽는 여인 그림을 투고해주시는 분까지! 영희님 멋진 그림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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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달팽이 > 신비로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함이다. 그것은 모든 예술과 과학의 근원이다. 이런 감정을 모르고 살면서 경이로움에 발길을 멈추지 못하고, 경외감에 빠져 우두커니 서 있을줄 모르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눈은 감겨 있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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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간달프 > 김기봉 - 시대착오적 역사해석에서 탈피하라

"시대착오적 역사해석에서 탈피하라"

이슈 : 역사전쟁 부르는 '韓中 고구려사 논쟁'에 부쳐

나는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의 고구려를 둘러싼 '역사전쟁'의 일촉즉발의 위기를 지켜보면서, 역사는 과연 인간의 삶을 위해 유용한가 유해한가를 물었던 니체의 문제제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렇게 내가 반시대적 고찰을 하는 이유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역사 찾기 운동'에 학계와 정치계가 가세하여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이 과연 문제해결의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해 회의하기 때문이다.

고구려라는 과거가 현재의 우리와 중국에게 왜 중요한가. 고구려 역사를 둘러 싼 한국과 중국 사이의 역사논쟁의 진의는 과거의 인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권력투쟁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이 물음을 역사적 패배주의가 아니라 역사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현 사태의 위기를 성찰해 볼 목적으로 제기한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해 있는 한국의 역사는 중국사와 일본사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 한국사에서 근대의 기점은 한국사의 결정적인 영향력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런 한국사의 구조가 얼마 전 일어났던 일본 새 역사교과서 파동의 근본원인이다. 이번의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과의 역사분쟁 역시 근대이전 한국사에서 중국이라는 뇌관을 드러내는 예정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전자보다는 후자의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다.

역사에 대한 반시대적 고찰

일본과의 역사청산은 피해의 당사자가 생존해 있는 현재의 문제이지만, 고구려사는 까마득한 고대의 문제다. 따라서 우리는 고구려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대응을 일본 새 역사교과서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요컨대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의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중국학계에 반격을 가하는 것은 결론 없는 소모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러한 소모전의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정치계는 일본 새 역사교과서 파동 때처럼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을 수 있고, 한국사학계는 침체된 고구려사를 일으키는 효과를 바란다. 하지만 중국과 전면적인 역사전쟁을 벌일 때 발생하는 손실은 없는가. 정부는 겉으로는 중국에 강력 대응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모순적인 생각으로 정부가 중국정부와 한국국민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궁극적으로 누가 피해의 당사자가 될 것인가.

우리는 중국과의 전면적인 역사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손익계산부터 해봐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불리하다. 첫째는 고구려 대부분의 유적이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다는 것이고, 둘째 남한에게는 북한이라는 또 다른 한국사의 주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남한 사학계에서 고구려사 연구가 침체된 주 요인은 연구대상의 현장이 북한이고, 또 고구려사는 북한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연구가 기피되었다는 점이다. 국제적인 현실정치에서 북한이 중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고구려사 문제로 남북이 공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연구 인력과 재정에 있어서도 우리는 중국에 비해 열세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주장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나는 우리의 현실적인 대응전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한국사가 일본사와 중국사와 충돌하는 것은 한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보는 기존 한국사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역사를 '국사'로 보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해체이지, 그것의 강화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의 '국사'의 위기를 한국사를 재구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선험적으로 설정하는 '국사'의 해체가 요청된다.

필자가 아는 한, '국사'로 씌어진 종래의 한국사는 근대 이전 한국사에서 중국이란 무엇이며 근대 이후 일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민족을 코드로 해서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결정하는 역사서술이 이런 '국사'를 낳음으로써, 고구려사를 고구려사 자체로 인식하는 것 대신에 한국사인가 중국사인가의 역사주권 싸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현사태를 초래했다. 물론 현사태 발생의 직접적인 책임은 전근대적인 중화사상을 근대적인 중화민족주의로 변용시키는 데 복무하는 중국 역사학에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양의 고대와 중세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아닌 로마제국과 프랑크 왕국이 있었던 것처럼, 고구려의 역사무대는 오늘날의 용어로 동아시아이다. 만약 역사적 비교가 가능하다면, 서양사에서 전근대의 동아시아에 해당하는 것이 유럽이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실체'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발명된 상상의 공동체이다. 헤로도토스에게 유럽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었으며, 보편적 제국으로서 로마의 멸망 이후 유럽이란 그것을 대신하는 기독교세계였다.

17-18세기 구체제 시대에서 유럽은 세력균형의 원리로 묶어지는 왕국들의 총체였으며, 19세기 민족주의 시대에는 국민국가들의 집합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은 민족주의로 고양된 국민국가들 간의 전쟁터였다가, 제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에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유럽공동체의 이념이 재발견됐다. 특히 독일통일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이후 유럽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의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 같은 맥락에서 유럽 각국의 역사학은 '국사' 위주의 근대 역사학을 지양하는 유럽사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기원의 망상에서 탈피해야

서양 중세에서 유럽이 기독교를 토대로 한 보편제국이었다면, 근대 이전 동양의 보편질서는 '중화'이다. 동양 고대에서 고구려 대 수·당의 전쟁은 이러한 중화질서 성립과정의 일환였다. 고구려 멸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전쟁들은 동북아 일대에서 독자적 생존권을 보전하고 패권을 추구했던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질서로 주변의 세력들을 포섭하고자 했던 수· 당의 세계정책의 충돌로 일어났던 동아시아 전쟁이었지, 결코 민족간의 전쟁이 아녔다. 7세기 나당 연합군에게 고구려가 패배했던 것의 결과로 중화질서가 성립했으며, 근대에서 한·중·일의 국민국가의 형성은 이러한 중화질서의 해체를 전제로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한국 언론에 알려지면서 네티즌을 중심으로 "제 2 나당 전쟁, 중국과의 역사전쟁이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담론에서 신라는 한국인가 중국인가. 이렇게 근대의 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의거해서 전근대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우리 삶의 현실은 날로 세계화로 나가고 있는데, 역사를 보는 눈은 아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의 책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그 책임은 없는가.

이제는 민족이라는 기원의 망상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사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동아시아 관점에서의 한국사 재구성이 필요하며,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과의 역사논쟁이 '국사'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는 역사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기봉 / 경기대, 서양사 (교수신문, 200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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