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리포트도 구별 못하는 대학생
“일요일 저녁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여. 교수님께 미리 말씀 드리려고 했지만 연락처를 몰라서여.”
지방 ㅎ대에 근무하는 이모(여. 42) 교수는 지난 해 한 학생의 결석 사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학생이 담당 교수에게 제출한 문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어체로 쓰여졌고 ‘~여’라는 말이 마치 표준어인양 남발되고 있었다.

이교수는 “나중에 이런 식의 말투가 인터넷 게시판 글 형식에서 나온 걸 알았다”며 “대학생이 게시판 글과 교수에게 제출하는 문서도 구분 못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대학생들은 글을 쓸 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분이 매우 모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의 리포트, 대자보, 대학 매체 기사 등을 수집해 점검한 결과 그 글의 용도에 부적합한 내용이나 어구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의 글을 분석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맞춤법, 띄어쓰기, 적합한 어휘의 사용 여부 등을 차치하더라도 ▲어휘 선택에서 문어체와 구어체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학문적 글쓰기와 개인적 글쓰기가 섞여 있는 등 글쓰기 기초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난 요즘 불안하다. 26세의 젊은이로서 나의 앞날이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많은 선택과 기회 앞에서 나의 꿈을 향한 밑그림에 확실성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나의 의지, 자신감을 믿는다 해도···. (이하 생략)

이 글은 일기장의 한 토막이 아니다. 한 대학생이 지난해 사회과학 수업과제로 제출한 서평의 머릿말이다. 구어체를 쓰지는 않았지만 책 내용과 상관없는 자기 이야기를 늘어 놓아 전체 글 흐름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래 글은 더 심각하다.

기차를 타고 갈려고 예약했는데 마침 교수님이 차를 타고 간다고 해서 얼른 차에 타서 가기로 했고 기차는 당연히 취소를 시켰지요. 가는 동안에 휴게소에 들려서 맛있는 것도 먹고 우리는 ㄱ 극장으로 향하였답니다. 교수님의 차를 얻어타고 가서 그런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태원에서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고 ㄱ 극장에 가서 ㅇ 교수님과 인사도 하고 이제 공연장에 들어가서 막이 오르기만을 기대했지요.

ㄴ대학 한 학생이 오페라 감상문으로 제출한 리포트의 일부이다. 이 리포트에는 ‘없었어여’, ‘열려문(열녀문, 烈女門)’, ‘날리(난리, 亂離)’ 등 소리 나는 대로 쓰거나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많았다. 같은 수업의 또 다른 리포트에는 막이 오르기 전까지 극장 풍경을 모두 4쪽 중 2쪽에 걸쳐 묘사해 놓기도 했다.

리포트 형식 중 가장 중요한 주석 달기에서도 주석을 왜 달아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OOO 검색 백과사전’, ‘OO일보 사이트’ 라고 쓴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학문적 논거가 되어야 할 주석에 ‘나찌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홈페이지’, ‘http://www.*****.pe.kr/윤리학습/나/냉전.html’처럼 검증되지 않은 개인 홈페이지 주소를 주석으로 달아 놓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대자보
학생회나 동아리들에서 즐겨 쓰는 대자보의 경우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목적인데도 쓸데없는 겹문장이나 현학적인 단어를 써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시는 극도의 보안 속에 이라크를 방문하며 벌인 깜짝쇼는, 지금까지 현직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던 전쟁은 모두 미국의 침략 의도가 실패로 돌아갔던 전쟁이라는 점에서, 지금 부시가 얼마나 위급해 있는가를 반영하고 있다. (ㅅ 대학 대자보 중 일부)

이 글의 뜻을 살려 바르게 고치면 다음과 같다. ‘부시는 철저한 보안 속에 이라크를 방문하는 깜짝쇼를 벌였다. 미국의 침략이 실패로 돌아가기 직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상대국 현지를 방문했던 전례가 있었다. 이로 볼 때 부시의 이라크 방문은 부시가 얼마나 위급에 처해있는가를 반영하고 있다.’ 세 문장에 담아야 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쓰려다 읽는 것조차 힘들게 됐다.

몇 년 동안 계속된 각 선본의 여성운동단위들의 비판 덕분인지 선거 시기에 ‘여성주의 학생회’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정책들에 있어서도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여성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동의기반이 적어도 학생운동권 안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잡거나 강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왔다.(같은 학교 대자보 중 일부)

‘학생회 선거를 통해 ‘여성주의’라는 주제가 자주 언급되는 등 여성주의운동의 틀이 잡혀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문장이 너무 길고 모호한 단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 국립국어연구원 김문오 학예연구사는 두 문장에 대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글을 쓸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실수”라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의 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오류 중 하나로 말줄임표의 남발을 들 수 있다. 모든 종류의 글을 망라하고 말줄임표를 마침표나 쉼표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데……’ 식으로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 않은 표기도 많았다.

~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지인들(조원들을 포함하는…)과 ~ ~ 이 같은 방법이 나름대로(비록 주관적인 것일지라도…) 합리적일 수 있다.
파병에 반대한답시고 주절대는 내가…군인이었을 때 ~ 그는 군대에서는 개념을 상실한 놈이다. 그것도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김 학예연구사는 이런 습관에 대해 “멋으로 이런 식의 표현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올바른 의사 전달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글에 독자가 마음대로 생각할 여지를 두는 것은 바른 글쓰기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남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임재춘 객원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글에 대한 외경심이 부족하다. 특히 객관적인 언어를 사용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교수는 “이공계의 경우 우리말 글쓰기를 경시하는 풍조까지 있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단법인 한국언어문화연구원이 지난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어 능력 인증 시험’의 분석 자료를 보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억 가운데 쓰기 영역의 성적이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다. 쓰기 문제에 대한 정답률이 평균 68%, 각종 어문 규정에 대한 문제는 정답률이 60% 정도이다. 이는 다른 영역 정답률이 75%를 상회하는 것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서울교대 원진숙 교수(국어교육)는 지난해 열린 ‘국민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한 학술회의’에서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적으로 글을 쓸 때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자기 중심성을 나타내고 있다”라며 “글쓰기가 차지하는 문화적인 비중을 고려할 때 평생 교육 차원에서 국민의 글쓰기 능력을 신장할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제 리포트 좀 봐주세요” - 서울대 글쓰기 교실
국내 최고 수재들이 모인다는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글쓰기를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 4월 교수학습개발센터 산하에 글쓰기 교실을 개설, 서울대 재학생들의 리포트나 졸업논문에 대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쓴 글을 면담 이틀 전 상담조교에게 보내 ‘첨삭 지도’를 받는다. 상담 조교들은 별도의 평가서까지 작성해줄 정도로 꼼꼼하게 리포트를 점검한다.

‘글쓰기 교실’은 학생들의 글에 나타나는 문제점으로 △주제를 지나치게 넓게 잡는 점 △도서관에서 찾은 책을 논거로 쓰지 않고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는 점 △단락의 구분이 모호한 점 △구어체를 사용하는 점들을 꼽았다.

현재까지 상담건수는 300여 건. 설문 자료에 따르면 이 곳을 거쳐간 학생들 90% 이상이 “상담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상담조교 김지희(독문학 박사과정 수료)씨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남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은 학생들의 글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만큼 더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처 : 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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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빠기 2004-02-0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rd나무님의 코멘트

이 기자는 서평에 개인적 이야기가 들어 갔다고 난리인데, 정확한 보고서가 아닌 이상 개인적 이야기라도 책 내용과 관련이 있으면 오히려 글에 참신성 또는 독창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이 기자는 '서평'이란 무조건 책 내부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전문서평들이 책 외부에서 전개를 해 나가다가 서서히 책 내부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위의 글은 진짜 일기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책 내용과 상관있을지 없을지는 뒤의 문맥,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는것 아닌가?

부빠기 2004-02-0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쉼표와, 현학적 표현, 모호한 표현이 문제라고 하는데, 솔직히 읽을 때 쉼표를 제대로 지켜주며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쉼표가 아무리 많아 봤자, 실제로 읽으며 잠시 숨을 돌리고, 쉼표가 나타나는 순간은 다음 문장이 이어지기 전에 전 문장의 내용을 잠시 되새김하며 읽으면 전혀 복잡할 것도 없고 헷갈릴 것도 없다. 그저 속독법에 미친 실태가 쉼표는 그저 문장의 악세서리 정도로 만들어 버린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리고 현학적 표현과 모호한 표현들의 문제. 웃기다. 실제로 현학적 표현과 거의 이해불가능 할만한 문장 구성을 자아내는 것은 이른바 배웠다는 지식인과, 대학교수들이 제일 심하다. 읽고 있으면 짜증이 날만큼 아는체 하려는 태도에 신물이 날 정도다. 이른바 '배웠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자기네들이 조성해 놓고, 자기 밑에서 자라나는 대학생들의 표현능력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앞뒤가 틀리지 않았는가? 먼저, 지식인들 대학교수들 보고 글이나 똑바로, 제대로, 알기쉽게 적어라고 지적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생각도 없으면서 괜히 어려운 표현과 구성으로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