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과 죽음. 

어느날 한 친구가 우리가 문학을 잃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냐고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일단 문학을 얻게 되면 절대 다시 잃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급속하게 늙게 되지 않을까? 물이 빠져나가듯 몸에서 모든 것이 빠져나가고 청력, 시력, 미각을 잃는 것처럼 문학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학을 모르거나 읽지 않은 사람들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죽음에 저항할 수 없다. 

걸작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진지한 문학은 죽음에 대한 강한 저항이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책을 쓸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파도를 뚫고 모래성을 끊임없이 기어오를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을 것이다. 독자로서 죽음에 저항하고자 걸작의 작가들과 연대할 것이다. (220-221)

위고처럼 글 쓰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마법사 같다. 글을 쓰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글을 쓰는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작가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게 아님을 알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기록>에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인 루이 필립의 아들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나폴레옹의 유해를 가져와 앵발리드 궁에 안장하는 장면이 그렇다. 글의 길이나 수준을 보았을 때 이삼일 정도 걸렸을 것이다. 보통 당장 출간될 책이 아니라면, 그리고 보고서용이거나 자신을 위해 쓴 것이라면 그렇게 많은 정성을 쏟지 않는다. 하지만 위고는 문학을 위해 썼다. 이러한 글을 나중에 독자를 만나면 문학이 된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쓰도록 하자.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죽음이 우리를 망가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위고는 문학을 위해 글을 썼다. 다른 것은 몰랐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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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문제예요. 아저씨가 어렸을 적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무언가를 두려워했다면 현재가 이렇게 형편없지는 않을 거예요." <제비뽑기>중에서


셜리 잭슨의 공포는 막상 들었을 때는 별로 무서운 줄 몰랐다가 혼자 있을 때 머리가 쭈볏 서게 하는, 인간을 지켜보는 거울 같은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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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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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챈들러 방식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책이다. 모든 페이지게 밑줄을 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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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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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아름다운 문체를 장편으로 만나는 기쁨. 우리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거미는 자신의 실로서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는 문장은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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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
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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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받아보고, 사전처럼 닳도록 펼쳐보겠다는 느낌이 왔다. 당장 문구점에 가서 비닐을 사와서 정성스럽게 커버를 씌웠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찾아보고, 그 처방전을 따라서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과정이 될 듯하다. 여기 나온 소설이 모두 751권인데, 영미권 저자이다 보니 영미 소설 중심으로 소개되었다. 물론 유럽문학과 제 3세계 문학도 있고, 일본 문학도 있다. 외국 사람들이 아는 일본 작가는 많지 않으니 누군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도 많지만, 안 된 책도 많으니 아마도 751권을 모두 찾아서 읽지는 못한다. 그래도 마음이 든든하다. 


나는 늘 이런 책이 있었으면 했다. 많은 소설을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때때로 어떤 힘든 일을 겪거나 마음이 아플 때 내 맘과 같은 소설을 읽었으면 하고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음악을 찾는 것처럼. 이별을 겪은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이별 노래가 자기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행복한 마음일 때는 밝은 노래가 마음에 쏙 들어온다. 음악처럼 소설에도 우리는 감정을 기대어 살 수 있다. 출판불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고, 소설책 읽는 사람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말로 비난하는 때에 꼭 필요한 말을 해주는 그런 책이다. 우리에게 소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두 여자, 엘라와 수잔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알리고 싶었을 거다.  나는 왜 소설을 좋아하고, 매일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히고 눈에 눈꼽이 끼는 걸까. 책 속에 D.H.로렌스가 했다는 말에서 해답을 찾아보았다.


"사람은 책에 자신의 병을 쏟아버린다. 자신의 감정을 반복해서 겪고 또 그것을 드러내면서 어느새 감정의 주인이 된다." D.H.로런스.


그래, 그 말이 진리여!!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첫 문장에서 책 한 권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남자도 나오지만.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책 한 권으로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관성이 강해서 어떤 자극에도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 다만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소설을 읽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비밀을 들었을 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나에게 딱 맞는 처방을 먼저 찾아봤다.


보살펴야 할 아이가 많을 때


독서 시간을 정하라. 


동화에 등장하는 구두 안에 사는 할머니처럼 사랑해주고 밥을 먹이고 씻겨주어야 할 아이들이 있지만 도저히 책을 포기할 수 없다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처럼 해보라. 그러니까 점심을 먹고 한 시간은 모두 조용하게 독서하는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다......


집안일에 책 읽을 시간을 빼앗길 때


독서용 아지트를 만들어라.


식사 준비를 마치면 청소기를 돌려야 한다. 청소기를 다 돌리면 욕실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욕실 청소를 해치우면 냉장고를 정리해야 한다. 냉장고 정리가 끝나면 이번에는 장을 보러 가야 한다. 이런 마당에 과연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겠다니 이게 꿈이 아니면 뭔가?

(중략)

일단 아지트에 들어가면 집안일은 다 잊어라. 그 시간 동안에는 책만 읽어라. 운이 좋으면 책을 읽는 당신을 본 누군가가 집안일을 대신 해줄지도 모른다. 


나는 다둥이 엄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집중력을 나눠주는 일이다. 모든 일이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어서 자신을 챙기는 일은 대충 넘어간다. 그런데 이 엄마는 책을 많이 좋아해!! 아이들의 책에 책장을 양보하느라 장서가의 길도 포기했어, 그래도 독서가의 길은 포기하지 않았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아기를 업고서 책을 들고 다녔다. 그 괴상한 모습을 어느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았다. 책에서처럼 아이가 있을 때 책을 읽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위에 누가 집안일을 대신해줄 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읽고 쓰디쓴 웃음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 친정 엄마조차 애들 안 챙기고 뭐하냐, 너는 책만 읽냐, 하고 비난하는 판국에. 그러고보니 우리 엄마가 내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방해하지 않은 때는 입시 준비할 뿐이었다는 슬픈 현실이. 열 살 된 큰아이가 뭐 하고 있을 때 나는 안 건드리려고 애쓴다. 냅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Let it be! 내비둬! 그게 나의 인생 철학인 게다. 냅둬유!!


이 책에선 여러가지 경우가 나온다.

자식들 때문에 꼼짝 못할 때.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 아이가 있을 때, 아이가 없을 때, 아이를 가졌을 때, 아이를 낳을 때....

이런 이야긴 처음 들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여러번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은 책을 읽는 나를 비난했었다. 그런데 그럴 때도 책을 읽으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니. 엘라와 수잔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이를 낳을 때는 조애나 캐브나의 <사랑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으라는데, 번역서는 없다만. 아래와 같은 소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게 된다. 너만 애 낳냐, 별나게 굴어, 하는 말이 현실에서 얼마나 난무하는가. 그러나 문학은 그런 파편화된 아픔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아, 사람들이 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산은 폭력적이고, 지저분하고, 환희에 차 있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니 출산을 앞두었거나 이미 출산했거나 혹시 출산 중에라도 이 소설을 읽으면 출산을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되었을 때? 에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를.  읽은 소설이라 눈에 띄네. 현대적 모성을 보여주는 소설을 소개해주니 상큼하다.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애환을 유쾌하게 그린 앨리슨 피어슨의 소설로 사라 제시카 파커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로 그 소설. 


이런 식으로 인생의 여러가지 경우에 소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제시한다. 정말 마음에 들고, 좋은 책이다. 요즘 여러가지 상실감을 많이 느꼈다. 물론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지만, 올해 끔찍한 상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냥 나 혼자만의 즐거움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 좋은 소설을 찾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거다. 책에서는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읽을 만한 소설책을 소개한다.

내가 아는 소설을 두 권이네. <엄청나게 시끄럽게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샤프란 포어.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슬플 때 뿐만 아니라 웃음을 터지게 만드는 소설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굶주림에 대해 읽고 싶다면, 크누트 함순의 그 유명한 <굶주림>을. 100세가 넘어가는 심정을 알고 싶다면, 그 유명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막스 티볼리의 고백>도 있다.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잉글리시 페이션트>라니!! 기타 등등. 증상과 처방전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독서를 하다보면 질환에 걸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좋은 방법들을 제시한다. 독서가 당신을 외롭게 한다면, 여럿이 함께 읽으라는 말도 좋다.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읽어도 좋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함께 낭독하는 모임도 좋고. 이런 재미있는 소개들이 많아서 다 쓰기도 힘들다. 


더 깊이 경험하기 위해 읽어라. 


사는 게 바빠서 책을 볼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그 누구보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일깨워줬듯, "검증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가 내면으로 고개를 돌려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책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시작되는 현실을 분석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다 떠나서 한 사람이 평생 얼마나 많은 삶을 살아볼 수 있겠는가?


책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 등장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이 보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느끼고, 냄새 맡는 것을 맡으면서 말이다. 책이 없는 삶도 하나의 삶이라고 반론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벗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 책이 없으면 삶의 방향을 쉽게 잃어버린다. 또 작고, 보잘것 없고, 상투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책을 읽으면 공감하고, 비판하지 않고, 차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용감해지고, 자아를 확장하고, 자신을 최대한 이용할 능력을 키울 수 있다......(하략)

 위의 글들이 구구절절 공감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야박해졌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토록 선량했던 한국인들이 어쩌다 돈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려드는 걸까. 그럴 때 문득 그들이 책을 읽는다면 적어도 타인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를 읽다가 이 저자들이 내 책장을 봤나? 나라는 독자를 알고 쓴 걸까? 웃음이 나왔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벨자> <영혼의 집>은 내 책꽂이에도 있는 책인데...그래그래, 우리는 함께 "약"하는 사이가 된 거야. 소설이라는 약을! 그 지독하게 중독성이 강한!  역자 후기도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덕후인 사람이 쓴 글이 분명하다. 번역하는 내내 생선가게를 지키는 고양이 심정이었다는 고백.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은 끝끝내 살아남아 언젠가 반드시 '소설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원한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이 분도 함께 '약'하는 사이인게야.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소설을 더 사랑해야지. 그리고 한국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 혼자만의 처방전을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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